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행사장에서 송경동 시인이 경호인력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건희 여사가 방문했다.
블랙리스트 이후
문화예술인들은 행사장에서 쫓겨난 후에야 개막식에 대통령 배우자가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정장 차림의 남성들은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서전 개막식에 대통령 배우자가 참석한다는 사실은 보안 사항으로 소수의 주최 측 관계자만 알고 있었기에 도서전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나 개막식에 출입하려던 문화예술인들 모두 전혀 알 수 없었다.
대통령경호법 제5조 제1항에서 '경호처장은 경호업무의 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제2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경호구역의 지정은 경호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제3항에서는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은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경호처는 당시 도서전 개막식에 참여하는 대통령 배우자에 가하여질 급박한 위해를 방지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만을 경호구역으로 지정하여야 함에도, 그러한 상황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공간까지 포함하여 도서전 행사장 전체를 경호구역으로 자의적으로 설정했다.
또한 문화예술인들이 어떠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려고 하는 등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개막식 행사의 출입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는 것은 명백히 대통령경호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 할 수 없는 위법행위다.
그런데도 대통령경호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어떠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도 없이 정당한 경호 행위였다는 입장만을 밝혔고, 이후 국회의원과 대학원 졸업생에게 제2, 제3의 입틀막 사건이 반복해 발생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론과 출판,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가장 기념하여야 할 축제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갈기갈기 찢겼다.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인들은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형사 고소 절차 등을 진행 중이고 민사 소송 역시 진행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윤석열차 카툰 사건'을 비롯해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목소리들을 모두 일방적으로 틀어막고 지운 후 가차 없는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정과 상식에 해당하는 기본권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보다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심기를 더 앞선 기본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주(周)나라 제10대 왕이자 폭군이었던 '여왕(勵王)'에 관한 이야기가 기재되어 있다. 여왕은 왕을 비방하는 자들을 처형하는 등 신하와 백성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공포정치를 행하였다. 여왕이 신하였던 소공(召公)에게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라고 자랑하자 소공은 여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물이 막히면 결국 둑이 무너져 내려서 많은 이들이 다치게 되니,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을 흐르게 하여 인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왕은 소공의 충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기에 쫓겨나 타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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