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6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최근 <경향신문>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은 집권 2년 동안 공식적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1000번 이상 사용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지난 4월 한 달에만 공식 메시지에서 '자유'를 184회 사용했다고 한다. 자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전히 언론들은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해석하고 있다.
이 자유는 정부의 각종 혁신 정책을 위한 중요한 기준 혹은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금년도 정부혁신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4대 혁신원칙으로 현장, 협업, 행동, 해결을 제시하였다. 혁신의 원칙으로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공식적인 혁신의 원칙보다 대통령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자유가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할 것이다.
권력의 언어는 평범하지 않다. 일상적인 대화의 언어조차도 일상적이지 않다. 하물며 개혁을 강조하며 사용되는 언어는 그 자체로서 권력이 된다. 권력의 언어는 혁신의 언어가 되어 합리적 논쟁의 과정이 없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한 단어가 권력의 언어가 되는 순간 그것의 본뜻은 사라지고 현장의 정책은 왜곡된다.
여성가족부가 폐지 대상이 된 지 벌써 두 해를 넘어섰다.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는 여성가족부의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부패의 온상으로 낙인 되었고, 예산은 대폭 삭감되어 연구실의 젊은 연구자들의 미래조차 불투명해졌다.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발표된 의대 학생의 급격한 증원은 병원의 진료체계를 무너뜨리고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전국을 헤매고 있다. 100년 만에 간신히 광복된 조국의 땅으로 돌아온 독립군의 흉상은 육사에서 철거의 논쟁에 휘말렸다. 이 모든 것들이 혁신의 이름으로 발생하였다. 정부 조직이 멈추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이 중단되고, 환자가 전국을 헤매고,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손상되었다. 혁신이라는 외양을 걸쳤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9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권력의 언어는 여러 정부기관의 정체성과 핵심기능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 권익과 분리되었고, 감사원의 독립성은 뒤로 숨어 버렸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들은 사라지고 독임제 조직이 되었다. 위원회 형태의 정부조직이 설치된 이유는 조직운영의 독립성과 정책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 조직에서 독립성과 공정성은 사라졌고, 위원회는 사실상 독임제 조직이 되었다. 이 또한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결과이다.
권력의 가치는 휘두름이 아닌 감응에 있다. 감응은 말이 없어도 소통되며,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며, 재촉하지 않아도 앞으로 가며,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인다. 강한 언어를 쓰지 않아도 능히 힘을 발휘한다. 감응이 있는 권력의 언어는 아무리 작게 해도 높은 담을 넘어가고, 감응이 없는 권력의 언어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한 자도 안 되는 낮은 담조차 넘어가지 못한다. 감응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무주읍 내의 등나무 운동장에 가보면 된다.
권력의 언어는 말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감응이 있는 권력을 제대로 누리려면 권력의 언어를 줄이고 대신 사람들의 말문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부르는 혁신, 말문을 열게 하는 혁신이어야 한다. 권력의 언어가 줄어든 곳에 국민의 생각이, 기다리던 해답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권력의 언어 대신 국민의 언어와 생각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국민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 말문이 트인 곳이 혁신의 진짜 시작점이 된다. 말문이 열린 곳에서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응의 혁신이 가능해진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윤태범
* 필자 소개 : 윤태범은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행정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서울시 감사위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행정개혁 전문위원,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 정부혁신과 공공개혁과 관련된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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