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9일 제주시 비자림로 삼나무숲이 도로 확장·포장 공사로 나무가 잘려져 나가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 있다.
연합뉴스
2차선인 비자림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2018년 현장 투쟁을 시작했고, 2021년에는 공사 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3년 2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환경영향평가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제주도가 그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공익적인 차원에서 사업을 무효화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결했다.
"현장에 상주하면서 모니터링을 했어요.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찾아다녔고 발견도 했어요. '환경영향평가 문제가 있다. 재조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공사를 막고 시간을 끌었어요. 바짓가랑이를 잡고 질질질질 간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저감 대책인데, 저감 대책을 제대로 마련했는지 안 했는지 재판부는 판단하지 않아요. 저감 대책 승인 여부는 환경청이거든요. 그게 참 허탈하더라구요."
시민들이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와 주고받은 그 많은 공문은 재판 과정에서 제주도가 노력한 증거물이 되어 면죄부로 돌아왔다.
제2공항, 비자림로 공사, 사라지는 숨골, 부동산 투기, 해수면 상승과 해양오염 등 제주도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김순애 위원장은 현재 제주도의 문제가 오버 투어리즘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공항이 생기고 도로를 확장하면 뒤이어 인프라들이 갖춰지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제주도를 파괴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프라 확장을 위해 돈이 들어오고 그 돈이 경제를 살린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되게 단순한 논리를 좋아하고 그런 논리가 팍팍 꽂히잖아요. 지금 먹고살기 어려워? 그러면 제2공항 예산 7조. 이렇게 산수적인 게 사람들한테 잘 먹히는 것 같아요."
관광객을 위해서
제주도는 비자림로 2.94km 공사가 끝나면 금백조로 10여km 구간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2공항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4차선으로 넓어진 금백조로를 지나면서 오름과 억새밭, 그리고 곶자왈을 감상하며 10km를 달린다.
'뒤이어 키 큰 삼나무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달리며 하늘을 좁고 가느다랗게 만들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길이 있었나 싶어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던 비자림로. 속성수로 어디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방풍림으로도 쓰이고 헐벗은 산을 위해 재조림용으로 이용되던 삼나무 숲'(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 내용 일부 축약) 3500그루가 잘려나가 지금은 아름다웠던 위용을 잃어버린 비자림로 4차선을 시원하게 통과해 제주 시내로 들어간다. 관광객을 위한 완벽한 로드맵이다.
비자림로, 금백조로, 오름, 곶자왈, 원시림, 천연림, 용암동굴, 성산일출봉, 팽나무 군락, 모슬포, 제주마 방목장, 숲길, 숨골...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주변에서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자연 생태계를 가진 제주도.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태곳적부터 터를 지키며 살아온 생명을 무참히 지워버리는 인간들. 그 위에 쌓아 올린 인간 문명이 아름다울 리 없고 오래갈 리 없다.
이름이 무색한 생물권보전지역
제주도는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있고,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6년마다 재평가를 통해 세계자연유산 유무를 결정한다. 오만의 아라비아 영양보호구역, 독일의 드레스젠 엘베계곡, 영국 리버풀의 해양무역도시는 재평가를 통해 유산목록에서 삭제된 바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보존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세계자연유산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으로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제주도만큼 환경이라는 언어가 오염된 지역도 없어요. 제주도에서는 환경을 무시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요. 정치인들이 환경이라는 말을 안 떠들 수가 없는 거예요. '2030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면서 전기자동차 사도록 부추기는 계획들만 하죠.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 계획을 보면 결국 성장 중심의 산업을 밀어주는 수준이에요. 종합적인 계획들을 도민들이 집단 지성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계속 토론하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계속 개발과 성장을 외친다면 사회는 그렇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고 다른 방식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면 사회는 그렇게 변화할 것이다. 개발 목표가 우선이 아닌 생태 공간에 기반을 둔 사회건설, 그 위에 경제를 고려하는 성장을 이야기할 때다. 아름다운 비경(秘境)을 가진 제주도의 죄가 너무 무겁다.
* 1991년 민자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청년 양용찬을 분신하게 만들었다. 열사는 '제주도를 하와이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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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변정윤: 작은책 편집위원 /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밀양을 살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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