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5 06:56최종 업데이트 24.11.2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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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두 번의 직접행동이 있었다. 석탄발전소를 막으려는 청년들이 벌인 일이다. 첫 번째는 2021년 겨울, 두산 본사의 로고 조형물 위다. 활동가들의 발언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분다. 조형물 위의 활동가들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두 번째는 2023년 가을, 삼척석탄화력 공사장 입구다. 강철 외피를 두른 화물차량들이 그들 앞에 줄지어 서 있다. 민소매를 입은 활동가들의 살이 아직 뜨거운 초가을 햇볕에 속수무책으로 익어간다.

살고 있는 곳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서 벌인 일이 아니다. 이들의 주 거주지는 서울·경기도권이고, 이들이 막으려는 석탄화력발전소는 베트남 하띤성과 한국 삼척에 들어설 예정이다. 국가·기업과 직접 부딪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잘못하면 자신에게 '불법' 날인이 찍혀 앞날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자신이 살지도 않는 곳에 들어서는 석탄발전소를 절실하게 막는 이유는 뭘까?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멤버 시봉이 삼척석탄화력 공사장 입구에서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청년기후긴급행동

"두산중공업이 참여하는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는 한국이 짓게 되는 최후의 석탄발전소가 될지 모릅니다. 기후위기시대에 더 이상의 석탄화력발전소는 지어져서는 안 됩니다." (2021년 2월 18일, 청년기후긴급행동 은빈)

"피부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후위기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저는 계속 바뀌는 사회를 상상하고 함께 저항하며 저의 의지대로 살고 싶습니다." (2023년 9월 12일, 청년기후긴급행동 시봉)


직접행동을 벌인 이들은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멤버들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의 청년들은 남은 생을 기후위기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모르는 척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니까 청년기후긴급행동은 '기후'위기의 '긴급'성을 이해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는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저항과 연대를 통한 돌봄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직접행동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처음부터 함께 활동해 온 윤석은 역동성이 강했던 시기를 기억한다. 2021년은 세계적인 흐름과 맞물려 한국 청소년·청년의 기후운동이 급박하게 전개된 해였다. '한국의 그레타 툰베리'라며 언론에 소개되는 이들만 해도 열 명이 넘었다. 그해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린워싱이었다.

그 상태로 정부가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4G) 회의를 열겠다고 하자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한 멤버가 단식 시위를 했다. 그로부터 약 열흘 뒤였던 회의 날, 멤버들은 회의를 보이콧하고 회의장 밖에서 시위했다. 대통령 차량에 뛰어들어 당시 대표가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때 했던 회의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우리가 이 일에 매몰이 돼서, 생사의 문제와 돌봄의 문제를 간과했던 거예요. 저를 비롯한 1기 운영위원들이 책임을 느끼고 다 같이 그만뒀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이 기후'돌봄'행동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냔 이야기가 있었죠.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그렇게 해서 얻게 됐어요. 저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단어죠." (윤석)

그 뒤로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직접행동의 빈도가 줄었다. 대신 내부를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살을 부대끼며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 '공가'를 마련해 공들여 가꿨다. 2021년은 직접행동에 관한 재판을 치르는 중이기도 했는데, 윤석은 이 재판 과정도 역시 돌봄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재판에 방청연대를 온 사람들청년기후긴급행동

"저항과 연대를 통한 돌봄이었어요. 방청연대 오신 분들을 합치면 족히 백 분은 넘으실 거예요. 이어달리기하듯이 오셨어요. 덕분에 인연을 맺은 분들이 많았죠. 여러 서사가 쌓였고, 감동할 일이 많았어요." (윤석)

재판정에서는 활동가들의 최후진술이 방청연대 온 사람들을 울렸고, 재판이 끝난 직후에는 방청연대 온 사람들의 소감이 활동가들을 울렸다. 그렇게 만 3년에 걸쳐 재판을 치렀다. 1심과 2심에서는 동일한 벌금형이 나왔다. 진이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윤석이 말한 '이어달리기 돌봄' 덕분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대법원에서는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고민들, 아픔들이 길이 되는 과정에서 어떤 호흡을 주고받았어요.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문화가 피어나기도 했고요. 이 단체가 돌봄에 애쓰고 있다는 걸 모두 느끼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돌봄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거든요." (윤석)

올해 윤석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돌봄 프로그램을 설계해서 함께하고 있다. '아픈 몸들의 난장판'(이하 난장판)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상담 프로그램이다.

"큰 사건을 다루는 일을 할수록 내부 관계망을 잘 돌보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런데 외부의 일이 바빠지면 안을 잘 보지 못하게 돼요. 그렇게 문을 닫거나 무너진 곳들을 많이 봤어요.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는 이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윤석)

아픈 사람들의 기후운동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 채원은 난장판에 참여하고 있다. 난장판은 이 주에 한 번씩,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보금자리에서 열린다. 테이블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광색 조명 하나를 벽에 비추면 꼭 "비밀스러운 온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난장판을 하면서 이들과 평생 함께할 수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멤버들이 온 마음으로 따뜻하게 봐주니까 제가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 안에 뭔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채원)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돌봄과 기후운동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돌봄을 기후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채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착취해서 생산한 다음에, 쉽게 쓰고 버리는 구조에서 살고 있어요. 그게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고요. 그렇게 안 살려고 하는 거, 좀 느리지만 아픈 지구를 돌보는 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도 충분히 기후운동이지 않을까요?" (채원)

채원은 지구를 돌보기 위해서는 지구의 아픔을 충분히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과 나 역시도 지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채원은 단체 내에서 '아픈 사람들의 기후운동'이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열고 글방에 참여했다. '난장판'의 전신 격이었다. 멤버들은 이 모임들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취약하고 아픈 이들이 운동을 한다니,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운동'과 '싸움'이 강인하고 튼튼한 사람들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이 아파하는 과정은 속도를 늦춘다. 눈에 띄는 업적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 사회가 경쟁을 부추기고 능력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채원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했었다. 외부 성과에 매달렸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잃게 됐다. 너무 쉽게 고립되었고, 그런 자신을 싫어하게 됐다.

고립은둔청년 60만 시대다. 많은 청년들이 채원과 같은 상태에 처한다. 이들은 각자도생을 요구받으며 자랐다. 너만 잘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고, 그게 너의 존재 이유가 될 거라고 했다. 공동체가 뭔지 모른다. 애초에 마을 공동체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자연에서 공동체 감각을 기를 기회도 없었다. 대신 윗세대들이 경험했던 '성장'이 디폴트 값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이들이 성인이 되자 사회는 성장을 멈췄다. 삶의 터전인 지구 생태계는 무너지려고 한다. 이제는 청년 삶의 디폴트값을 '고립'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은 채원에게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실제로 채원에게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줬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 채원이 첫 '난장판' 시간에 만든 작품. 사랑을 형상화했다.김채원

"멤버들은 저를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대로 내버려뒀어요. 방치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같이 아파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쳤죠. 그리고 곁에 묵묵히 있어 줬어요. 제가 뭔가 시도할 수 있게 믿어줬어요.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죠." (채원)

채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죽음을 생각하면 슬퍼할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사랑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애인, 멤버들을 비롯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 그리고 이 사회와 나 자신까지도 사랑하고 싶다는 뜻이다.

"기후운동을 한다는 건 사회 악습을 변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건 다 연결되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자본가와 사회체제도요. 그럼에도 누군가를 싫어하고 증오하기보단, 바뀔 수 있다고 믿어주고 변화를 응원할 수 있어야겠죠. 혐오보다 사랑이 가진 힘이 더 크니까요. 그리고 그럴 때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도 구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채원)

지금 여기서 서로 돌봄, 서로 훈련

현진은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난장판을 운영하는 멤버 중 한 명이다. 그에게 난장판은 용기가 필요한 장이다. 열릴 때마다 매번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오늘도 쉽지 않겠군!" 자신의 취약함을 내보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현진이 채원을 보고 놀란 건 그 때문이었다. 채원은 취약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함께 돌봄을 주고받자고 요청했으며 지금까지도 작고 큰 돌봄을 해오고 있다. 채원의 마음이 난장판을 가득 채웠고, 현진은 거기서 용기를 얻었다.

"보금자리에 들어갔는데 쿠키 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저희가 오븐이 있거든요. 채원이 베이킹을 하면서 '현진 왔어?'하고 맞아줬어요. 다 같이 힘을 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누군가 미리 와서 준비하고 있었던 거잖아요."(현진)

아직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진은 난장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말하기에 관한 압박을 느낀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멤버들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이야기해도 된다는 사항을 약속문에 추가하자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상대에게 화답하기 어려울 때, 멤버들은 그것도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줬다. 감정이 북받쳐 울음이 날 때는 현진이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게 불을 끄고 침묵을 지켜줬다.

"제가 어떤 멤버를 보면서는 '저만큼 솔직해져야 되는구나' 했다가, 다른 멤버를 보고서는 '아니구나'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내가 원하는 속도로 말하면 되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훈련하는 느낌이에요." (현진)

취약함이 약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돌봄의 씨앗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 때문일 것이다. 약속문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멤버들은 서로의 상황과 특성을 이해한다. 그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 써서 연락하기도 하고, 무리하는 일이 없도록 스케줄이 늦어지는 것을 기다려주기도 한다. 멤버들에게 껄끄러운 지점을 솔직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다른 멤버의 이야기를 기억하려 애써보기도 한다.

서로 돌봄의 장이란 곧 서로 훈련의 장이기도 한 셈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그리고 내가 나를 훈련시킨다. 훈련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시도를 서로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서로 돌봄의 깊이는 거기서 판가름이 난다.

"모여서 어떤 가치관을 가졌다고 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의 많은 부분에 작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단체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향한다면요. 공동체라는 게 서로에게 지탱이 될 수 있는 관계잖아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상대가 어디를 아파하는지 느끼지 못한 채 저 멀리 있는 걸 공허하게 바라보는 관계가 아니라요." (현진)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이 2023 지구해방의날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청년기후긴급행동

현진은 청년기후긴급행동이 모든 해방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단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멤버들 역시 활동을 하며 소진되기도 했고, 고립되기도 했고,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생태적인 존재". 해방은 별세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그러니까 현실에서만 가능하다. 아픔을 해소하는 것보다 아픔을 직면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게 더 중요하다. 길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지금 그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빠른 속도에 맞춰 운동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과 일상이라는 구체적인 현장에 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구체제에서 벗어난 삶을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훈련하는 거죠. 우리가 불꽃처럼 짧게 만났다 헤어질 게 아니니까요." (현진)
덧붙이는 글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보금자리 '공가'는 멤버들이 살림하고, 일하고, 밥 먹고, 쉬는 삶터다. 서로를 돌보고 일상을 나누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더 안전하고 다정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문화를 재정비하기도 한다.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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