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과 터빈 블레이드 서명식을 마친 뒤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체코 핵발전소 건설사업에 우리나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언론은 약 24조 원짜리 '잭팟'을 터뜨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체코와 협상이 진행 중인 이 핵발전소는 1천MW 용량이다.
그런데 2016년 착공한 1400MW 용량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 비용이 8조 6천억 원이다. 8년의 시간 차이, 해외 공사로 인한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해도 40%나 용량이 더 큰 발전소 건설비용이 3분의 1밖에 들지 않았던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야당과 체코 현지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24조 원도 '거의 덤핑가격'이라는 지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같은 회사가 건설하는 같은 발전소라도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료비 비중이 큰 화력발전소와 달리 핵발전소 경제성을 결정하는 것은 건설비용이다. 또 대규모 건설공사 특성상 공사 기간 단축, 공급망 안정성 등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발전소 건설 비용이 프랑스의 절반 정도이고, 우리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정부 정책이 핵발전소 건설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9년 제정한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다. 고리1호기 가동 직후에 만든 이 법은 더욱 효율적으로 핵발전소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것이다.
핵발전소처럼 넓은 면적이 필요한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는 다양한 용도의 땅을 매수하거나 용도변경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산업부 장관이 전원 개발사업으로 승인하면 18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인허가, 면허, 승인, 협의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사업자가 필요한 땅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묻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두 차례 설명회나 공청회 정도만 진행하면 정부 의지에 따라 발전소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주민들이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사유재산 수용은 이뤄진다. 이에 발전소·송변전 시설 인근 주민들은 전원개발촉진법이 '무소불위의 권한'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전원개발촉진법은 건재하다.
안전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안전 규제는 중대 사고를 대비한 것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실제 발전소 운전 과정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동차로 예를 든다면 안전벨트나 브레이크 잠김 방지시스템(ABS),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TPMS)가 없더라도 자동차는 잘 달린다. 하지만 비상상황에서 이들 장치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연료가 녹는 일이 발생하자, 핵연료의 비상노심 냉각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대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사고 저항성 핵연료(ATF)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유럽연합(EU)에서 녹색산업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녹색 분류체계(Taxonomy)에 핵발전을 포함할지 논쟁이 오고 갔다.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찬핵 국가들의 핵발전 포함 주장과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한 탈핵 국가들의 핵발전 제외 주장이 격렬히 부딪쳤다.
결국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사고 저항성 핵연료 도입, 고준위 핵폐기물 대책 마련 등 몇 가지 단서를 달고 녹색 분류체계에 핵발전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안전성과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하고, 프랑스 같은 핵발전 강국의 주장도 일부 수용한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진행한 우리나라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논의에서는 이런 세부적인 사항이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냥 핵발전을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 특히 유럽도 핵발전을 인정한다는 식의 보도가 다수였다. 결국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 도입 시점이 2025년이 아니라 2031년으로 바뀌었다. 아직 국내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었다.
2011년부터 시작한 국제사회의 사고 저항성 핵연료 논의에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기존과 동일한 핵연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안전 규제는 결국 비용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더 저렴한 이유는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현실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