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4일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모습. 시국선언 뒤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천막을 설치하자 경찰들이 강제철거하고 있다.
권우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원 배제의 정황이 발견되고 문화예술인들이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에 은박지를 두른 채 농성 투쟁에 들어갈 때는 이 일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낼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국가가 자행하는 예술검열에 대한 저항과 공공지원 제도를 이용해 예술인을 길들이고 배제하려 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예술인들의 저항의 의지는 높았으나 투쟁을 통해 만들어 갈 변화가 무엇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최순실 게이트 등이 폭발적으로 결합하면서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던 예술인들은 거대한 시민의 물결을 맞이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예술이 한 사회의 변화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라는 말을 실감하고, 예술이 시민의 삶과 정치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건져올린 변화
박근혜 탄핵이 결정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예술인들의 관심과 요구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피해 예술인 구제와 향후 이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 마련에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017년 7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출범으로 이어졌고, 위원회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며, 교묘하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진상조사위의 1년여 간의 조사 과정을 통해 약 9천 명의 예술인과 340여 개 단체의 피해 사실이 확인 되었고, 직간접적으로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등에 대한 수사 및 징계 의견이 제출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단순히 개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각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혁신과 제도 개선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 기관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였던 시도였다. 물론 지금 현시점에서 당시에 제출 되었던 제도 개선 방안들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전문적인 조사 작업을 수행한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윤주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태의 경우 국가가 행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 책임을 묻고 불법을 행한 주요 지시자들에 대해 그 죄책을 물어 책임지게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사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진상조사위 활동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사례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주요 책임자들 중에는 교묘하게 그 책임을 비켜간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적어도 이념과 정치적 이해에 따른 예술 검열과 배제, 예술 지원제도의 사유화와 예술인의 권리 보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진상조사위 활동을 바탕으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 되었고, 예술 지원 기관별로 운영의 투명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 플랫폼이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다. 물론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공공부문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자를 규율하는 구체적인 책임 조항이 빠지고, 조사관의 권한과 신분의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등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적어도 하나의 구체적인 기준점이 생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예술인들이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기대하게 하였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