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간동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인 검찰 패밀리의 위계질서는 조폭 조직 뺨친다. 특별히 한 대표에게 윤 대통령은 의리와 충성, 보은의 대상이다. 무사 집단으로 치면 주군인 셈이다. 검찰 재직 시에는 보호막이 돼주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후계자로 키웠다. 그만큼 신뢰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두환-노태우 사례처럼 퇴임 후 안전까지 고려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하면,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맞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위계질서 상 용납되지 않는 일이고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돌을 빚었다는 것은 한 대표가 그만큼 김건희씨 문제를 심각하게 봤다는 뜻이다. 김씨의 권력욕이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우려다.
김씨가 계속 공동 집권자처럼 행세하는 한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예전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대표는 여기서 더 치고 나갈 배짱이 없다. 윤 대통령과 달리 승부사 기질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듯싶다. '간동훈'이라는 별명이 그럴듯한 이유다. 그토록 '국민 눈높이'와 '상식'을 강조하다가 상식 이하의 대통령 기자회견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잽만 날려 보다가 정작 큰 펀치는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클린치로 화해를 모색하는 꼴이다.
사실 한 대표 처지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세 사람은 공동운명체다. 2020년 4월 총선 직전 벌어진 고발사주 사건을 상기해 보면 세 사람이 일찍이 한배를 탔음을 알 수 있다. 검찰총장 직속의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 출마자인 김웅 전 검사에게 텔레그램으로 전송했다는 고발장에는 세 사람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 김건희는 불법적인 주가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없었고,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를 시켜 이철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라고 설득한 사실이 없었고...(중략)...문재인 정부 및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검찰총장으로 취임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은...(중략)...'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정부, 여당과 진보 세력 지지자들에게 역적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고발사주' 고발장 14쪽)
고발사주 사건이 발생하기 2주 전인 2020년 3월 14일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권순정 대검 대변인은 카카오톡 단체방을 개설했다. MBC가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보도한 3월 31일부터 고발사주가 이뤄진 4월 2일까지 3일간 이 단톡방에서는 128건의 메시지가 오갔다. 이와 별도로 한동훈-손준성 간 주고받은 메시지가 169건이다. 같은 기간 한동훈 차장과 윤석열 총장은 40차례 통화했다.
고발사주가 실행된 4월 3일, 김웅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자는 조성은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고발장 20장과 검언유착 의혹 제보자의 실명 판결문, 관련 캡처 사진 88장 등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전송했다. 왼쪽 상단에 '손준성 보냄'이라는 문구가 따라붙은 사진 파일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한동훈 검사는 3인 단톡방에 사진 파일 60장을 올렸다.
휴대전화 화면을 캡처하면 상단에 표시된 통신사, 시각 등의 정보가 노출된다. 또 하단의 '뒤로 가기' 표시 위치에 따라 휴대전화 기종을 알 수 있다(아이폰은 왼쪽, 갤럭시는 오른쪽).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사람들은 캡처 사진을 외부로 전송할 때 위아래를 잘라서 보낸다고 한다.
한때 한 대표와 취재 인연으로 친분이 있었던 전혁수 기자는 최근 조성은씨와 함께 펴낸 <정치검사>라는 책에서 "내 주변에도 이런 습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한동훈이다"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고발사주 사건 당시 텔레그램으로 전송된 캡처 사진도 그런 모양이었다. 법조 취재 경력이 많은 전 기자에 따르면, 주로 검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캡처 사진을 보낸다고 한다.
이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단톡방 대화 내용과 사진 파일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채널A 사태 때 한동훈 검사가 그랬던 것처럼, 손 검사도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꼭꼭 숨겼다. 공수처 수사는 거기서 멈췄다.
정권이 바뀐 후 법무부 장관이 된 한 대표는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손 검사를 검사장급(대구고검 차장검사)으로 승진시켰다. 대검 감찰부는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만약 한 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고발사주 사건 연루 의혹부터 해명해야 할 것이다.
친윤계의 강력한 견제와 '패싱' 논란, '가족 댓글' 의혹 등으로 리더십이 흔들리는 한 대표에게 김건희 특검은 위기이자 기회다. 그런데 배포가 부족하고 뒷심도 약한 한 대표는 교묘한 말 바꾸기로 자책점을 쌓고 있다. '제3자 추천 특검'이라면 수용하겠다고 공언하고는, 막상 민주당에서 그에 맞춘 수정 법안을 제시하자 슬쩍 발을 빼면서 '특감(특별감찰관)' 타령만 한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유죄 선고를 활용해 반전을 꾀하거나 여권에 대한 비난을 물타기 하려는 전략도 유치하다. 그런 얕은 술수가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재명은 이재명이고, 김건희는 김건희이고, 한동훈은 한동훈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 배운 듯한,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이런 잘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한 대표의 대권가도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여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사람이 소신도 비전도 정책도 없이 정적 공격에만 몰두하는 건 딱한 노릇이다. 한 대표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고 간만 보는 동안 윤석열호의 침몰 속도는 점점 빨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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