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추진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부 개혁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4%p 올리는 것이다. 이는 시민공론화 과정에서 다수가 선택한 13-50 방안에서 소득대체율 50%는 빼고 보험료율 인상이란 반쪽만 가져온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세 원칙 중 하나인 세대 간 형평성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은 바로 보험료율 인상을 연령대별로 차등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세대 간 공평성에 문제가 야기되는 이유는 2007년 이래 계속되는 국민연금 삭감 때문이다. 국민연금 삭감의 영향을 크게 받는 후세대일수록 국민연금은 더 낮아진다. 국민연금에 늦게 가입하는 후세대일수록 더 오래 가입해도 더 많이 연금이 줄거나 혹은 정체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60%에서 42%까지 깎여나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의 조치를 피하다 보니, 결국 보험료 인상 속도를 출생연도에 따라 차등화시키는 이상한 방안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정부 안은 현재 9%인 보험료를 13%까지 올리되, 2025년을 기준으로 20대, 30대, 40대, 50대의 보험료 인상 속도를 각각 다르게 하는 것이다. 연금보험료를 50대는 매년 1%p씩 4년에 걸쳐, 40대는 0.5%p씩 8년에 걸쳐, 30대는 0.33%p씩 12년에 걸쳐, 20대는 0.25%p씩 16년에 걸쳐 올리는 것이다. 이 조치는 2025년에 시작하게 되면 2040년에 완료된다.
이런 식의 보험료 차등 인상은 우선 그 기본 구상에 문제가 있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39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국민연금은 출생연도에 따라 서로 다른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갈기갈기 쪼개진 제도가 된다.
출생연도별로 기여에 이렇게 차등을 두는 것은 세대 간 연대에 기초하는 공적연금의 기본 운영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보험료는 소득수준에 따라 부담해야 한다는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같은 200만 원 소득의 노동자라면 같은 수준의 보험료를 기여해야 하며, 500만 원 소득의 노동자는 그 소득에 비례해 더 많은 보험료를 기여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정부 안은 소득 수준에 따라 부담도 비례한다는 사회보험 원칙을 무너뜨린다. 약간 과장하면 15년 동안 출생연도에 따른 차별대우를 하자는 안에 가깝다.
구체적 작동에서도 정부의 출생연도별 보험료 차등 인상안은 비합리적이다. 정부 안에 따르면 2028년에 1975년생에게는 보험료율 13%를, 1976년생에게는 11%를 적용한다. 출생연도 1년 차이로 75년생과 76년생은 소득이 같아도 매달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8년 동안 서로 다르다. 85년생과 86년생, 95년생과 96년생은 더 긴 기간 동안 소득이 같아도 매달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과연 75년생과 76년생은, 85년생과 86년생은, 95년생과 96년생은 서로 다른 세대인가? 이 방안에 '세대'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타당하지는 않아 보인다.
운영의 복잡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장기간의 보험료 차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즉 특정 연도 출생자에게 15년간 보험료 부담이 더 커지면서 생기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누군가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기본 구상과 구체적 작동의 결함, 불 보듯 뻔한 특정 연생에 대한 고용 페널티라는 부정적 영향까지 수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안을 정부의 공식 연금개혁안에 담은 것은 섣부르다.
여기에 자동안정장치까지 종합해서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 발동시점은 2036년, 2049년, 2054년이다. 정부안대로라면 청년세대가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면 자동조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청년세대의 연금액은 크게 깎일 수 있다.
정부 연금개혁 추진계획에서는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자동조정장치 도입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세대 간 형평성을 말하면서 미래세대 급여 삭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달리 표현하면 보험료 인상을 늦추는 방식으로 찔끔찔끔 되로 주고, 자동조정을 통해 말로 뺏어가는 안인데, 이것은 청년세대에 보험료 인상 속도를 늦춰줄 테니 수용하라고 제안할 만한 개혁안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그것뿐일까? 보험료를 출생연도에 따라 차등화시킴으로써 굳이 세대 간 연대 기반을 뒤흔들고 사회보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국민연금이 세대 간 연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다수안으로 선택한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 연금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에 더해 1000조 원이 넘게 쌓인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공공주거, 고용 창출, 공공사회서비스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 이를 통해 사회를 통째로 바꿔 청년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우리 사회가 결심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4. 약자복지 면에서는 충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