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10월 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준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이 같은 분석과 함께 브릭스에 노크를 한 국가 중에서 '튀르키예'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위의 첫 번째 관점과 같이 브릭스의 확대를 미국에 대항하는 그 무엇으로 본다면,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으로 불리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게다가 튀르키예는 1987년 유럽연합에 가입을 신청하고, 1999년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이 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공식적으로 유럽연합과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서방의 언론들은 튀르키예 행정부의 지정학적인 무게 중심이 유럽에서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연 그러한가?
튀르키예의 선택은 옳고 그름을 떠나 유럽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몸값을 높이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튀르키예와 유럽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튀르키예는 유럽통합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유럽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상에서 실제 영토는 유럽보다 아시아에 더 많이 속해 있음에도 튀르키예는 스스로 유럽을 자처하며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정작 유럽 국가들은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에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튀르키예가 유럽연합의 민주주의, 인권 등과 같은 가입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가입 기준으로 '코펜하겐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993년 합의한 이 기준은 소련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 가입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유럽연합이 세운 것으로, 민주주의, 법치, 인권, 시장경제 등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는 유럽연합 가입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둘째, 종교 문제다. 이는 유럽통합의 역사적 맥락으로, 유럽연합의 대다수 국가들이 기독교라는 종교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반면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유럽 내에서 더욱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은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에 미온적이던 유럽연합 측이 오히려 이번 튀르키예의 선택으로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유럽 뉴스 전문채널인 유로뉴스는 이번에 브릭스가 새로운 파트너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브릭스의 경제 규모가 유럽연합보다 2.5배가량 크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유럽연합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6월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브릭스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고 브릭스 참여 의향을 내비치자 유럽연합은 다급해졌다. 피단 장관의 발언 이후 약 2개월 만에 유럽연합은 외무장관 회의에 피단 장관을 초청했다. 이는 유럽연합이 튀르키예와 유럽연합 가입 협상이 중단된 지 무려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이번 튀르키예의 선택으로,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 전망이 곧바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튀르키예가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즉, 이번 선택으로 튀르키예는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레버리지(지렛대)를 확보한 셈이다.
미국 전술핵 배치된 튀르키예의 러시아... 한국은 뭐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9월 9일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튀르키예 정상회담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 전술핵까지 배치된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긴밀하다. 러시아에게 튀르키예는 세 번째, 튀르키예에게 러시아는 두 번째 교역 대상국이다. 이러한 관계는 에너지 분야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현재 전체 튀르키예의 천연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2%에 해당하고, 휘발유와 경유 등 정제유는 러시아에서 무려 51% 가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정제유 수입을 중단했다. 이 틈을 노린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원유와 정제유를 수입해서 이를 다시 튀르키예산으로 포장해 유럽연합에 재판매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히려 두 국가의 경제적 친밀도를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튀르키예의 브릭스 파트너국 참여는 2023년 이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던 튀르키예 국제 가스 허브 프로젝트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자국의 천연가스 수출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튀르키예에 천연가스 허브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제안은 2023년 튀르키예 내부 사정으로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러시아 <타스 통신>은 푸틴과 에르도안이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만나 이 사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1일 <로이터 통신>은 알파르슬란 바이락타르 튀르키예 에너지 장관이 가능하면 2025년에 튀르키예의 보타스와 러시아의 가즈프롬이 협력해 가스 허브 구축을 하기로 했다는 터키의 한 일간지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결국, 튀르키예는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참여로 경제적 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브릭스의 확대는 국제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실제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G20 회원국 중 브릭스 국가는 7개국으로, 10개 아세안 회원국 중 브릭스 국가는 4개국으로 증가했다. 통상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브릭스의 확대는 매우 중요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그간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매우 단순했다. 윤석열 정부는 줄곧 미국과 일본 일변도의 외교를 보여왔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전면적으로 끼어들 태세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외교를 보며,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튀르키예의 선택은 우리 외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