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도서관에 있는 정기간행물 스탠드. 대선 기간에는 이 스탠드를 치우자는 의견이 가끔 나온다. 만평과도 같은 표지가 민심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소영
미국의 동네 도서관 로비에는 정기간행물을 진열한 스탠드가 있다. 지나가며 쳐다만 보아도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주요 주간지와 월간지 표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 만평 효과를 낸다. 선거철이 되면 공공장소의 스탠드를 표지가 보이지 않게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책장형 스탠드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신문을 읽는 주민들에게 양당 대선 후보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해리스는 계속 남편과 포옹하는 사진을 적극 사용할 거야. 친밀한 부부와 가정. 그게 미국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지. 어려운 점(인종이나 재혼하며 결합한 자녀들)을 다 극복한 가정이잖아? 친밀한 가족의 전형이지. 월즈도 마찬가지야. 사연이 있는 아들과 딸(인공 수정으로 얻은 남매와 장애아)이 포함된 친밀한 가정. 월즈 자체가 팀을 이끌어본 지도자잖아. 해리스-월즈는 다양성을 건강하게 포용하는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 게다가 상식적이고. 그래 '상식'이라는 단어가 좋겠네. 월즈는 보통의 미국인이 기댈 수 있는 현실 복지를 해왔다잖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아서 좋아."
"사실 밴스의 아내가 인도계라는 것도 비슷한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지. 그런데 가족 효과라는 게 얼마나 갈까? 전쟁이나 고물가 같은 현실에도 지치고 오바마 이후에 뭔가 사회가 혼란스러워졌어. 어차피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일원이잖아. 그들의 실패를 보는 데 지쳤어. '지치고 견디기 힘들다' 그게 내 단어가 되겠네. 농담이지만, 민주당은 늘 그들만의 파티를 하지. 나는 해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나는 검사가 아니라 지도자를 원해."
여러 사람의 대답을 모아 중첩되는 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사회적 혼란이 '정치적 올바름'(PC)을 말하는 거냐고 묻자 즉답을 피하는 대신 '모든 날이 핼로윈'이라거나 '정돈이 안 된'이라는 단어가 대답 대신 돌아왔다. 도서관 두 곳에서 만난 몇몇 중장년들이 전체 유권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 볼 점은 있어 보인다.
지난 4일 <더칼럼니스트>에 실린 글에서 테네시텍 정치학과 이인엽 교수는 "월즈는 '이념 진보'가 아닌 국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생활 진보', '정책 진보'로 진보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민들이 주지사로서의 월즈의 정책을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일치한다. 동시에 민주당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나 구멍 뚫린 복지에 대한 반감을 낮추고 있다는 뜻도 된다.
또 하나, 양당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중 누구도 절대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을 향해 늙고 무능하고 외교에 휘둘린다고 공격했던 트럼프는 이제 후보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바이든을 공격했던 말들이 부메랑처럼 트럼프에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 재임기를 한 번 경험했던 유권자들은 그의 구호만큼 미국이 다시 위대해졌는지(MAGA) 확신하지 못한다. 반면 해리스, 월즈, 밴스는 유권자에게 낯설다. 그들이 외치는 슬로건들이 지지자 아닌 대중에게 강력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월즈가 진보주의자에 대한 반감을 낮췄다고 해도, 해리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일원'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그의 부통령 경험은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 잡히지 않은 물가와 불안한 경제, 치안, 바이든이 해결하지 못한 중동과 우크라이나 상황 등 트럼프 진영이 해리스를 몰아세울 항목은 차고 넘친다. 도서관에서 만난 주민들이 언급한 '실패'라는 단어가 확산하면 실패자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첫 TV 토론을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해리스-월즈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집중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 8월 11일 정치 분석가 제프 그린필드는 <폴리티코>에 쓴 글에서 '원래 부통령이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현 정부의 일원이지만, 해리스의 경우 바이든-트럼프와 비교되는 특별한 요건들이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지게 한다'고 분석했다. 젊고, 여성이며, 유색인종이자, 경선에서 바이든을 몰아붙이던 날카로움과 소수계 엘리트가 가지는 해리스만의 특별한 친화력이 두 노인 후보와 대비를 이룬다는 것이다.
주민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 사회의 '안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각계각층에서 충돌이 심했던 탓이다. 대선 토론을 포함해 양 후보가 치열하게 다툴 주제도 두 행정부를 거치며 번복되고 또 번복된 '국가 질서' 문제일 것이다. 낙태, 환경, 교육, 소수자와 이민자 등 까다로운 문제를 풀어낼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는 '괴짜 늙은이'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까. 성범죄나 국회침탈사건 등 사법 리스크를 피해 왔지만 '법질서 파괴자'로 낙인찍힌 상태다. 여기에 대선 전 미국 전역의 극장에 걸리는 영화 <어프렌티스>가 트럼프의 어지러운 과거에 대해 어떤 파급 효과를 끼칠지 불확실하다.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조카 메리 트럼프가 출간한 책 <과한데도 만족을 모르는>의 영향이 크지 않았듯 이 영화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하는 반응도 있지만 대중매체의 위력은 장담할 수 없다. 해리스 역시 정치에 발을 담그던 시절을 추적하는 영상 등이 번지고 있다. 정치적 스캔들로 부각될지 묻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 대선까지 앞으로 50여 일, 남은 시간이 짧기에 각자가 가진 꼬리표를 서둘러 떼내고 미국인이 바라는 '지도자상'을 선점하는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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