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7 12:00최종 업데이트 24.09.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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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표현의 자유 탄압을 알리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에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있나? 실체를 확인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통념적으로 '블랙리스트'는 지배 권력이 특정 예술인이나 단체를 배제하기 위한 명단인데, 그 실물을 확인하지 않고 '블랙리스트'라고 지칭할 수 있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밝혀진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특징은 청와대가 지시하고 법 제도와 문화 행정 체계를 총동원하여 국가 문화 정책으로 실행했다는 점이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렇게 정의한다.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을 통해 법·제도·정책·프로그램·행정 등의 공적(公的) 또는 강요·회유 등의 비공식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등 권력을 오‧남용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 범죄이자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행위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이념적 내용을 다룬 예술-예술인에 대한 검열을 넘어 성 평등, 장애 등 다양한 존재를 표현하는 예술에 대한 검열로 확장하고 있다. 행정 관료는 지난 블랙리스트 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하게 사전 검열 제도를 만들고, 정부 독단적으로 예산 및 사업 폐지를 결정한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했음에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거나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며 이념적 잣대를 들이댄다. 장관이 나서 정치적 견해가 다르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수시로 공언하며 법을 위반하는 상황에서 과연 '블랙리스트'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블랙리스트 명단의 물리적 실체가 없으니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을 중심으로 소위 좌파 예술인을 검열·배제했지만 당시 '블랙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유인촌 장관의 주장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맥락에서 윤 정부의 예술 검열은 기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 검열 심화

2023년 12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부정과 왜곡을 규탄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배타적인 이념 정책과 지향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비민주적이고 비이성적인 이념 전쟁과 이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가 일상화, 내재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게 이념"(2023년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6월 28일 자유총연맹 축사),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이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 허위 선동,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202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등 수시로 개념도 모호하고 부적절한 이념적 메시지를 쏟아내며 정치적 갈등과 혐오, 검열을 조장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정책의 출발점인 이명박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 2008년 8월 27일 작성)과 유사한 관점에서 문화정책을 추진하며 문화예술계를 "좌"(블랙리스트), "우"(화이트리스트)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 정부는 새로운 문화‧예술 검열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행정부와 사법기관들이 확정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 규명 및 국가범죄 처벌'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바로 사면해 감옥행을 면해줬고,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책임자인 유인촌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했으며,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실행의 핵심적인 책임자인 용호성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으로 임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념 정책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상과 이념의 자유"가 아니라 권위주의에 기초한 "좌파 이념 퇴출과 우파 이념 진흥"이 핵심이며, 이런 맥락에서 좌파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정책을 계승‧복원하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지원사업 통제를 통한 좌파 적출과 우파 진흥" 관점을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복원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각종 문화‧예술 검열의 공통적인 기준은 "정치 편향"이라는 모순성을 띠고 있다. 이렇듯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에 있어 핵심은 좌파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통제이며, 이를 위해 지원사업 전반에 대한 의도적인 조사, 감사, 제도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기관들의 자기 검열 일상화와 주무 부처의 직무 유기

2023년 5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블랙리스트 이후(준)의 주최로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1년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정윤희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이념 전쟁과 좌파 혐오를 강조하고,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정책을 수용하면서 문체부는 물론 행정기관 전체적으로 자기 검열이 일반화되고 있다.

▲ '호명 5.18 거리 미술전' 후원 명칭 취소 사건(광주시) ▲ '부마민주항쟁기념식' 연출자 및 가수 이랑 출연 배제 사건(행정안전부) ▲ '김건희 풍자 작품' 전시 불허 사건(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 '2022 책 읽는 대전 북콘서트' 좌파 서적‧작가 배제 사건(대전시) ▲ 서울아트책보고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 사건(서울시) ▲ '김건희 여사 풍자시' 전시 배제 사건(강원도 춘천시) ▲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 자유의 송가' 공연 팸플릿 사전 검열 사건(예술의전당) ▲ '제13회 경산시민 독서감상문대회' 선정 도서 배제 사건(경북 경산시) 등에서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행정기관들의 문화‧예술 검열(자기 검열) 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행정기관의 자기 검열과 관련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주무 부처(문체부)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은 '자율성과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헌법상 문화국가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김기춘 외 6인 재판의 항소심 재판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하여 "문화예술계의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거나, 특정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명단을 문체부를 거쳐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에 하달함으로써 정부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하였다며, 이러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헌법과 관련 법률의 규정 등에 비추어 볼 때 위헌‧위법‧부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법원(김기춘 외 6인 재판의 항소심 재판부,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은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그 근본 가치로 삼고 있다(헌법 전문, 제4조). 즉 헌법은 전체주의적 국가를 지양하고, 자유 평등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국민의 자치에 의한 국가 형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사상의 다원성을 그 뿌리로 하고, 사상의 다원성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와 같은 정신적 기본권의 보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는 자율성과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헌법상 문화 국가 원리와도 맞닿는다. 이러한 헌법상 원리들을 배경으로 볼 때 정부가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지향에 따라 문화‧예술에 대한 심판자로 나서서 그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한 문화에 옳고 그름이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문화를 억압하거나 그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의 길은 폐색되고 전체주의 국가로의 문이 열린다"

궁극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이끌어낼 것이다.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주권자의 '자기검열'을 일상화하고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차별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심각성을 주목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윤희 작가는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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