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장면1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6일 서울에서 12번째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윤 대통령 집권 후 28개월 동안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더 놀라웠던 건 퇴임을 한 달 남긴 '막차 총리'에게 '졸업 선물'을 안기는 듯한 '과공 외교'였습니다.
두 정상은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소인수 회담과 확대회담을 했습니다. 소인수 회담은 정상 외 핵심 측근 2~3명만 배석하는 형식이라 배석자를 보면 회담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누가 그 분야 실세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윤 정권 들어 소인수 회담의 한 자리는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의 지정석이 됐습니다. 거의 모든 소인수 정상회담에 그가 빠짐없이 들어갑니다.
12번째 한일 정상회담의 소인수 회담에도 김 차장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배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라이 히데키 관방 부장관(정무 담당),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전보장국장(외무성 사무차관 출신), 시마다 다카시 총리 비서관(경제산업성 출신 에너지 전문가)이 들어갔습니다.
일본 쪽은 내정과 외교를 담당하는 인물이 고루 들어갔지만, 한국 쪽 배석자 3명은 모두 외교 안보의 인물입니다. 특히, 안보실에서 1인자와 2인자가 동시에 배석한 것은 2인자가 실세라는 점 말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쏙쏙뉴스]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정권 2인자' ⓒ 최주혜
#장면2
윤 대통령은 8월 13일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했습니다. 228일 근무한 장호진 실장을, 임명 뒤 310일밖에 되지 않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으로 바꿨습니다. 초대 김성한 실장, 2대 조태용 실장, 3대 장호진 실장에 이어 집권 2년 3개월 만에 무려 4명의 안보실장을 기용한 겁니다.
안보실장이 세 차례 바뀌는 사이 그 밑에 차장들도 줄줄이 교체됐습니다. 하지만 4명의 안보실장이 부산하게 오가는 와중에도 유독 김태효 차장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습니다. 윤석열 정권 초부터 김태효가 '사실상의 안보실장'이라는 말이 파다했고, 이번 인사가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한 외교·안보 분야 원로가 "안보실장은 정신없이 바뀌는데 그 밑인 1차장은 실세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지키면 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겠나"라고 한탄했다는데,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입니다. '4명의 안보실장-1명의 1차장' 체제는 윤 정권의 외교가 조직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김태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장면3
노무현 정권 때 통일 부총리를 지낸 정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9월 10일 국회 외교·통일 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섰습니다. 친일 외교·이념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김태효의 문제를 한덕수 총리에게 조목조목 지적하며 파면 건의를 주문했습니다. 전체 20분 가운데 4분의 3을 김태효 문제에 할애한 '맞춤형 질의'였습니다.
한 총리와 정 의원이 15분 정도 문답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김태효'라는 이름 석 자를 한 총리가 끝까지 피했다는 사실입니다. 정 의원이 그가 한 언행과 주장을 열거하며 그의 이름이 누구이고 어디에 근무하느냐고 추궁하는데도 한 총리는 '그분'이라는 대명사로만 답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윤 정권의 2인자인 한 총리도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사람이 김태효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한 총리는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만 되풀이했습니다. 마치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를 연상케 했습니다. 정 의원은 질의 마지막에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영향력은 정권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날 한 총리의 답변 태도는 이를 역설적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 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김태효가 윤 정권의 외교·안보 실세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대한 문제는 그의 이런 위상과 영향력이 과연 좋은 방향으로 행사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외교 실세' 김태효의 성적표는 낙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