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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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히라야마는 세상을 달관하고 초월한 존재가 아니다. 영화도 그 점을 놓치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을 찾아온 조카 니코, 니코의 엄마인 여동생을 만나 히라야마가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히라야마가 니코의 엄마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히라야마와 그의 가족, 특히 아버지와 관계에서 과거에 큰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칸 영화제 남자배우상을 받은 야쿠쇼 코지의 연기력이 화면을 압도하는,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마지막 장면의 표정도 달관의 표정은 아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히라야마의 꿈에 나오는 장면도 평온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꿈에는 히라야마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그의 불안한 내면이 그가 찍은 나뭇잎처럼 불안하게 일렁인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히라야마는 술집 여주인의 전남편과 그림자놀이를 한다. 전남편은 말기 암에 걸렸다.
두 사람은 그림자를 겹치면 그림자의 농도가 변할까를 실험하는 놀이를 한다. 그림자가 겹쳐도 변화가 없다는 전남편의 말과는 달리 히라야마는 그럴리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여기서 겹치는 그림자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어떤 관계든 그 관계에 들어가면 변화가 생긴다는 걸 히라야마는 굳게 믿는다.
히라야마는 아마도 그가 과거에 받은 어떤 큰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한다. 되풀이 말하지만 그런 모습이 관객에게 감흥을 안긴다. 그러나 삐딱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정신의 어른이 된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이제 세상과 과감하게 부딪치고 싸우고 무너지기도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사라져 버린 슬픔도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히라야마의 언뜻 초연한 듯한 평정심에는 자기가 맡은 직분에만 충실할 것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고 그것을 내면화한 일본 사회의 모습, 내가 보기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얼핏 확인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의 직분에 충실하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사회의 표정. 성실히 자신이 맡은 청소 일을 수행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나는 그런 삐딱한 인상을 받는다.
<퍼펙트>에 정치, 경제, 사회 현안 등 소위 '현실'이 다뤄지지 않는다거나, 그런 현실의 문제에 첨예하게 대응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불평은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그보다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 감정에서 나오는 불평 아닌 불평이다.
자신보다 더 크고 힘이 센 세상의 모습을 인지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에 경탄하면서도, 그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힘을 아쉬워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지만 동시에 그 세상의 힘에 순응하고 따르고 무신경해지는 모습을, 보기 드문 캐릭터인 히라야마에게도 발견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어쨌든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퍼펙트>는 정신의 어른을 발견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우리 시대에 참조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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