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5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으로부터 부천국제만화축제 수상작인 '윤석열차' 관련한 질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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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도서 분야에서는 ▲ 문학나눔 도서보급(56억 원) ▲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55억 원) ▲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11억 원) 사업이 아예 폐지되었다. 윤석열 정부에 줄곧 비판적 입장을 개진한 영화계의 지원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 예산도 2024년 예산 기준으로 ▲ 영화 창-제작 지원 190억 원 ▲ 독립·예술영화의 극장 상영 및 유통 활성화를 위한 영화유통지원 55억 원이 삭감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해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사업 예산 108억 원이 삭감되었다.
"지원하되 권력을 비판하면 배제하겠다"는 기존의 블랙리스트 작동 방식은 애초에 배제할 필요도 없게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선제적 블랙리스트화"하고 있다. 예산이 없으면 애초에 작동시킬 권력의 블랙리스트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판하는 자들에게 아예 국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려는 "선제적 블랙리스트화"가 더 심각한 블랙리스트가 아닐까? 그들은 예산과 행정을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고 사전에 지원의 싹부터 거세해 버린다. 블랙리스트는 비가시적이고 내면화하면서 다시 작동한다. 그들에게 블랙리스트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위임받은 정치권력의 오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선출된 권력이다. 정치권력은 4년에서 5년 선거를 통해 권력 행사의 여부를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다. 정치적 권력 집단은 그래서 자신에게 표가 될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보수 정치권력 집단은 예술인이 대체로 진보적이어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수 정치인이 집권하게 되면 예술인의 지원에 대해 항상 전제를 단다. 가령 국가를 비판하는 예술인들은 지원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진보적인 예술인들은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라기보다는 행동가에 가깝다는 편견을 갖는다.
심지어는 진보적인 현장 예술인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근근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실력 있는 예술가들의 지원을 상대적으로 방해한다는 생각도 한다. 정치권력은 그래서 예술가들에 대한 세밀하고 보편적인 지원에 부정적이고 이들의 활동에 국가 예산을 차단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것이 위임받은 정치권력이 문화예술계를 대하는 일반적인 통치술이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내세운 가설을 기성 사실화하여 예산의 삭감과 배제가 당연한 것으로 착각한다.
정치권력은 단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집단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이미 블랙리스트 행위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2022년에 제정된 '예술인 권리보장법' 8조 2항을 위반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 8조 2항
국가기관등 및 예술지원기관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또는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피부색,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과 관련된 사항, 임신 또는 출산과 관련된 사항,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예술지원사업에서 특정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를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위임받은 정치권력이 블랙리스트를 반복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들의 가정 혹은 가설이 타당하고 정의롭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이나 가설이 오류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오인을 진실로 믿는 잘못된 정치적 신념 때문이다.
명령에 복종한다는 행정관료의 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