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가족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때의 한을 평생 잊을 수 없었던 김성주 할머니와 동생은 일본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김성주는 1999년에, 김정주는 2003년에 각각 미쓰비시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외면'이었다.
물론 일본이 금전을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9년에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당시의 연금 탈퇴수당금이라며 당시 금액인 99엔을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급했다. 이런 일은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2015년에도 있었고 2022년에도 있었다. 2022년 7월 6일에는 장신영 할머니에게 99엔이 지급됐다. 이때 환율로 계산하면 931원이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두 자매는 법정투쟁을 이어갔다.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한국 법원에 호소했고, 그 결과 김성주는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동생 김정주는 금년 1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런데 미쓰비시는 손해배상판결에 응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일본 국가권력이 한국 전체를 상대로 보복에 나서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2019년 7월에 일본이 가한 경제보복과 수출규제는 김성주 할머니 등이 거둔 승리에 대한 일본 국가권력의 복수였다.
김성주 할머니는 강제징용으로 인해 신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를 함께 입었다. 그런데 정신적 상처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때문에만 생긴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은 그가 살아생전에 가해자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을 기회를 차단했다.
김성주 할머니는 배상을 거부하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전범기업의 책임을 우리가 대신 떠안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침 발표 이후에도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끌고 갔는데, 어디에다가 사죄를 받고, 어디에다가 (사죄)요구를 하겠느냐"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지난해 5월 그 대위변제를 받아들이고 특허권 압류를 취하했다.
그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80년 가까이 일본과 싸우는 것은 꼭 금전 때문만은 아니다. 한마디라도 사과를 받고 싶다는 심정이 그들을 움직여왔다. 그런 사과를 받아 조금이나마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한일 두 정부의 공조로 인해 차단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95세라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국 사회는 김성주 할머니의 살아생전에 그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 그 한을 온전히 풀어주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지만, 그것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100세 가까이 된 다른 피해자들이 우리 곁을 다 떠난다 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부재 시대'에도 그것이 여전히 가능한 것은 유족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없으면 문제 해결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경우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부재가 문제 해결을 결정적으로 저해하지 않는 분야도 존재하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같은 강제동원이 이에 해당한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뿐 아니라 강제징용 노동자상에도 극히 민감하다. 김성주 할머니가 대법원에서 승소하기 근 7개월 전인 2018년 5월 1일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이 그달 말 강제 철거된 것은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압력 때문이었다. 막말과 망언을 일삼는 스키타 미오 중의원 의원의 행보에서도 나타나듯이, 일본 극우세력은 징용 노동자와 관련된 비석이나 동상의 철거를 지금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