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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6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노조 탄압규탄! 건설산업 위기 대응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정민
건설 현장은 오랫동안 남성 차지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있어도 주로 저임금의 단순 업무에 배치되어 숙련 기술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여성이 하는 일이라서 저평가되고, 저평가된 업무에 여성이 집중되는 여성 노동의 저임금화 현상이 건설 현장에서도 뚜렷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이슈페이퍼 '여성 근로자 취업현황과 정책방안'에 따르면, 건설업은 대표적인 남성 산업으로 여성들이 진입하기 어렵고, 설령 취업하더라도 여성들은 주로 낮은 숙련이 요구되는 일에 배정된다. 같은 조공(기공이라고 불리는 기술자들이 작업할 때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현장 노동자)이라도 남성 대비 임금이 낮으며, 남성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전문 기능인력으로 상향 이동하는 데 비해 여성들은 시간이 지나도 조력공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성이 하는 일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문제에 덧붙여 남성 중심 직종엔 여성이 진입하기 힘들다. 진입하더라도 보조자에 머물기 때문에 숙련 형성과 승진의 기회로부터 배제된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대 성별 임금 격차 국가로 만든 이유 중 하나다. 건설업의 경우 여성들은 미숙련 단순 직종 근무 비중이 높고 전문 기능공 비율이 낮으며, 건설 기능공으로 상향 이동할 기회도 적은 점이 성별 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이었다.
건설 현장의 성별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노동조합이다. 무거운 장비와 자재를 들고 힘을 써야 하는 건설노동이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고 건설 현장을 여성도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바꿔 나가는 역할을 노조가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보조적인 일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틀목수나 철근공과 같은 직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충분한 숙련을 쌓아 기능공, 팀장, 반장의 지위까지도 오를 수 있게 했다.
필자가 인터뷰한 여성 형틀목수들은 건설노조가 운영하는 건설기능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중에는 팀원들로부터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최초의 여성 반장이 된 노동자도 있었다. 이들은 "건설노조가 운영한 건설기능학교를 통해 건설 현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며 "노동조합의 성평등 촉진 활동 덕분에 형틀목수 기능공으로 상향 이동할 기회를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노조 탄압으로 성평등 여정에 급제동
▲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불평등을 겪는다. ⓒ 셔터스톡
친인척, 지인 등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여성들은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어렵사리 일을 하게 되더라도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어 보조 일만 했다. 그러나 건설기능학교 덕분에 여성들도 교육을 받고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고, 숙련과 경험을 축적해 기능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동조합은 건설 현장에 만연한 성차별, 성희롱을 없애고 성 평등한 건설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꾸준한 교육을 통해 남성들이 여성들을 동료로서 대하며 기술을 배울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은 성평등 건설 현장을 향한 여정에 급제동을 걸었다. 건설노조 탄압으로 노조 조합원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는 상황이 극심해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건설노조의 노력마저도 왜곡하고 노조를 부당하게 탄압하며 건폭몰이를 했다. 노동조합의 탈을 쓰고 탈법·불법을 저지르는 일부의 문제를 모든 건설노동조합의 문제인 것처럼 뒤집어씌웠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비롯한 건설 현장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 잡으려는 노동조합의 실천까지도 불온한 것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정부는 노동조합이 건설사에 고용을 요구하는 것도 채용 강요라며 비난했다. 그렇게 따지면 노동조합이 건설 기능인력을 양성하여 현장에 공급함으로써 건설사들도 실력 있는 건설노동자를 확보하여 공사품질을 높일 수 있는 윈윈(win-win) 관계도, 여성 형틀목수와 철근공을 양성해 성평등 건설 현장을 만들고자 한 노력도 모두 공갈과 협박에 의한 불법 채용으로 매도된다.
정부는 노동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체계에 맞서 임금체불을 줄이고, 산업안전을 강화하며, 이중 삼중의 노동시장 불평등을 겪는 여성들에게도 건설 현장에서 기능공으로 커나갈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 아닌가.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협력해서 건설기능학교를 통해 여성 노동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해 필요한 일 아닌가.
정부는 건폭몰이가 여성 건설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을 곱씹어봐야 한다. 탄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 현장을 떠나야 했던 여성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형틀목수 기능공의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을 느꼈으며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남성 조합원은 적게나마 쓸 테니 여성 조합원은 빼라'는 분위기가 됐고,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쫓겨났다.
여성 목수들이 돌아와야 한다. 정부는 건폭몰이를 멈추고 노동조합과 협력하여 건설 현장 노동 약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고 성별 격차를 해소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
▲ 권혜원 /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 권혜원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은 노동시장 이중화 해소, 노동권과 성평등의 의제를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한국산업노동학회 부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성남시 생활임금위원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