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2 13:23최종 업데이트 24.12.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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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종이 울린다. 예배가 시작된다. 둥그렇게 모여 선 사람들이 종소리에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은다. 분주했던 주변이 고요해진다. 기도의 시간, 바람과 새와 강물 소리가 흐른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세종보가 보이는 금강변 천막 앞. 처음 보는 이 예배는 생태학살 현장 예배라고 했다.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성경 구절 낭독도,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없다. 대신 활동가의 증언이 있다. 금강변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흰목물떼새가 알을 어디에 낳고 어떻게 품는지 이야기한다.


금강에서 태어난 흰목물떼새는 자기 태어난 곳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온단다. 그런 곳이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간다. 강이 죽으면 수많은 생명도 함께 죽는다. 강에 기대어 살던 어민과 주민들도 같이 앓는다. 흐르지 못하는 강과 주민과 새들이 앓는 소리가 성경의 말씀을 대신한다.

기복을 바라는 기도는 없다. 흔한 아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종보를 열라는 호소와 흰목물떼새와 도요새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 생명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의 말이 있을 뿐이다. 찬양이나 찬송가도 부르지 않는다. 아니, 함께 부르는 투쟁의 노래가 성가였다. 내가 강이라는 고백과 함께 투쟁가를 따라 부른다. 설교도 찬양도 없는 예배를 드리는 이곳은 '기후교회'라고 했다. 기후교회라니, 무엇을 하는 곳일까.

지난 10월 세종보 천막 앞에서 기후교회의 세 번째 현장 예배를 드렸다.명훈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잠언 1:20)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는 형욱은 고민이 많았다. 사회 문제가 교회 안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의아했고, 교회는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답을 찾고 싶었다. 교회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 연결에 대한 고민은 기후위기에 대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북극 '최후의 빙하'가 녹았다는 뉴스의 충격이 컸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그냥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동안 전문가들, 학자들이 해결할 줄 알았거든요. 우리가 이제껏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 없는 위기가 왔다는 생각에, 이게 나의 생존의 문제라는 느낌이 컸고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이 설정해 놓은 것들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컸어요.

기후위기는 분명 문제고, 개신교는 400년 동안 자본의 편에서 살생과 착취를 일삼으면서 생태계를 망가뜨렸는데, 이걸 회피하고 개신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위선이었어요. 개신교인으로서 부채감이 있었고, 개신교 안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욱에게 영성(靈性)은 중요했다. 영성,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는 믿음'(김상봉, <영성없는 진보>)은 개신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으로 형욱은 동료들과 '생태학살 현장에서 예배하는 기후교회'를 만들었다. 기후교회는 '뭇생명과 호흡하며 예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 생태학살 현장에 모여 '애통하며 함께 기도'를 드린다.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영성을 회복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주하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든 난개발과 생태학살로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었고, 바로 그곳이 교회가, 기독인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현장이 곧 광장이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존재를 똑같이 만들었을 텐데, 지금은 존재들 사이에 위계가 있잖아요. 어떤 존재는 내몰리고 쫓겨나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는데, 이런 상태로 영성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지혜가 광장에서 소리를 높인다는 구절을 좋아하는데, 거리에서 죽어가는 생명들, 고통받는 존재들을 마주하고 함께 할 때 지혜가 생긴다고 읽었어요. 그게 성서의 핵심이라고 보고요. 그리고 광장은 광화문일 수도 있고 삼척이나 세종보일 수도 있어요. 수산시장일 수도 있고 밀려나는 세입자일 수도 있는 거죠. 전국에 생태학살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삼척을 기후교회 예배 참석자들이 원전백지화기념탐 앞에서 묵상을 하고 있다.명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마태복음 22:39)

2024년 7월, 기후교회가 만들어지고 처음 찾은 곳은 삼척이었다.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삼척에는 석탄화력발전소(삼척블루파워)가 새로 생겼고, 석탄화력은 기후위기의 주범이었으며, 삼척 주민들은 망가진 맹방해변과 사라져 버린 비단조개, 공사장에서 나온 슬러지가 풍기는 악취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삼척은 1999년부터 원전건설에 반대하며 백지화시킨 곳이었다. 그런 곳에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섰다. 신규 석탄발전소가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배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 삼척이 원전 건설을 세 번이나 막아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삼척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삼척은 무척이나 먼 얘기였다. 그저 남의 얘기,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맹방해변은 생각했던 것, 뉴스에서 봤던 것과는 달랐다. '말이 안 되는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모랫길이 쩍쩍 갈라지고 새카매져 있었다. 모래 대신 딱딱한 콘크리트가 땅을 메웠다. 바다에서 발전소까지 석탄을 운송하는 콘크리트 길은 사람이, 생명이 다니지 못한다.

삼척 원전 반대 운동을 하다 이제 화력발전소 반대 투쟁을 하게 된 성원기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바닷속 조개들은 강도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한 참여자는 '강도를 만난 조개가 나의 이웃'이 되었다고, 이렇게도 이웃이 확장된다고 고백했다. 예배 참석자들에게 망가진 맹방해변과 숨 쉬지 못하는 조개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이웃의 일, 내가 사는 곳의 이야기가 된다.

맹방해변 앞에서 성원기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기후교회 예배에 개들도 함께 참석했다.명훈

기후교회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서울의 한 수산시장. 물살이(동물권단체들은 물고기 대신 물에 사는 존재라는 뜻에서 물살이라고 부른다) 비질(vigil)은 형욱이 기후교회를 만들기 전부터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주변화되는 문제가 '종차별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질은 철야 기도, 농성이라는 뜻으로 농장이나 도살장, 수산시장 등을 방문해 현장을 기록하며 진실의 증인이 되는 활동을 의미한다.

물살이 비질의 현장 예배는 신앙고백 대신 '비동물 인간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비질은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선해서, 혹은 정의로워서 여기 오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함께 아픈 우리를 망각하여 관계를 잃고 동물이 되지 못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대형 수산시장을 돌아다니며, 물살이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지 목격하고 기록했다. 물살이들이 갇힌 수족관, 몸통이 썰리고 토막 나는 도마 위가 이날의 현장이었다. 수족관과 도마 앞에서 형욱은 '생태학살의 목격자'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수산시장에 들어갔을 때 방금까지 살아서 움직이던 장어가 몇 초 만에 쇠꼬챙이에 머리가 꽂히는데, 이게 진짜 학살이구나 생각했어요. 에코사이드(생태학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전 생태학살의 현장을 마주하고 싶었고 그래서 기후교회를 시작했는데 학살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구나 느꼈어요."

학살의 목격자라는 느낌은 곧 '학살에 가담해 왔다'는 부채와 책임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가장 약하고 낮은 존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얘기해요.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근원인데, 산이 깎여 나가고 강이 썩을 때, 생명이 무참히 망가지고 짓밟힐 때 어떨까. 성서에는 인간과 닮은 존재로 예수가 왔고, 예수가 사랑과 공의를 위해 죽었고, 인간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거든요."

학살에 가담하고 있다는 생각에 형욱은 괴롭다. 그렇지만 이 괴로움을 놓기가 어려웠다. 괴로움을 외면하는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이 느낌이 형욱을 계속 고민하고 행동하게 만들 것 같았다.

학살 현장을 목격한 충격과 괴로움을 함께 있는 사람들과 나눠 가졌다. 처음 느껴본 것들, 익숙한 시장의 풍경이 낯설어진 장면들, 나와는 상관없던 단어가 갑자기 내 삶에 끼어드는 것 같은 느낌, 말해본 적 없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낯설고 어색한 것들을 말로 꺼내보고 글로 적는다.

현장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 불능을 고백하는 마음, 지켜보고 애도하는 마음'을 나누고 이게 사랑임을 고백한다. 그 힘으로 말과 행동과 삶을 함께 바꾸어가자고 기도한다. 마음 나눔으로 오늘의 예배는 끝이 났다. 이제 물살이는 음식 재료가 아니게 되었고, 맹방해변과 금강은 그냥 바다나 강이 아니게 되었다. 함께 모여서, 현장을 마주하고 그 느낌과 의미들을 나눌 때, 그때 비로소 영성이 생겨난다.

비질 활동이 끝난 후에 참석자들은 각자의 마음을 종이에 적어 나누었다.명훈

"몸 안에서 분열이 없이 오히려 지체들이 서로를 동일하게 돌보도록"(고린도전서 12:25)

기후교회와 형욱은 '기후위기'라는 한 번도 맞닥뜨려 본 적 없는 위기 앞에서 어떻게 영성을,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어떻게 활동을 이어갈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하려고 한다. 다만 그 해법을 고민할 때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종차별주의와 착취에 기반한 체제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차별과 착취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 않으면, 기후위기 문제는 기술적인 해법으로 빠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자본에 포획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자본가들, 기득권들 입맛에 맞는 운동밖에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운동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권력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존재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니까요."

활동 영역이 동물권리운동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이유였다. 형욱은 종차별과 착취의 문제가 종교 안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개신교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을 얘기하는 것은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욱은 전통적인 개신교를 벗어나지 않으면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신교는 오랜 기간 '자본과 결탁해 성서를 입맛대로 해석'해 왔다. 창세기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다스리라'는 구절을 인간이 다른 존재를 착취해도 된다고 읽지만, 형욱은 이제 '상호돌봄의 관계'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형욱이 경험한 교회는 개신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면해 왔다. 형욱도 그냥 '교회가 썩었다'고 냉소하고 신앙을 저버릴 수도 있었다.

사진은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동물행진 실무팀에서 열린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정윤영

그런데도 희망이, 있을까?

형욱은 성서가 '부패한 시대를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개신교를 부끄러워하면서 영성을 이야기하고, 차별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지혜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버려지지 않는다.

"저희 희망은 해결에 대한 결과적인 희망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봐요. 그런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함께 모여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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