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하고있다. 포니정재단은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작가 한강 씨를 선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저는 노벨문학상이 한강에게 주어졌기에 더 특별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노벨 위원회가 아시아 여성작가를 특별히 배려한 게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시아이든 비아시아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다수가 생각하기조차 꺼리는 진실을 낱낱이 캐내 그처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담아낸 작가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계가 전쟁과 죽음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현재, 한강은 누구보다 주목할 목소리를 내는 작가입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발표된 후, 몇몇 사람과 단체가 볼멘 소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불만의 이유가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작가의 책을 안 읽었노라고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저는 언론학자로서 꽤 오래 저널리즘을 강의했습니다. 저널리즘은 글쓰기에 앞서 취재와 사실 확인을 먼저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저조차, 한강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읽어낸 다양한 문헌과 사료, 발로 뛴 현장 조사와 관련자들을 수소문해 면담한 과정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문학의 언어로 쓴 역사이자 저널리즘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 엄청난 사건들을 직시할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박에 가까울 만큼 철저한 조사와 확인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지요. 여기에 작가는 "제대로 써야 한다"는 유족들의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만일 작품의 진실성에 이견을 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작가가 쏟아 부은 노력과 고통의 절반 만이라도 시도하며 문제제기를 해야 최소한의 자격과 설득력을 갖추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먼저 작가의 책부터 읽어야겠지요.
한국인 대다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 편에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각기 76년과 44년의 시간 속에서 역사적으로 정리가 끝난 사건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은 잘려 나갔다가 봉합된 손가락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접합수술이 잘 됐다 해도, 신경 부위를 계속 바늘로 찌르며 고통을 참아내야만 상처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몇 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아픔을 몇 주 동안이나 견뎌야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이 과정을 생략하면 수술 위쪽 마디가 썩어서 일평생 고통받게 됩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작가의 광주 방문이 늦지 않았듯, 우리가 제주와 광주의 상처를 보듬기에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 사실은 영원히 고통받는 저주를 피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광주 시민들의 희생, 배려, 연대를 기억하며

▲5.18민주화운동 기간동안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주먹밥을 나눠준 일화는 유명하다.
5.18기념재단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하는 자신의 뺨에서 녹는 눈과, 제주 4.3 사건 당시 시신들의 뺨에서 녹지 않던 눈이 같은 눈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이 순환하듯, 역사도 순환합니다. 제주공항의 활주로 아래 쌓인 유골들이 말해주듯, 한국 현대사는 야만적 학살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도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에 도사린 폭력의 유전자는 계속해서 비극을 잉태할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망가진 채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국을 "헬조선"이라는 별명으로 불러 왔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지옥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만들어 오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동료 노동자의 일자리가 정규직이 되는 것을 "공정"의 이름으로 반대했고,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 계속 꼴찌인데도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언한 정치인에 열광했으며, 고향, 거주지, 학교, 직업 따위로 이웃을 구분 짓고 경멸하는 일상을 살아 왔습니다.
<소년이 온다> 독자는 군부에 맞서다 잡혀 온 시민군들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가혹한 고문뿐 아니라 일상적 배고픔에 시달렸는데, 한끼 식사가 2인 1조로 한 개의 식판에 담겨 나왔습니다. 식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지요. 적은 밥과 반찬을 놓고 짐승처럼 서로 으르렁거리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민들을 서로의 적으로 만드는 것은 근본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효과적 수단일 뿐 아니라, 책임 당사자인 정부에 대한 투쟁을 무력화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광주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아는 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동료 시민들이 발휘했던 희생, 배려, 연대의 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길 잃은 난파선이 된 한국사회를 안내할 등대를 재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광주를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연대의 희열을 맛본 사람들은 결코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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