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6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과 국가고시를 위한 서적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이제 "나의 경제적 수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부가 의료개혁을 철회하고, 수익 구조를 온전히 보장해 줄 때만 유용한 선언인가?
한국사회에서 '공부 잘한다'는 이들은 의사나 법조인의 길을 많이 걷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공교육을 거쳐서 나온 존재들인데 과연 공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들을 길러낸 것일까? 이는 교육의 비전과 가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관문을 뚫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는 관점, 내가 노력해서 이 자리를 쟁취했다는 그 관점은 한국 사회에 독이 되고 있다. 만 18세에 사로잡힌 엘리트 의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존재는 누군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서 존재하기에 이제 다시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조금이라도 환원하겠다는 삶의 자세는 어디에서 누가 길러줄 수 있는 것인가? 또한, 공부 좀 한다는 이들은 너도나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수능에 매달리는 이 현실은 분명 공대를 포함한 또 다른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다시 한국사회의 부메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진로와 전공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대란에 손 놓은 국가교육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봐야 할 조직이 있다. 아니, 비판받아야 할 조직이 있다. 바로 국가교육위원회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기존의 대통령 교육자문기구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법' 13조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과 조정 권한을 주고 있으며, 처리결과를 통보받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해당 교육정책에 대한 위원회의 심의·의결 결과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따르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 자문 수준을 넘어선다. 즉,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 의결 사항이 효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교육위원회법'에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목적을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의료대란에 필요한 조항이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의료개혁은 추진해야 한다. 이 조직은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과정 기준 및 내용을 고시하며,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을 할 수 있다. 국민참여위원회, 전문위원회, 특별위원회를 두고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수 있다. 이 법을 중심으로 보면, 의대의 대학 정원이나 학사관리 등은 교육부의 소관이기 때문에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고등교육 전문가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추천할 권한을 갖는다.
의대 정원 확대 등은 필요 정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중장기적인 발전 정책 수립을 요구한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런 문제에 나설 의지도, 역량도 없는 듯하다. 대통령실의 의중만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이럴 때 소신껏 일하라고 자주성과 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에너지를 쏟다가 뭇매를 맞았다. 수능 이원화, 고등학교 내신 평가와 출제의 외부기관 위탁, 학교장에게 고교학생선발방식 위임을 통한 사실상의 고교 평준화 폐지 방안 등을 내부 논의하다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내부 논의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문제의 핵심은 국가교육위원회의가 조직의 설립 취지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이 되었는가이다. 이 와중에 국가교육위원회는 5성급 호텔에서 1박 2일 워크숍하는데 5400만 원을 썼다는 내용이 국회의원과
언론에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당과 정부, 대통령실을 조율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인지도 미지수다. 2022 개정교육과정 고시, 2028 대입안 발표 등의 과정에서 보여준 지금까지의 국가교육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교육부가 정책을 주도하고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를 형식적으로 추인해 주는 거수기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교육부를 견인하라고 만든 조직인데, 교육부가 국가교육위원회를 견인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중심에 국가교육위원회는 보이지도 않고, 어느새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역대 대통령 교육자문기구보다도 못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수준과 역량이라면 이 조직을 없애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기대, 이제 접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