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무실에서 문화누리카드(좌)와 서울역쪽방상담소 회원카드(우)를 든 차재설 이사. 쪽방상담소 회원카드는 '동행식당'에서 식사할 때나 푸드마켓 '온기창고'에서 구호품을 구입할 때 결제용으로 쓴다.
변정정희
대본 없이 10분 동안 발언했던 그날의 기억
차 이사는 주민 자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이하 사랑방)과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이하 협동회)에서 활동한다. 협동회는 제도권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대출해준다. 마을에서 다양한 공동체 활동도 펼친다. 그는 협동회를 창립한 이듬해(2012년)에 조합원이 되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협동회에서 교육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한 3년 전에 동대문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집회에 갔어요. 사랑방에서 발언해야 하는 사람이 발언을 못 하게 돼서 땜빵으로 제가 대신 했어요. 누가 써준 거 보고 하라고 해서 하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 종이가 날라갔어요. 그거 없이 그냥 한 10분 정도 얘기했던 것 같아요. 원래 3분 정도만 하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나보고 계속 이런 거 할 때마다 앞에 나가서 얘기하라고 하고, 또 취재하러 오면 인터뷰도 하라고 하고... 그러다가 교육홍보이사를 맡게 된 거죠."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불어버린 비빔라면과 얼어버린 김밥
3시간만 지나면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늙고 아픈 쪽방 주민들이 겨울마다 당하는 낙상 사고... 차 이사는 쪽방에서 여름과 겨울을 날 때 힘든 점을 남들 이야기처럼 말했다. 아주 가끔은 그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귀가 솔깃해졌다.
"내가 비빔라면을 좋아해요. 국수를 삶아갖고 찬물에 씻으려고 갔는데 화장실에 누가 있으면 어떡해요? 다 불죠. … 을지로 지하도에서 노숙할 때, 절간에서 김밥을 해왔길래 한꺼번에 서너 개 받았어요. 근데 겨울이니까 몇 시간 지나면 딱딱하게 얼어버려서 다 버렸어요."
그는 여름과 겨울을 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그는 여러 쪽방촌 공동체에 적을 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유대 관계도 좋았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평일 점심은 사랑방 밥상공동체 '식도락'에서 도시락을 싸게 사서 먹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협동회에서 대출하면 된다. 낮에는 사랑방이나 협동회 사무실에 나가서 활동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지인 집에서 밥을 함께 해서 먹었단다. 마스크 쓰는 일 말고는 힘든 점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자동 주민들은 쪽방에서 보통 어떻게 지낼까? 차 이사와 달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거나 관계망이 좁다면? 더군다나 거동이 불편해서 쪽방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너무 잘 안다
그런 집이었다.
동자동 쪽방. 지은 지 30년에서 90년도 넘은 "꼬진 집". 자주 물이 새고 하수구가 막혔다. 여름에는 '사우나'가 되는 방 때문에 방문을 열어 놓았다. 보일러가 동파되면 복도와 계단을 얼음이 뒤덮었다. 공과금을 따로 내면 수급비 절반을 월세와 공과금에 써야 했다. 심야전기를 쓰는 집들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난방을 틀었다. 온수가 안 나오는 쪽방에 살면 커피포트로 물을 데워서 씻거나 설거지했다. 온수가 나와도 사용 시간을 정해 놓은 쪽방도 있었다. 쪽방에 도시가스도 가스레인지도 없으면 방에서 가스버너로 조리했다.
대부분 공과금을 월세에 포함해서 받았다. 어떤 달은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공과금을 따로 더 걷었다. 겨울에는 난방기구와 전기장판을 못 쓰게 했다. 세입자들은 공과금 폭탄을 피하려고 알아서 아껴 쓰고 서로 감시했다. 샤워나 빨래는 되도록 빨리 끝냈다. 화장실도 자주 안 갔다. 변기 레버가 망가져도 관리인한테 수리해 달라고 못 했다. 알아서 해결하고 알아서 고쳤다.
1평에 30만 원 안팎의 월세. 5개~150개의 방을 가진 집주인들. 어떤 집주인은 공과금을 내고도 월 수익이 세전 4500만 원을 넘었다.2)
"만약에 주거급여가 34만 원까지 올랐는데 집주인이 방세를 34만 원까지 올린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계약서를 고치는 거예요. 방 계약서를 동주민센터에 갖다줘야 주거급여가 나오니까. 쪽방은 대부분 임대업 등록도 안 했고 사실 불법이죠. 우리가 수급자증명서 떼주면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다 할인받지. 집주인은 앉아서 코 푸는 거야. 그러니까 정부에서도 이 방을 1년에 한 번씩은 와서 점검을 해줘야지. 이 방세가 합당한지. 그리고 제대로 안 하면 세금을 물리든가 해야 되는데... 진짜 저런 방은 10만 원짜리 방도 안 돼요. 우리가 없이 사니까 마지못해 사는 거지." (차재설)
쪽방 집주인들은 세입자들 처지를 너무 잘 안다. 그들은 쪽방이 보증금 없이 조금 더 싼 월세를 내려는 이들에게 최선의 집이라는 사실을 안다. 빈 방이 생기면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채워준다. 사실 시설에 비해 월세가 싼 편은 아니다. 30만 원에 육박하는 평당 임대료는 강남 고급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세입자들이 수리해달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딴 데 가라며 구박한다. 어느 쪽방이나 다 고만고만하니까. 소수지만 어떤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쪽방 환경을 개선하기도 한다. 집주인들은 거의 다 쪽방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다. 동자동에 공공개발 발표가 나고부터는 어차피 새로 짓는다며 더 그랬다.
그런 집은 있으면 안 되나.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를 지어라"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 살벌한 현수막들이 쪽방촌 건물을 뒤덮었다.3)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빨간 깃발도 내걸었다. 2021년 2월 5일,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계획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부 동자동 쪽방 소유주들이 민간개발로 전환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드세게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 눈치를 보느라 정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공공주택지구 지정(지구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민간개발을 하면 임대주택 호수는 원래 계획보다 8배나 줄어든다(1250호→156호). 대신 분양주택 호수가 늘어나므로 소유주들의 이익은 10배 넘게 껑충 뛴다(세대당 1억 4198만 원→ 최대 13억 7826만 원). 그럼 현재 쪽방 세입자 십중팔구가 동자동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다(실제 쪽방 세입자 총 1천여 명으로 추정). 900명에 가까운 세입자들이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나는 셈이다.(
<쪽방촌 민간개발 우려 "땅주인은 이익 10배, 세입자는 노숙으로"> (https://omn.kr/21d61) 조선혜, 오마이뉴스 2022.10.2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