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후긴급행동의 재판에 방청연대를 온 사람들
청년기후긴급행동
"저항과 연대를 통한 돌봄이었어요. 방청연대 오신 분들을 합치면 족히 백 분은 넘으실 거예요. 이어달리기하듯이 오셨어요. 덕분에 인연을 맺은 분들이 많았죠. 여러 서사가 쌓였고, 감동할 일이 많았어요." (윤석)
재판정에서는 활동가들의 최후진술이 방청연대 온 사람들을 울렸고, 재판이 끝난 직후에는 방청연대 온 사람들의 소감이 활동가들을 울렸다. 그렇게 만 3년에 걸쳐 재판을 치렀다. 1심과 2심에서는 동일한 벌금형이 나왔다. 진이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윤석이 말한 '이어달리기 돌봄' 덕분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대법원에서는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고민들, 아픔들이 길이 되는 과정에서 어떤 호흡을 주고받았어요.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문화가 피어나기도 했고요. 이 단체가 돌봄에 애쓰고 있다는 걸 모두 느끼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돌봄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거든요." (윤석)
올해 윤석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돌봄 프로그램을 설계해서 함께하고 있다. '아픈 몸들의 난장판'(이하 난장판)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상담 프로그램이다.
"큰 사건을 다루는 일을 할수록 내부 관계망을 잘 돌보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런데 외부의 일이 바빠지면 안을 잘 보지 못하게 돼요. 그렇게 문을 닫거나 무너진 곳들을 많이 봤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는 이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윤석)
아픈 사람들의 기후운동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 채원은 난장판에 참여하고 있다. 난장판은 이 주에 한 번씩,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보금자리에서 열린다. 테이블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광색 조명 하나를 벽에 비추면 꼭 "비밀스러운 온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난장판을 하면서 이들과 평생 함께할 수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멤버들이 온 마음으로 따뜻하게 봐주니까 제가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 안에 뭔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채원)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돌봄과 기후운동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돌봄을 기후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채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착취해서 생산한 다음에, 쉽게 쓰고 버리는 구조에서 살고 있어요. 그게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고요. 그렇게 안 살려고 하는 거, 좀 느리지만 아픈 지구를 돌보는 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도 충분히 기후운동이지 않을까요?" (채원)
채원은 지구를 돌보기 위해서는 지구의 아픔을 충분히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과 나 역시도 지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채원은 단체 내에서 '아픈 사람들의 기후운동'이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열고 글방에 참여했다. '난장판'의 전신 격이었다. 멤버들은 이 모임들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취약하고 아픈 이들이 운동을 한다니,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운동'과 '싸움'이 강인하고 튼튼한 사람들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이 아파하는 과정은 속도를 늦춘다. 눈에 띄는 업적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 사회가 경쟁을 부추기고 능력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채원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했었다. 외부 성과에 매달렸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잃게 됐다. 너무 쉽게 고립되었고, 그런 자신을 싫어하게 됐다.
고립은둔청년 60만 시대다. 많은 청년들이 채원과 같은 상태에 처한다. 이들은 각자도생을 요구받으며 자랐다. 너만 잘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고, 그게 너의 존재 이유가 될 거라고 했다. 공동체가 뭔지 모른다. 애초에 마을 공동체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자연에서 공동체 감각을 기를 기회도 없었다. 대신 윗세대들이 경험했던 '성장'이 디폴트 값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이들이 성인이 되자 사회는 성장을 멈췄다. 삶의 터전인 지구 생태계는 무너지려고 한다. 이제는 청년 삶의 디폴트값을 '고립'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은 채원에게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실제로 채원에게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