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 테러 23주년 추모행사에 민주당과 공화당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왼쪽부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J.D 밴스 상원의원.
연합뉴스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근본적인 목표는 글로벌 패권 유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확산, 그리고 강한 국방력은 이를 위한 수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국방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등 주요 기관들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관된 전략을 추구해 왔으며, 이러한 방향성은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급격히 바뀌지 않는다.
이번 대선 토론에서도 트럼프와 해리스가 외교안보 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인 듯하지만, 사실은 공통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두 후보 모두 미국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강력한 국방력과 글로벌 영향력 유지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빠르게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해리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 보호를 강조하지만, 두 사람 모두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점에서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자 하며, 해리스는 트럼프식 관세정책의 인플레이션 악영향을 지적했지만, 결국 중국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이룬다. 이란 문제에서도 강경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같고 차이는 그 방식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경우, 본인 집권 시 왕처럼 군림하며 워싱턴의 '기득권 카르텔'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하지만, 오히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포위되고 고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미 대선 정국의 화려한 수사 이면에서 조용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과 그들의 '침묵의 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늘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한국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논할 때 국무부보다 국방부와 CIA 같은 안보 및 정보 관련 기관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는 점을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워싱턴 주요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된다. 대다수가 CIA나 국방부 출신이다. 이들도 한국의 정책 네트워크처럼 자금과 인적 관계로 얽혀있어 개인의 소신 발언이 어렵다. 따라서 그 정책 네트워크 전체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 교체로 쉽게 바뀌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들의 영향력에 의해 한미 간 가장 첨예한 이슈도 항상 안보 문제였다. 경제 문제조차도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개방형 통상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패권 전략과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이 추진된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도 마찬가지다. 이들 안보 및 정보 관련 종사자들의 오랜 목표다. 이는 특정 정부의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국방부, CIA, 군산복합체, 그리고 이들과 긴밀히 연결된 워싱턴의 정책 네트워크가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영향력 유지를 위해 추진하는 장기 계획이다. 따라서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가 당선되든 지속될 전략이다.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도 이러한 큰 틀을 이해한 바탕 위에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 정부의 서툰 외교로 놓친 기회

▲2023년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자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균형'과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 반대로 해 오고 있다.
한미일 협력은 물론 중요한 장기 전략 과제다. 그러나 윤 정부는 서두르며 외교적 레버리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국익 증진에 소홀했다. 특히 한일 관계 개선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를 지나치게 쉽게 양보한 점이 대표적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일지 몰라도, 향후 한일 관계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물론 국내적인 반발로 차기 정권에서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될 소지를 남기기도 했다.
만약 윤 정부가 조금 더 전략적인 인내를 발휘했더라면, 미국의 중재를 통해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원했고, 이는 우리가 유리한 협상을 이끌 기회였다. 그러나 윤 정부는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관계 개선에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하지 못한 외교적 실책을 범했다.
최근 강화되는 한미일 군사협력도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의 군사기술 제재 완화나 방산 기술협력 확대 등 '자강'을 위한 실질적 조치는 부족하다. 군수편제 위주, 정보작전 능력 미비의 현실도 큰 개선이 없다. 한일 관계 개선을 대가로 미국에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분야다. 서두르다 정책 수순이 엉켜서 우리가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미국 내에는 일본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에 반대하며, 일본의 전쟁 책임과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한미일 협력 강화와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군사 안보에 지나치게 치우친 접근이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지역 내 위상과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한미일 협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한 흐름과 세력으로 존재한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신냉전을 가속화하려는 입장도 있지만, 이에 반해 '경쟁적 공존'을 통해 미중 관계를 관리하고, 안보 경쟁만으로 모든 미중 관계를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 월가의 금융 세력, 중국과의 교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농업 주(州) 의원들 역시 중국과의 '경쟁적 협력'을 추구하는 주요 세력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트럼프와 해리스의 당선 여부를 두고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한미관계를 단순히 이념적 틀로만 접근하는 것은 큰 한계가 있다. 국가 안보와 경제, 그리고 동맹 관계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이념이나 관점에 의존하지 않고, 유연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닌, 실리를 위한 외교적 균형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