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산티니케탄 학교
EBS
나 역시 대학 생활을 서울에서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벌 사회를 비판했으나 결과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을 선택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 생활을 해보니 더 이상 서울에 남을 이유를 찾지 못했고, 대학 4년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고등학교 동창생 중 나만 유일하게 그런 선택을 한 듯했다. 부산으로 돌아간다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다며, 어리석게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다그치듯 이유를 묻던 친구도 있었다.
서울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하루 이틀 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좀 다르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이 책은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회고록이다. 책의 원제는 '세계 속의 집(Home in the World)'인데, 이는 시인 타고르의 책 <가정과 세계(Home and the World)>에서 따온 것이다.
타고르가 인도에 세운 산티니케탄 학교에서 어린 시절 10년 동안 공부한 센은 그때의 경험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산티니케탄 학교는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으로서도 굉장히 선진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했다. 체벌을 금지한다거나 시험을 보지 않는 등의 것이 그렇다.
센은 이 학교를 "벽이 없는 학교"로 표현했다. 타고르는 학생들의 사고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 갇히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의 문학 작품을 읽고, 시대와 공간의 제약 없이 수많은 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토론하는 것이 이 학교의 수업이었다. 심지어 실제로 벽이 없는 야외에서 수업했는데, "바깥 세계가 보이고 들리는 와중에도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학교에서 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호기심을 가감 없이 수업에서 펼쳤고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자유롭게 토론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갔다. 센은 그 어느 것에도 갇히지 않은 채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타고르가 산티니케탄 학교를 통해 펼치고자 했던 뜻처럼 이성의 역량을 길러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아마르티아 센은 세계 전체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가 머물렀던 모든 곳은 배울 것이 있는 곳,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곳,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언젠가는 영향을 받을 곳, 혹은 이미 영향을 받은 곳이기에 항상 궁금하고 알고 싶은 곳이다. 어느 한 곳에 대한 강한 애착 대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