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는 ‘돌봄 경제’를 공식성과 비공식성을 아우르는 폭넓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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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는 돌봄 경제 관련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5R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이를 보면 돌봄 경제가 일자리 창출이나 산업 활성화보다 광범위한 영역의 가정과 지역사회, 기업과 시장 영역의 돌봄 조직의 혁신과 평등, 공정과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프레임워크의 각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한국 사회에 던지는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정(Recognize)' 단계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급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여 국가 통계에 포함시키고, 돌봄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대중 인식 캠페인을 실시하며, 돌봄 노동자의 숙련과 전문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격 체계를 수립할 것 등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청이 무급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고 있지만 숫자 생산을 위한 작업에 그치고 있다. 이 숫자를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책을 입안할 때 돌봄 노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가족 돌봄 지원의 방식과 수준 등 측정의 결과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둘째, '감소(Reduce)' 단계는 무급 돌봄 노동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 인프라 개선을 통한 가사 및 돌봄 노동 시간 단축, 노동 절약형 기술과 가전제품에 대한 접근성 향상, 그리고 유연한 근무 제도 도입을 통한 직장과 돌봄 책임의 균형 촉진 등의 방안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한 기술과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 정책이 고용안정이 보장된 근로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바람에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돌봄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경제력에 따른 기술 접근성 차이 때문에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같이 노인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나 소셜 로봇 등 활용을 위한 연구 개발과 제도 구축이 활발한데, 기술이 인간의 돌봄 노동을 감소시킬 것인지, 슬그머니 가족 노동을 더 요구할 것인지, 어떻게 기술이 돌봄 노동을 재조직할 것인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재분배(Redistribute)' 단계는 돌봄 책임을 사회 구성원들 간에 더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 휴가 정책 개선을 통한 남성의 돌봄 참여 장려, 공공 돌봄 서비스 확대, 그리고 가정 내 돌봄 책임의 공평한 분담을 촉진하는 교육 프로그램 실시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돌봄 노동의 분배는 성평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이 돌봄에 특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여성 개인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돌봄 비용 증가에 대해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을 제고하는 대신 시장에서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인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해 왔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처럼 해외 인력을 돌봄 시장에 투입하는 해결책은 단기적으로 미봉책이 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위기를 지연시킬 뿐이다. 돌봄 노동자의 수입은 무엇보다 돌봄을 조직하고 공급하는 자생적인 공동체의 생성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자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돌봄 노동이 생산하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누가' 그 일을 하느냐로 돌봄 노동의 가치를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돌봄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한, 저임금 일자리를 회피하려는 동기는 커질 것이고 사회구성원들 간의 공평한 돌봄 분배는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 필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