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025년 예산 복원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학교예술강사의 생계를 위협하고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빼앗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예산 편성 과정에서 기존 사업에 대한 지출구조 개선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은 시민들의 조세 납부를 통해 형성될 뿐 국가 자체가 생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세가 입장권이나 벌금이 아니라면 조세의 정당성은 적어도 납세의 자발성과 정당성에 의존해야 한다.
관료들은 예산이나 집행 등 재정 과정을 대행하는 자들이지 공공 재정에 대한 처분권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재정이 선거로 선출된 이들의 전리품이 아니라면, 적어도 정부 정책 방향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예측가능한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런 절차가 없었다. 선출된 특정 당파와 정부 관료 간의 담합으로 기존의 정부 재정 운용 방식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특히 보조사업의 비중이 많은 문화예술 정책의 경우 특정 사업 하나하나가 특정 예술인들에게 창작의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사업임에도 이를 일방적으로 정리했다.
이런 촌극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2025년 예산안에서 사라진 예술강사지원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초기 문화예술에 대한 관객개발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문화예술인 일자리사업이다. 정책 대상이 문화예술이라면 이에 대한 정책 책임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있다.
2025년 예산안은 80억 원에 불과한데 2024년에는 287억 원이었다. 일자리가 12개월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예산 감소는 사실상 사업의 폐지라 할 수 있다. 이 배경에는 해당 사업예산을 지역교육청이 담당해야 한다는 재정 당국의 의지가 있다. 기획재정부는 법적으로 정률 할당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남는다는 인식 하에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교예술강사 사업비를 지역교육청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예산 배정의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타당할지 모르지만 사업의 구조와 목적 그리고 정책 대상의 정합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합리적이라 하기 힘들다. 오히려 문화예술인에 대한 공공일자리 사업으로서 학교예술강사 사업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임의로 폐지했다는 것이 더 큰 쟁점이다. 당사자인 학교 현장이나 예술강사들의 의견, 해당 사업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결정이다.
만약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교육재정이 담당해야 한다면, 202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늘봄학교 사업 역시 교육재정으로 부담해야 타당하다. 하지만 현재 늘봄학교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직접 지원을 확대하는 중이다. 학교예술강사 사업의 폐지와 늘봄학교의 신규 시행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기존 학교예술강사들을 배제한다는 구체적인 효과를 가질 뿐이다.
이런 현상은 문화도시 사업에서도 확인된다. 기존 문화도시 사업이 2025년 이후 일몰된다. 그런데 다시 대한민국 문화도시라는 사업이 다시 시작된다. 기존의 문화도시 사업이 지역문화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이런 정책목표가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에 '광역형 선도도시' 개념으로 새롭게 개편하여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의 추진 방식은 거의 변함이 없다. 달라진 것이라면 기존의 문화도시 정책을 주도했던 지역 내 문화기획자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은 민간과 행정 간의 협력사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지방정부가 직접 문화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으로 개편했다. 즉 해당 사업의 경로에서 민간 문화예술인들을 우회하려는 의도가 확인된다.
이런 현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요한 사업들이 지방이양 혹은 지역분권이라는 명목으로 조정되고 있는데 대부분 지방정부나 지방공공기관에 이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즉 전달체계 상 기존 문화예술인이나 문화예술단체가 있었던 경로를 모두 공공기관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이는 과거의 몇몇 문화예술인들을 특정해 배제했던 리스트 방식의 블랙리스트가 아예 사업 전달 체계에서 예술인 당사자를 배제하는 전달체계 방식의 블랙리스트로 작동하는 것이다. 전달체계 개편이 왜 블랙리스트냐고, 지출구조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애당초 민간보조사업 구조에 의존하고 있는 기존 문화예술지원 체계에서 보조사업의 사업구조 개편은 구조적 지원 배제의 효과를 낸다.
문화재정 되찾아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