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7월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열린 '신자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 행사는 기독교 민족주의 단체 터닝포인트 액션이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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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한 진보적, 세속적 삶에 반대하는 것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기후 변화나 진화론과 같은 과학을 부정하며, 공교육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본질적으로 백인들의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이민 정책에 반대하고, 서류 미비 이민자의 즉각 추방과 속지주의(미국 태생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현 제도) 폐지와 같은 인종주의 정책을 옹호한다.
혹자는 이렇게 지적할 수도 있다. 소수의 극렬 신도들의 주장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문서가 있다. 바로 올해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프로젝트 2025'이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발간한 '프로젝트 2025'는 트럼프 재선에 대비한 세부 정책 제언서다. 트럼프 행정부 1기 인사들 100여 명과 다수의 보수 전문가들이 작성에 참여했다. 900페이지가 넘는 이 제언서는 보수적·기독교적 가치관에 맞춘 미국 정치·사회 질서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약 50만여 명의 비당파적 공무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트럼프 이념에 충성하는 인사들로 대체하려는 문제적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프로젝트 2025가 얼마나 급진적인지는 트럼프가 9월 10일 카멀라 해리스와의 대선 토론에서 이 문서와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름이 프로젝트 2025에 300번 이상 언급되며, 제언서를 발간한 헤리티지재단의 대표 케빈 로버츠는 이 제언서가 "트럼피즘(Trumpism)을 제도화한 청사진"이라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참고로 로버츠 대표는 헝가리의 극우 독재화 현상을 찬양하고,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를 부정하며, 과거 반공주의의 상징인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을 옹호하는 등 논란의 인물이다. 이처럼 트럼프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긴밀한 정치적 연대가 형성되었다.
그럼에도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에서 여전히 소수에 해당한다. 미국 공공 종교 연구소(PRRI)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 중 자신을 기독교 민족주의자 혹은 동조자라고 표현한 이들은 29%였으며 그 중 10%는 열성 지지자, 19%는 동조자였다. 이러한 극단 세력과의 연대가 거센 역풍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트럼프는 그들과 거리를 두기보다는 오히려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선거제도의 맹점에 있다.
미국 대선은 더 많은 선거인단을 획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데,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이미 보수적이거나 진보적 성향이 뚜렷한 주를 공략하기보다는 경합주(swing state)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공교롭게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몇몇 중요한 경합주는 바이블 벨트를 관통하는 남부와 중부에 몰려있다. 이 지역에는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다수 거주한다.
퓨리서치(Pew Research)에 따르면, 미국에서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집단은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인이다. 2016년 대선에서 이 집단의 77%가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2020년에는 84%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들 중 약 66%는 기독교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경합주에 위치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공략하고 있으며,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CNN 조사에 의하면 오하이오주의 경우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비율이 2016년 21%에서 2024년 초 53%까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해리스 캠페인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이 좇는 것은 기독교 아닌 세속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