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위원회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공지
노벨위원회 홈페이지캡처
나는 한강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이런 열쇳말은 향후 한국문학이 가야 할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고 판단한다. 물론 문학에 유일한 정답이나 정해진 길은 없다. 하지만 한강의 이번 수상은 문학에서 지역성과 보편성, 민족성과 세계성의 관계를 살펴보는 또렷한 좌표를 제시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20세기 현대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일랜드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는 오래전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언제나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관해 쓰고 있는데, 더블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수성에는 보편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강은 한국의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몰이해와 폭력,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항쟁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보편성"을 발견했다.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는 경로는 추상적 보편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현실의 뿌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걸 한강의 수상은 확인해 줬다. 나는 이 점이 앞으로도 한국 작가가 잊지 말아야 할 지점이라고 판단한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비슷한 문화적 맥락에서 나온 성과다. 이 작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사회의 지역성 속에서 현 단계 인류 문명의 어떤 구멍을 드러냈다.
한강 작품이 천착하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지나간 일이 아니다. 권력은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한강이 걸어온 길에는 자유의 억압이 만든 트라우마가 새겨져 있다. 내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보는 <소년이 온다>는 2014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3차 심사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다. "책에 줄을 쳐가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검사해,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라는 증언이 있다.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이런 경우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23년에는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로 분류돼 일선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된 일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은 한강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박찬욱, 봉준호, 황동혁 등 칸 영화제, 오스카상, 에미상 등 국제적인 예술상을 수상해 한국 문화계에 크게 이바지한 감독들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이 밝혀졌다. 우습게도 블랙리스트 목록이 유력한 해외 예술상 수상 리스트라는 씁쓸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정치적 탄압은 문학예술의 목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정보 공유와 평가가 이뤄지는 시대에는.
주변부에서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