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원의 모습. 만으로 36개월을 살다 입양이나 친권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가서 18세가 될 때까지 시설 아이들이 된다.
김지영
미국 심리학 교수인 셸리 테일러의 <보살핌>이란 책이 있다. 책을 사서 한 번 읽고는 책장에 꽂아 두는 게 보통이지만 잊을만하면 꺼내 다시 읽게 되는 몇 권 안 되는 책 중에 하나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인간은 오직 유전자 보존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셸리 테일러는 그것과 함께 다른 사람을 돌보고 보살펴 주는 행위 역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며 다양한 사회적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990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공산 체제가 몰락하면서 밝혀진 고아원 아이들의 실상은 끔찍했다. 서민 경제가 무너지고 출산 강제정책으로 부모들이 아이를 고아원 앞에 버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소수의 고아원 직원들이 수백 명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아이들은 음식을 배급받는 것 외에 다른 보살핌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몰락하면서 굳게 닫혔던 고아원 문이 열리자 비로소 나타난 아이들 모습을 보고 세계가 경악했다. 제 생의 발달과정에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이 결여된 채 집단생활을 하며 성장한 아이들이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머리를 벽에 쿵쿵 박거나 하는 이상 징후들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은 굶주리지도 신체적 학대를 당하지도 않았지만 단지 누군가로부터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썼다.
개인택시를 하기 직전 몇 년 동안 국회의원실에서 보호아동 관련 정책 및 입법 관련 일을 하며 보육원 출신 당사자가 만든 단체를 돕고 있었다. 덕분에 시설에 적을 두거나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도 하고 그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우리나라 보육시설의 실정도 어느 정도는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의 삶은 그 시설의 훌륭함이나 원장님의 따뜻한 성품과는 별개로 한 사람의 전인적인 발달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퇴행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사는 삶은 너무 당연해서 그게 없는 삶은 상상도 이해도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가족이 결여된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들의 어떤 말과 행동도 함부로 예단하고 평가해선 안 된다. 나는 그래서 택시에서 내린 두 아이가 보인 말과 행동이 속세의 기준으로는 나쁘게 평가받을지라도 아이들이 그렇게 된 데는 양육을 포기한 부모와 함께 부모를 대신해야 할 사회의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사실 앞에 겸허해진다.
아이들은 보고 배운 대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설 안에서 또래들끼리의 집단생활은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그들만의 퇴행적인 체계와 질서를 구축하고 확장해 나가는데 거리낌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유감스럽지만 내가 만난 시설 아이들은 그 세계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아동복지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의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시설을 없애고 위탁가정 중심의 가정형 보호체계를 구축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시설이 훌륭하고 관리자의 교육이 철저해도 집단생활은 인간의 전인적 발달을 방해하는 최악의 환경이다.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20년,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육시설에 한 번 들어간 아이의 평균 재원 기간은 10.9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장기 양육시설 보유국이 우리나라다. 유소년기 10년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인격을 완성하고 성인기 이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 시기를 온통 시설 안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보낸다는 말과 같다.
당사자들에게는 더 참담한 통계가 있다. 과거와 달리 보육원은 고아원이 아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소수고, 대부분 아이들은 생물학적인 부모가 엄연히 살아 있다. 다만 그들로부터 직접 양육이 포기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현실이 통계로 확인된다.
2021년 보건복지부에서 김미애의원실(국민의힘/부산 해운대구을/재선)에 제출한 '아동보호양육시설, 그룹홈 친권자 교섭현황(2016-2020)' 자료가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235개의 아동양육시설 대상아동 10225명 중 전화 서신 면회 중 어떤 식이든 한 번이라도 부모나 가족과의 교섭이 이루어진 숫자는 43%인 4397명이었다. 반면, 57%에 해당되는 5828명의 아이에게는 전화 한 통 없었다. 또한 교섭 형식 중 89%는 전화였고 편지가 2%였는데 실제 얼굴을 대면하는 면접교섭의 경우 9%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겐 가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