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6 07:06최종 업데이트 24.11.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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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인사들의 역할과 이들이 주도한 정책을 분석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사회적 파장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2022년 5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검찰 선후배이자 정치적 동지다. 검찰 재직 시 '특수통 칼잡이'로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에서 출세해 영욕을 함께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윤 대통령에게 한 대표만큼이나 가까운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한 사람만 빼고는.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휩싸인 한 대표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막다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징계를 당해 직무정지라는 치욕을 겪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오른 한 대표는 대대적인 인사를 통해 윤석열 사단을 재건하고 김건희씨 의혹에 대한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과 자신의 정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옭아매는 검찰 수사를 사실상 지휘함으로써 검찰정권 2인자의 위상을 굳혔다.


한 대표는 유력 정치인이 된 지금도 검사 티를 못 벗었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발언만 해도 그렇다. 노련하고 우회적인 정치인 화법이 아니라 단순하고 직설적인 검사 화법이다. 여전히 '좋은 놈 나쁜 놈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눈에 이재명은 그저 범죄자일 뿐이다. 그는 윤 대통령처럼 전형적인 검찰주의자다. 평생 단죄권력을 누려온 두 사람 눈에는 모든 정치인, 나아가 모든 국민이 잠재적 피의자다. 검찰 패밀리만 빼고 말이다.

서초동 편집국장

검사 시절 한 대표는 특수 수사, 특히 정치권과 재벌기업 비리 수사에서 적잖은 성과를 냈다. 윤 대통령도 비슷한 수사를 많이 했지만, 수사방식은 달랐다. 직선적인 윤 대통령은 수사 중 외압에 부딪히면 정면 돌파를 선택하거나 특유의 승부수를 던졌다. 꼼꼼한 한 대표는 치밀하고 정확하게 수사한다는 평을 들었다.

돌이켜 보면 두 사람에 대한 세간의 평에는 거품이 있었다. 친검(親檢) 기자들 덕분이다. 발뺌도 잘하고, 말 바꾸기도 능하다. 수사 실력도 부풀려진 면이 있다. 또 내로남불의 대가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과는 정반대로, 남의 허물은 가을 서리처럼 엄격히 대하고 자신의 허물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했다. 오죽하면 '윤로남불'이니 '한로남불'이니 하는 조어가 생겨났을까.

이명박 정부 때 법무부에서 근무하던 한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됐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기관에 파견되는 공무원은 소속 집단에서 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아니면 줄을 잘 섰거나. "샌님 스타일에 말이 적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을 잘했다"라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표 1]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맡았던 주요 직책과 직접 참여하거나 지휘한 대형 수사를 정리한 것이다.봉주영

판이한 스타일의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가까워진 것은 서로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검찰을 정의의 화신으로 여기는 두 사람은 여러 대형 수사를 같이하면서 의기투합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 재직 시 수사하거나 수사를 지휘한 주요 대형 사건을 꼽아 보면 9개인데(표1 참고), 그중 한 대표와 함께한 수사가 5개나 된다. 두 사람 다 말단 검사로서 역할이 크지 않았던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까지 포함하면 10개 중 6개다. 두 사람의 수사 인연이 얼마나 끈끈한지를 알 수 있다.

대형 사건의 경우 언론 보도가 수사 성패를 좌우할 때가 많다. 과거 특수통 검사들은 대체로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사할 때 언론을 적절히 활용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도 그 부류에 속했다. 둘 다 언론 친화적이고, 언론 덕을 자주 봤다. 특히 보수 언론과의 끈끈한 관계는 두 사람에게 두고두고 큰 힘이 됐다.

2019년 한 대표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서울중앙지검의 조국 수사를 지휘했다. 정권과 검찰이 충돌하고, 보수-진보 양 진영이 격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당시 법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한 대표는 "서초동 편집국장"으로 불렸다. 기자들에게 적절히 기삿거리를 배분하고 기사 방향까지 코치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검찰정권 2인자

플라톤이 말한 '철인'을 '검사'로 여기는 윤 대통령은 집권 후 검찰 출신을 중용했다. 심복인 전직 검사들이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 포진하고 일부는 국회에 진출했다. 법무부 장관을 맡아 축소된 검찰 수사권을 복원한 데 이어 여당을 접수한 한 대표는 '검찰 통치'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했다.

검찰정권의 수호자인 윤석열 사단은 주로 윤 대통령과 수사 인연으로 맺어진 검사들이다. 이들은 문재인/윤석열 2대 정권에 걸쳐 검찰 주류를 형성했다. 주축은 국정농단 특검 수사(2016~17년)와 적폐청산 수사(2017~18년), 조국 수사(2019년)에 참여한 검사들이다. 한 대표는 윤석열 사단의 간판이었다. 윤석열 사단의 상당수가 한동훈 라인과 겹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맹활약한 윤석열 사단은 조국 수사 이후 좌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검찰 지휘부와 수사라인을 장악했다. 문재인 정부 비리 의혹과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에 매진하면서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들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2024년 1월 3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해 연말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뉴스타파> 보도를 문제 삼은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과 명품백 수수 및 주가조작에 연루된 김건희씨 수사 방향을 두고 잡음이 나더니 한순간에 중앙무대에서 밀려났다. 검찰권력의 핵심인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및 주요 수사라인이 한꺼번에 물갈이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영전 형식이지만 좌천성 또는 문책성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들 중에는 '한동훈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도 많았다. "한동훈 색깔 지우기"라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는 신윤(新尹) 검사들이 차지했다. 일부는 원조 윤석열 사단과 겹치지만, 대체로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낼 때 근무 인연을 맺은 검사들이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열심히 했거나 김건희씨 봐주기 수사에 관여했거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서 공을 세운 검사들이 지휘부와 주요 수사라인에 포진했다. 특히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빚어진, 이른바 '추-윤 갈등' 때 윤 총장을 강력히 지지했던 검사들의 영전이 두드러졌다.

오늘날 한 대표가 대선주자급의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이 윤 대통령 덕분이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윤-한 갈등'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찰떡궁합 같던 검찰정권 1인자와 2인자의 충돌이라니. 역대 정권에서도 그랬듯이,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대립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현재의 권력구도는 물론 미래 권력구도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형제처럼 단단했던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진 것은 김건희씨 때문이다. 한 대표가 아무리 윤 대통령과 가깝다고 하더라도 김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한 대표는 '김건희 리스크'의 심각성을 절감한 듯했다. 그러잖아도 이기기 힘든 선거인데 김씨 때문에 더 망칠 듯싶었다. 김씨를 싸고도는 윤 대통령과 틈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월 이른바 '디올백 내전'이 벌어질 때만 해도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상당수 야권 정치인과 정치평론가가 이를 "약속대련"으로 간주했다. 속임수 또는 위장술로 판단한 것이다. 확증편향이 판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에서도 그런 시각이 우세했다. 두 사람이 한통속이고 주종관계나 다름없는데 무슨 대립이고 충돌이냐는 의구심이었다. 여기에는 한 대표의 위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깎아내리려는 견제 심리도 작용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는 오판이었다. 사건 초기 내가 "약속대련이 아니다"(오마이TV '조성식의 어퍼컷')라고 말한 것은 한 대표의 절박한 처지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벌어진 '서천 회군'과는 별개다. 충남 서천시장에서의 폴더인사는 한 대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2024년 1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간동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인 검찰 패밀리의 위계질서는 조폭 조직 뺨친다. 특별히 한 대표에게 윤 대통령은 의리와 충성, 보은의 대상이다. 무사 집단으로 치면 주군인 셈이다. 검찰 재직 시에는 보호막이 돼주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후계자로 키웠다. 그만큼 신뢰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두환-노태우 사례처럼 퇴임 후 안전까지 고려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하면,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맞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위계질서 상 용납되지 않는 일이고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돌을 빚었다는 것은 한 대표가 그만큼 김건희씨 문제를 심각하게 봤다는 뜻이다. 김씨의 권력욕이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우려다.

김씨가 계속 공동 집권자처럼 행세하는 한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예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대표는 여기서 더 치고 나갈 배짱이 없다. 윤 대통령과 달리 승부사 기질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듯싶다. '간동훈'이라는 별명이 그럴듯한 이유다. 그토록 '국민 눈높이'와 '상식'을 강조하다가 상식 이하의 대통령 기자회견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잽만 날려 보다가 정작 큰 펀치는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클린치로 화해를 모색하는 꼴이다.

사실 한 대표 처지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세 사람은 공동운명체다. 2020년 4월 총선 직전 벌어진 고발사주 사건을 상기해 보면 세 사람이 일찍이 한배를 탔음을 알 수 있다. 검찰총장 직속의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 출마자인 김웅 전 검사에게 텔레그램으로 전송했다는 고발장에는 세 사람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 김건희는 불법적인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없었고,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를 시켜 이철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라고 설득한 사실이 없었고...(중략)...문재인 정부 및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검찰총장으로 취임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은...(중략)...'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정부, 여당과 진보 세력 지지자들에게 역적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고발사주' 고발장 14쪽)

고발사주 사건이 발생하기 2주 전인 2020년 3월 14일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권순정 대검 대변인은 카카오톡 단체방을 개설했다. MBC가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보도한 3월 31일부터 고발사주가 이뤄진 4월 2일까지 3일간 이 단톡방에서는 128건의 메시지가 오갔다. 이와 별도로 한동훈-손준성 간 주고받은 메시지가 169건이다. 같은 기간 한동훈 차장과 윤석열 총장은 40차례 통화했다.

고발사주가 실행된 4월 3일, 김웅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자는 조성은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고발장 20장과 검언유착 의혹 제보자의 실명 판결문, 관련 캡처 사진 88장 등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전송했다. 왼쪽 상단에 '손준성 보냄'이라는 문구가 따라붙은 사진 파일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한동훈 검사는 3인 단톡방에 사진 파일 60장을 올렸다.

휴대전화 화면을 캡처하면 상단에 표시된 통신사, 시각 등의 정보가 노출된다. 또 하단의 '뒤로 가기' 표시 위치에 따라 휴대전화 기종을 알 수 있다(아이폰은 왼쪽, 갤럭시는 오른쪽).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사람들은 캡처 사진을 외부로 전송할 때 위아래를 잘라서 보낸다고 한다.

한때 한 대표와 취재 인연으로 친분이 있었던 전혁수 기자는 최근 조성은씨와 함께 펴낸 <정치검사>라는 책에서 "내 주변에도 이런 습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한동훈이다"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고발사주 사건 당시 텔레그램으로 전송된 캡처 사진도 그런 모양이었다. 법조 취재 경력이 많은 전 기자에 따르면, 주로 검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캡처 사진을 보낸다고 한다.

이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단톡방 대화 내용과 사진 파일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채널A 사태 때 한동훈 검사가 그랬던 것처럼, 손 검사도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꼭꼭 숨겼다. 공수처 수사는 거기서 멈췄다.

정권이 바뀐 후 법무부 장관이 된 한 대표는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손 검사를 검사장급(대구고검 차장검사)으로 승진시켰다. 대검 감찰부는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만약 한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고발사주 사건 연루 의혹부터 해명해야 할 것이다.

친윤계의 강력한 견제와 '패싱' 논란, '가족 댓글' 의혹 등으로 리더십이 흔들리는 한 대표에게 김건희 특검은 위기이자 기회다. 그런데 배포가 부족하고 뒷심도 약한 한 대표는 교묘한 말 바꾸기로 자책점을 쌓고 있다. '제3자 추천 특검'이라면 수용하겠다고 공언하고는, 막상 민주당에서 그에 맞춘 수정 법안을 제시하자 슬쩍 발을 빼면서 '특감(특별감찰관)' 타령만 한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유죄 선고를 활용해 반전을 꾀하거나 여권에 대한 비난을 물타기 하려는 전략도 유치하다. 그런 얕은 술수가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재명은 이재명이고, 김건희는 김건희이고, 한동훈은 한동훈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 배운 듯한,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이런 잘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한 대표의 대권가도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여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사람이 소신도 비전도 정책도 없이 정적 공격에만 몰두하는 건 딱한 노릇이다. 한 대표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고 간만 보는 동안 윤석열호의 침몰 속도는 점점 빨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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