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4 11:45최종 업데이트 24.11.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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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기자말]
"주말에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요."

이런 사람이 있을까? 휴일 내내 놀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스터디를 비롯해 요가, 헬스를 다니거나 산을 탔거나 가족 행사를 '클리어'했다는 이야기. 혹은 일주일 내내 격무에 시달린 끝에 몸살로 몸져누웠다는 뼈아픈 이야기까지.


그건 나에게도, 대다수 직장인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처음 이 질문을 품게 되었다. '왜 주말에까지 나의 건실함을 증명하고 있을까?' 모두가 바쁜 사회기도 하지만,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선 흥청망청 놀았다는 말을 타인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다. 휴일에도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 '갓생'이 현대사회 표준이 된 건 오래전 일이니까.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 일요일, 요양보호사는 어떤 아침을 맞이했을까. 목사나 배달 라이더는,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는 어떤 하늘을 보았을까. 그동안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는 직업인들이 쓴 책을 탐독해 오면서 어쩌면 나는 한 가지를 놓쳤겠다.

긍지와 책임감으로 자기 일에 헌신해온 사람들을 노동을 행하는 존재로 국한해 바라봤다는 것. 그 존엄에 기대어 변방의 직업군에서 고투한 사람의 '기술과 땀'에만 집중해왔다는 것. 퇴근 이후 시간, 어떻게 쉬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왜 등한시했을까.

"누워서 읽기를 바란다"는 책

<휴식은 저항이다: 시스템은 우리를 가질 수 없다>갈라파고스

뜻밖의 질문을 선물처럼 안겨 준 이 책은 강력한 주술을 담은 마법서 같다. 시종일관 쉬라는 문장이 등장해서 어느 날은 깜빡 속아 '휴식하라'는 문장을 따라 낮잠에 든 적도 있을 만큼.

그런데 개운하게 일어나서 다음 페이지를 느슨하게 넘기며, 누운 채로 안식에 젖어 완독하게 해준 책 <휴식은 저항이다>는 신학자이자 시인, 공연예술가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쓴 사회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낮잠의 주교'로 불리는 인물로, 안전한 장소에서 단체로 낮잠을 청하는 낮잠사역단을 2017년 창립하여 이를 실천해왔다. 해방의 도구로서의 휴식을 널리 알리며 미국 전역에서 지지를 받아온 그는, 이 책에 낮잠사역단을 만든 취지와 선언문을 담았다. 표지를 넘기면 "이 책은 누워서 읽기 바랍니다!"라는 활자가 본문 한복판에 유머러스하게 찍혀 있다.

누군가는 생존하기 바쁜 세상에 낮잠을 잘 재간이 어딨냐며 반문할 수 있겠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퍼포먼스를 벌일 수 있다는 편견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 트리샤 허시는 조상 대대로 혹독하게 착취당해온 흑인노예의 후손이다.

<휴식은 저항이다> 본문 초입에 나타나는 메시지. " 이 책은 누워서 읽기 바랍니다!"갈라파고스

그는 가난 속에서 공부했고 투잡 쓰리잡을 불문하고 생존하고자 노동해왔다. 시를 썼고 신학을 전공했으며 결혼 뒤 아이를 출산했다. 그 와중에 생계를 잇기 위해 주 40시간 일하는 저임금 직장에 다니며 출근 아침마다 버스차창 너머 스쳐 지나가는 나무와 새를 바라보는 일에 안도를 느꼈다.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바람으로 살아가던 저자.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피로의 유산'을 타고 태어났음을 가족으로부터 발견한다. 테러로 인해 난민이 되었던 할머니가 평화를 얻고자 눈을 감고 하루 30분~1시간가량 명상에 잠겼다는 이야기, 백인우월주의 극우 단체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권총을 앞치마에 숨긴 채 농장을 지켰던 증조할머니의 칠흑 같은 밤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리곤 삶을 전환한다.

저자의 할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천 명이 탈출한 1950년대에 미시시피주를 떠났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목화솜을 따는 흑인이 지천이었던 미시시피주는 흑인의 삶과 노예노동을 상징하는 대표 지역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옛 조상들이 견뎌온 불합리한 노동의 역사를 이 책에 복기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몸은 미국이 가진 최초의 자본이었고 그로 인해 휴식과 꿈의 공간을 끊임없이 탈취당했다."

나를 혹사하지 않아도 될 권리

시카고의 흑인 분리 지역에 살았던 저자의 부모는 1950년 민권 운동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투표권을 획득하고 차별 철폐를 외쳤던 어른들을 보며 자라난 저자는 학창시절 성공하려면 "백인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라는 주문을 물처럼 마시며 자라났다.

한국 사회 특유의 강박과 닮은 모습이다. '흑수저'로 태어난 이상 기득권이라 불리는 '백수저'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신화는 클리셰 같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통용된다. <흑백요리사>를 비롯해 서바이벌 예능 프로에 숱하게 쓰인다.

좋은 대학과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 건실한 취미를 가지며, 일 분 일 초 시간이 아깝지 않게 살아야 헬조선에서 낙오되지 않는다는 불안의 심리는 차라리 한국 노동사회 전체가 습득한 무형의 계보에 가깝다. 과로하지 않으면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문화는, 성실한 사람으로 내가 오늘을 잘 버텨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준다. 저자는 반기를 든다.

"당신은 쉴 자격이 있다. (중략) 휴식은 내 몸이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사치, 특권, 보너스 따위가 아니다. 휴식을 특권으로 간주하는 신화를 무수히 접해온 나는 이 개념을 이해하면서도 강하게 반대한다. 휴식은 특권이 아니다. 현 체제가 어떻게 가르치든 간에 우리 몸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휴식을 사치로 여길수록 과로문화의 체계적인 거짓말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자본주의가 어떤 이론을 만들어 제시하든 우리 몸과 영은 자본주의의 것이 아니다."
- 트리샤 허시, <휴식은 저항이다> '들어가며' 중에서

'너는 하느님이 지명해 이 땅이 보낸 아이'라며 용기를 북돋아준 아버지에게서 저자는 어른 세대가 애써 숨겨 온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성실할 수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마음을 본다. 그의 아버지 내면에 "상상력과 창조성을 지닌 남자가 들었지만, 그 남자는 우리가 기계처럼 일하기를 바라는 과로 문화에 짓밟혀 있었"음을 아프게 고백한다.

저자는 "자신의 몸을 자동차와 전철에 가두고 자기 몸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는 이 도시의 풍경(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 빗금을 낸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소망을 지금 실천해 보기를 촉구한다. 그 실천은 대단한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만의 길을 내려고 하지만 도무지 길을 낼 수 없어 탈진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은 휴식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는지' 질문한다.

즉, 과로 문화에 세뇌당한 우리 신체가 어떠할 때 편한지, 편안한 상태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나아가 편안할 때 나는 어떤 맛과 냄새를 느끼는지 상상해 보자고 촉구한다.

트리샤 허시의 안내를 따라 단체로 고요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낮잠을 청하는 낮잠사역단의 모습. (출처: How to combat 'burnout?' A group nap, 유튜브 영상)USA TODAY

어쩌면 저자는 갈수록 무기력해져 온 자신을 '쓸모'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복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핍박 와중 하루 몇 분이라도 눈을 감고 쉬고자 했던 옛 조상의 용기를, 억압의 체제에 항거했던 역사 속 사람들의 마음속 심지에 약할지언정 타올랐던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서.

잘 쉬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이 휴식을 위한 대안으로 특히 강조하는 건 '상상하기.' 우리는 자기 주장에 명확한 근거를 대는 사람, 특정 현상에 관해 명석하게 분석하고 정의 내리는 사람들을 흔히 '스마트하다'고 부른다. 대체로 나를 증명하는 일에는 똑똑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 논리에 지나치게 길들여온 건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나는 상상력을 빼앗는 것이 가장 깊은 곳에서 자행되는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형언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우리 문화 속에서 우리는 항상 머릿속으로 모든 것을 이론화하고 분석하고 이해할 태세를 갖춘 채 살아간다."
- 트리샤 허시, <휴식은 저항이다> '제4부 상상하자!' 중에서

TMI(Too Much Information)를 남발하는 건 시간을 죽이는 일로 이해되는 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알고리즘으로 정보가 더욱 광범위해진 오늘, 주제에 알맞은 콘텐츠들을 큐레이션하는 능력이 대두되는 틈새에서 '필요 불충분한' 정보와 언어와 사람은 매일매일 탈락되고 있다.

이 감지는 혼자만의 기분일까. 우리는 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들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데 익숙해진 걸까. 쉰다는 것, 휴식 또한 그렇게 자리를 잃어가는 건 아닐까.

유네스코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 언어 6700개 중 절반에 가까운 언어가 사라지는 추세다. 그중 제주어도 속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언어 소멸을 막기 위해 2014년 제주어표기법을 제정했고 각 학교마다 제주어를 가르치는 담당 교사가 생겨났다.

방글라데시는 자신들의 모어를 지키기 위해 뱅골어를 쓰라는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인 끝에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단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은 2월 21일을 언어 순교자의 날로 기념하며 수천 년 이어져 온 삶과 언어를 되새긴다.

만약 쉬는 일도 절박하게 지켜야 할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그때 어떤 투쟁을 해야 할까. 이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골방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회사에서 햇빛을 쬘 권리를 말하는 자리를 조금씩 같이 넓혀 보면 어떨까. 똑 부러지는 근거로 나의 주장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자유, 열심히 일했으므로 마침내 쉬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을 자유를 어디서부터 넓혀볼 수 있을까.

어쩌면 저자는 쉬는 것조차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자고 독려하는 듯하다. 이메일에 즉답하는 것을 피하고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조차 어렵다면, '나의 오늘이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보면 좋겠다.

사실 나부터 해야 할 연습이다. 아침 7시가 지나면 저녁 7시가 오듯이. 타인으로부터 나는 나이고 우리가 우리임을 굳이 이해받지 않아도 되듯이. 쉼은 저축이 아니듯이. 지금 포기한다고 보장받을 수 있는 미래가 아니듯이.


휴식은 저항이다 - 시스템은 우리를 가질 수 없다

트리샤 허시 (지은이), 장상미 (옮긴이), 갈라파고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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