▲2019년 12월 4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왓퍼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악수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유럽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토(NATO)를 두고 트럼프는 유럽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취임 직후부터 비판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였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냉랭했던 유럽과 미국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2020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과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주독미군을 감축한다고 발표하면서 관계가 악화됐다.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트럼프를 향해 '미군의 독일 주둔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이 스스로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려 한다면 유럽은 그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은 오랫동안 유럽 차원의 군대를 보유하려 했던 유럽에게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비록 프랑스의 비준실패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제 유럽은 1954년 유럽군대 창설을 골자로 한 유럽방위공동체(European Defence Community)를 추진했다.
유럽방위공동체 무산 이후 유럽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주로 경제협력에 매진해 지금의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유럽연합은 오랜 시간 경제·사회·정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통합을 이끌어냈으나, 여전히 경제력에 비해 미미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발칸 지역에서 심각한 내전이 발생했을 때도 유럽연합은 어떠한 영향력도 보이지 못하고 결국 미국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재등장한 트럼프가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거나,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은 마냥 미국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지난 10월 30일, 유럽연합 고위 관료들을 인터뷰한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유럽연합은 내부적으로 카멀라 해리스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내심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러한 요구가 비록 처음에는 입에 쓴 약처럼 쉽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의 미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즉, 트럼프의 재등장이 경제는 물론 안보적 측면에서 유럽연합이 미국에 기대기보다 독자적인 영향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낙관론만 있는 한국 정부
그럼 한국은 어떨까? 논란이 된 '골프외교 준비' 외에는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4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인선을 두고 "누가 되든 한국을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면서 "(그 인사들이)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나 공감하고 있어 앞으로 적절한 계기에 한미동맹이 주요 현안에서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갖고 협력을 도모할지 협의를 지속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바람과 달리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한국이 마주할 위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지난 18일, 세종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내정치 지형 변화와 대외정책 전망)에 따르면, 향후 한국 정부가 마주할 위기 요인으로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의 관점에서 미국은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한미 경제통상관계의 관점에서 미국은 한국이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한미 FTA 추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미국의 대중국 포위외교의 관점에서 미국은 한국의 동참을 강력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여기에 더해 2기 트럼프 행정부는 1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트럼프는 단순히 대통령 선거만을 압승(선거인단: 트럼프 312석 vs. 해리스 226석)한 것이 아니다. 공화당은 상/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이에 향후 트럼프 행정부는 고위직 인선은 물론 예산지원에서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이러한 여건과 트럼프의 지난 행적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를 향해 공세적인 외교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함께 '심리적 의존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협상 시작도 하기 전에 심리적 의존상태를 버리지 않을 경우,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외교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위의 메르켈 총리와 같이 필요한 말을 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또한 트럼프의 재등장 이후 국내에서 여러 보고서와 언론의 분석기사를 확인했으나, 위에서 제시한 <폴리티코> 기사와 같은 주장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트럼프의 특징을 분석한 다음, '잘 대처해야 한다' 정도가 정책적 제언이었다. 특히 안보 관련 분야에서는 '우려'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던 그 '심리적 의존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심리적 의존상태를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