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5 06:57최종 업데이트 24.11.0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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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일러스트 [제작 이태호] 연합뉴스

가정의 살림살이가 어려우면 피아노부터 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나라 정책과 재정 운용을 살펴보면 가장 만만한 것이 문화행정과 예산이라는 이야기가 예술현장에서는 우스개로 머물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이 없어지기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사업이 갑자기 생겨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석쇠 위 고등어처럼 현장 예술인의 삶은 영문도 모른 채 뒤집어지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 글은 최근 10년간 예산삭감, 특별회계 포괄 이양, 기구 통폐합 등 지역 문화행정의 파행 사례를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예술이 포획되거나 종속되는 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방의회의 블랙리스트 예산삭감

지역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4년 12월 2일 충청북도의회 제336회 정례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특정 정당에 의해 작성된 지침서에 해당하는 괴문서가 회의 개최 이전에 나돌았다는 주장에 제기되었으며, ㈔충북민예총(이하 충북민예총)의 5개 사업, 충북시민단체 관련 사업, 민선 6기 도지사 공약사업 등의 7~8개 사업을 "아랑곳하지 않고 삭감해야 할 사업으로" 적시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2014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결국 2015년 12월 2016년 예산안 심의에서 재발하게 된다. 다수당의 폭거라고 할 수 있는 예산 칼질이 이루어진다. 2015년에 이어 NGO 관련 사업과 도지사, 교육감 역점사업 예산이 삭감되었는데, 주로 행정문화위원회와 교육위원회 예산이었다. 충북민예총 관련 예산은 2015년 12월 4일 행정문화위원회에서 정례사업 13개 중 9개 사업, 70%에 대해 예산을 삭감하였다. 이는 문학, 미술, 연극, 음악, 전통음악, 영화, 서예 등 장르별 대표 사업들이다. 2014년 괴문서 파동이 파동에만 그치지 않고 1년이 지나서는 상임위 차원에서 보란 듯이 실행되었다.

'민화협회'의 예산은 민예총의 예산이 아님에도 '민'자가 있다는 이유로 민예총의 예산으로 간주되어 삭감되었다는 말이 나도는 등 2년에 걸쳐 도의회에 의한 일방적인 예산 삭감과 항의에 따른 예산 부활 및 추경에서의 부활은 다수당의 횡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충북도의회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거대 여당의 이념적 탄압으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면서 의회 권력을 통한 지역의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본질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블랙리스트에 의한 사찰과 검열 그리고 지원 배제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광역단체장의 차별적 예산삭감

울산민예총이 지난 2023년 3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문화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울산민예총

2022년 울산광역시 민선 8기 김두겸 시장이 들어서면서, 울산시는 문화관광체육국 소관 2023년도 당초예산 편성과 민간단체 보조금 상반기 1차 공모에서 울산민예총의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하고, 보조금 공모사업에서도 민예총 소속 단체를 배제한다. 그리고 울산시에서 주최하는 각종 기념식과 문화 관련 행사에 민예총 인사의 참여를 노골적으로 배제했다.

울산시는 문화관광체육국 예산이 줄어 예술단체 지원사업 예산 삭감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2022년 계기성 사업인 전국체육대회(202억 원)가 반영됐다. 이에 울산민예총은 관광진흥과 예산은 66원 증가하여 문화예술은 위축시키면서 관광산업에만 몰두하는 편협한 문화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고 울산문화정책 전면 재검토와 울산시 문화정책의 전환을 촉구한다.

2023년 울산시는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사업의 신생예술단체 지원사업과 전문예술단체 지원사업 예산 약 12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지역의 80~100여 개의 예술단체가 정기공연과 전시를 못하게 됨으로써 지역 예술단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반면, 울산불꽃축제 7억 원, 울산락페스티벌 8억 원, 태화강 국가정원 여름축제 2억5000만 원을 신설하고, 고복수가요제와 국제목판화페스티벌 등의 예산을 증액해 약 27억 원 규모의 축제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축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각 지자체가 지역의 기초 문화예술에 투입해야 할 예산의 원칙성 보다 정책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재정 지원사업은 재정성과목표관리제도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정부업무 평가에 성과 효율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업추진 단계별로 투입지표-과정지표-산출지표-결과지표로 구분하여 구체적인 측정산식(측정방법)을 통한 성과지표 유형을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재정지원사업의 성과관리과정에서 지원 금액 대비 프로그램 개수, 참여자 인원 측정 가능한 정량지표 위주의 정량성과 관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방분권 문화자치의 이면 – 특별회계 포괄 이양

최근 10년간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예술인복지법,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예술후원활성화에 대한 법률,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등 문화예술관련 법률들이 제정되거나 개정되었다.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지역문화진흥계획 수립 권한과 예산의 자율권이 강화되고 있으며, 예술지원사업의 균형발전 특별회계전환, 문화예술 관련 주요 사업의 지방 이양 등 지방분권과 문화자치를 지향하는 정책적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2017년 예술지원 균형발전 특별회계가 전환되어 일반회계로 포괄 이양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지방분권 문화자치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재원의 목적성이 사라지면서 지자체의 현안과 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문화예술 예산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예술 현장에서는 공연장상주단체 지원사업,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사업 등의 특별회계 포괄 이양 유예를 요청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지방재정의 주요 특성은 중앙으로 집중된 세원, 낮은 수준의 지자체 재정자립도, 지자체간의 재정자립 격차 등으로 요약된다. 세원이 과도하게 중앙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수준이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재정은 세원의 중앙 편중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 간 재정불균형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광역정부보다 기초정부의 재정여건이 더 취약한 실정이며,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지자체가 재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 효율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상 지역의 우선 현안, 지자체의 재정여건, 자치단체장의 성향 등의 변수에 따라 지역 문화사업, 특히 기초순수예술 창작지원 예산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그 결과 예술생태계의 분화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재원이 투입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문화예술 육성지원 사업은 창작활동 및 연구지원 등 향유기회를 생산하는 과정보다는 각종 축제, 예술제, 경연 대회 지원 등 문화예술 향유기회를 확대하는 결과물 중심의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예술정책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정책의 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공적 지원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 울산민예총의 경우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별적 배제와 기초예술분야 창작지원 예산이 삭감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 고약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분권과 문화자치를 지향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방정부는 그러한 기조를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분권과 문화자치의 정책적 기조는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창작 결과물 생산 중심의 지원구조에서 기초예술이 성장할 수 있는 과정 중심의 지원으로 현실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균형발전 특별회계에서 일반회계로 포괄 이양되고 있는 문화예술예산은 자치단체장의 쌈짓돈으로 여겨진다. 창작지원이 멈추고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떠나 축제판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은 울산민예총만의 상황이 아니다.

공공기관 혁신의 희생양 – 지역문화재단

2022년 7월 29일 당시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이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언성 기재부 공공정책국장, 최상대 2차관, 김윤상 기재부 재정관리관.연합뉴스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으며 이는 조직운영의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 그 결과 대구, 충남, 경북, 울산의 광역문화재단이 문화관광재단으로 재편되었다.

2022년 대구문화재단, 대구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오페라 하우스가 대구문화예술진흥원으로 통폐합되었다. 2023년에는 충남문화재단, 백제문화제재단, 충남문화관광재단이 충남문화관광재단으로 통폐합되었으며, 경북문화재단은 경북콘텐츠 진흥원과 통합되었다. 울산시는 울산관광재단 운영조례를 개정하고 울산문화재단 법인을 해산하면서 울산문화관광재단을 출범했다. 세종시의 경우 재단 설립 관련 조례를 개정하여 세종시 문화관광재단으로 출범했다.

충북의 경우 충북문화재단을 문화관광재단으로 재편하려 하자 충북민예총은 충북문화재단 사무처의 인력 증원, 사업예산 증액 등 충북 기초예술 분야 지원의 확대 없이 관광조직을 신설하고 정책적 역할을 강조한다면, 충북의 기초예술은 관광산업에 종속될 것임을 경고했다. 그리고 충북문화재단의 독립성을 강화할 것과 도지사 공약인 충북 관광 전담조직 신설할 것을 요구하였다. 지역 예술계의 반발이 거세자 충북문화관광재단 재편 대신 충북문화재단 정관을 개정하여 본부체계로 전환하면서 관광사업본부를 신설하게 되었다.

광역문화재단의 통폐합 문제는 전남과 전북의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 2009년 전남문화예술재단 출범, 2016년 전남문화관광재단으로 통폐합되었으나 2020년 다시 전남문화재단과 전남관광재단으로 분리되었다. 전북의 경우 2015년 전북연구원에서 설립방안을 연구하고 2016년 전북문화관광재단으로 출범했다. 효율성 제고보다 경영평가 부진 등 전문성의 결여가 조직운영의 문제가 되자 2023년 전북도의회에서는 문화, 관광 분야를 분리하는 혁신안을 요구했다. 전남과 전북의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문화재단은 효율성 보다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강원문화재단은 재단의 독립성을 위해 2011년부터 민간이사장제를 도입했다. 민간이사장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유지하는 문화행정을 의미하며, 부산문화재단 2014년, 충주중원문화재단은 2021년에 민간 이사장제를 도입했다. 정부가 문화․ 예술 활동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되 직접 간섭하지는 말고 자율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당위론을 강조하는 것이다.

광역문화재단은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자율성이 제고되는 전문 조직이다. 단체장의 공약과 관심 사업이 아닌 지역 예술의 공익에 기반할 때 존재 의미가 있는 조직이다. 광역문화재단의 민간이사장이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당연직 이사장인 자치단체장의 역할은 출연 기관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 예술인의 역할

최근 10년간 예산삭감, 특별회계 포괄이양, 기구 통폐합 등 지역 문화행정의 파행 사례를 살펴보았다. 집권 정당의 눈치를 살피는 지방의회,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은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형을 크게 뒤흔들 수 있다. 때로는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가 충분한 당위성을 갖더라도 지방정부에서 수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역의 상황을 무시한 채 중앙정부에서 제시하는 표준화된 정책 방향은 지역 정책수행 기관의 전문성을 훼손할 수 도 있다. 지방분권과 문화자치의 간극은 생각보다 더 멀리 벌어져 있다. 그에 따라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은 물론 삶 자체가 요동치기도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효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성에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으며 그에 기반하는 법적 제도적 절차를 마련했다. 그것이 우리가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대의민주제를 유지하고 지키고자 하는 이유인 것이다. 대한민국 예술인의 창작이 뒤틀리고 삶이 요동치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요동치고 표현의 자유가 뒤틀리는 것을 대변하고 상징한다. 이제 우리는 예술을 통해 한국 사회의 좌표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가 원하는 예술인의 역할이자 예술의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용진 충북민예총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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