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원희룡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경기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남소연
윤석열 집권 1년여 만에 터진 대형 악재에 등판해 김건희 일가를 비호하고 나서기 전까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권의 다른 핵심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게 사실이다. 검찰공화국으로 불린 윤석열 정권 초기 권력의 핵심은 검찰 출신, 그중에서도 특수부 검사, 대통령과 근무 인연이 있는 검사들이 차지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이들은 대통령실을 장악했고, 국정원·국무총리실·금융감독원·국가인권위·국민권익위 등 요소요소에 실세로 포진했다.
원희룡은 국토부장관에 임명됐으나 한동훈 법무부장관이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실세에 가려졌고,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이른바 '윤핵관'이 위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2024년 7월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원희룡은 '친윤'의 대표선수로 발탁돼 윤 대통령과 멀어진 한동훈의 대항마로 치열하게 싸웠다. 원희룡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윤석열 정권의 선봉장이 되었을까.
원희룡은 20대 대선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최종 득표율 4위로 낙선했다.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와 연대설이 제기될 만큼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홍준표·유승민 후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원희룡은 윤석열 후보 확정 이후에는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에, 당선 후에는 인수위 기획위원장에, 취임 후에는 국토부 장관에 기용되는 등 줄곧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윤석열이 한때 경쟁자였던 원희룡을 중용한 것은 경선 과정에서 우호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원희룡 역시 검사 출신으로 윤 정권 핵심 세력과 전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 경험이 없거나 일천한 '윤석열 라인' 검사 출신들에 비해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진 터여서 여러모로 활용도가 큰 인물이다. 지난 4월 22대 총선 패배 후 여권에서 새 총리와 비서실장 후보로 원희룡이 꾸준히 거론된 것에서도 '검사 출신 중진 정치인' 원희룡에 대한 '현실적 수요'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원희룡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철학(?)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여러 대목에서 엿보인다. 윤석열 정권은 대선 과정에서 공정과 상식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반복했으나 '정적 죽이기'에 올인하고, 범죄 혐의가 짙은 대통령 가족에 대한 철통방어로 일관하면서 언제인가부터 그 구호마저 사라졌다. 자유, 이념,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세력 등 불분명한 정치적 언사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 국정철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굳이 윤석열 정권의 국정철학 혹은 기조를 떠올린다면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시장경제에 정부개입 최소화, 각종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의 유연성 내지는 노조에 대한 적대적 태도, 환경보다는 개발 선호 등을 들 수 있는데, 현 정권의 정책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제주지사 시절 원희룡이 논란이 됐던 사례를 떠올려 보면 그 역시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제주지사 시절 영리병원을 허가해 의료민영화에 시동을 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시민단체들이 공공의료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민영화에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음에도 중국 자본이 서귀포에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도록 허가해 주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논란이 가열됐다.
2018년 도지사 선거에서도 영리병원 허용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했다. 원희룡 지사는 재선에 성공한 후 시민단체가 요구한 영리병원 공론화 논의를 수용했으나,
공론조사 결과 영리병원 반대가 찬성보다 20%포인트나 높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건부 허용' 결정을 내렸다. 그 후 한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진료하도록 한 '조건'에 불만을 가진 녹지그룹 측과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영리병원 설립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영리병원은 불발로 끝났지만, 원희룡의 의중이 잘 드러난 사건이었다.
제주지사 시절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두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데서도 원희룡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2021년 2월 제주도 내 9개 언론사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높았음에도 그는 이를 사실상 묵살했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해 실시한 이 조사는 20여 일간 치열한 찬반 운동을 벌인 끝에 실시한 것이어서 사실상 주민투표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그는 송악산 뉴오션타운이나 선흘리 동물테마파크 같은 개발 이슈에서도 긍정적 태도를 보였으나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환경보다는 개발에 의욕을 보인 도지사였다.
국토교통부는 각종 개발사업의 주무 부처다. 신도시 택지지구 산업단지 등의 개발과 도로 철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거액의 예산을 주무르는 '알짜배기' 업무가 집중된 곳이다. 각종 개발 이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을 국토부장관에 임명하는 게 상례다. 이런 점에서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노조 탄압'으로 존재감 드러낸 원희룡

▲2022년 6월 1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와의 합의 관련 내용을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에서 짚어본 여러 발탁 요인들을 종합하면 원희룡은 윤석열 정권 출범 때부터 핵심 인물이었다. 친윤의 대표주자로까지 부상한 것이 전혀 예상 밖의 사건은 아닌 셈이다.
국토부장관 원희룡이 확실한 '친윤' 선봉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 화물연대의 파업사태였다.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길어지자 2022년 11월 국토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했다. 파업 중인 화물차주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운행정지 처분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초강경 대응이었다.
화물연대가 이에 대해 '계엄령' 등의 표현을 쓰며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결과는 강경책이 먹혀든 것으로 보였다. ILO(국제노동기구)가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내 "업무복귀 명령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라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강경 대응에 힘입어 보수층이 결집했고,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하기도 했다.
2023년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 씨가 정권의 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윤석열 정권은 건설현장 개선을 위한 노조활동을 공갈과 협박 행위로 규정하며 건설노조를 폭력집단으로 몰아갔다. 또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을 남발해 40여 명을 구속했다.
사건 발생 보름 뒤 <조선일보>는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나중에 경찰이 '분신 방조' 건을 무혐의로 결론 낸 것만 보더라도, 명백한 허위보도였다. 보도 직후 원희룡 장관은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면서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건설노조는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와 원희룡 장관을 고소하면서 "인간이길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라며 격한 반발을 하고 나섰다. 노조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적대적 태도와 그 선봉장으로 나선 원희룡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윤심'에 의존하면서 '민심'을 잃은 건 아닐까

▲2023년 6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별무리경기장에서 열린 '서해선 대곡-소사 복선전철' 개통 기념식을 마친 뒤 이동하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보수 외길로 치달아온 원희룡의 질주는 지난 4월 22대 총선을 분기점으로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와 맞붙었으나 결과는 7700여 표 차이가 나는 패배였다. 유명 축구인과 붙어 다니며 유권자의 이목을 끌기는 했으나 이재명 대표에 맞설만한 정치적 경륜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총선 패배 후 원희룡은 다시 한번 친윤의 선봉장이 됐다. 지난 7월 치러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윤석열과 소원해진 한동훈에 맞서 친윤 대표선수 격으로 나선 것이다. 결과는 참패였고,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네거티브 공세로 이미지만 구겼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희룡은 국민의힘 차기 대권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는 이재명 대표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3번의 총선과 2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언변도 뛰어나고 토론에도 강하다는 장점을 가진 게 사실이다. 그가 여전히 '대권 잠룡'으로 불리는 배경이다. 반면, 지역 기반이 빈약하고 '전두환 세배' ,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선언 같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소재가 적지 않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약점이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검찰공화국을 거치면서 정치적 상황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서울법대, 검사 출신이라는 훈장은 더 이상 유용한 정치적 자산이 아닌 세상이 됐다. 최고의 엘리트로 여겨졌던 이들의 학벌과 경력 속에 감추어진 무능과 무지성, 집단 이기주의가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원희룡은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수석 합격, 사법고시 수석 합격 등으로 각인된 '수재 이미지'에 운동권 출신이라는 '개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단숨에 보수정당의 촉망받는 소장 개혁파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남경필 정병국과 함께 이른바 '남원정'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서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 제17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차지, 차세대 지도자로 부각됐다. 40대 대권주자라는 칭송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개혁파 이미지는 크게 빛이 바랬고, 임기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레임덕에 시달리는 것을 넘어 공공연하게 탄핵이 거론되는 정권의 핵심 인물로 정치적 공멸 위기마저 느껴야 할 처지가 됐다.
'제주도가 낳은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 원희룡. 그는 앞으로 '별의 순간'을 볼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그가 달려온 정치적 여정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윤심'에 의존한 정치를 하는 동안 '민심'에서 너무도 멀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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