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를 1등으로 만든 하이트맥주
하이트진로
1993년 조선맥주는 분신과 같던 크라운맥주를 버리고 하이트맥주를 출시했다. 배경에는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있었다. 하이트는 높이를 뜻하는 'hight'에서 가져온 것으로 지하 천연 암반수를 강조한 이름이었다. 미세필터를 통해 살균하는 비열처리공법도 새로운 무기가 됐다.
사실 페놀 사건 이전만 하더라도 조선맥주 상황은 최악이었다. 1970년대 35% 대의 점유율은 1990년에 20% 대로 떨어져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당시 크라운맥주는 오비맥주보다 쓰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보수적인 경영진은 이런 소비자 반응에 무심했다. 1991년 4월 18일 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조선맥주 관계자는 손님에게 크라운맥주를 주면 오비맥주로 80%가 바꿔 달라는 항의가 많았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상대 실수로 절호의 기회를 맞은 조선맥주는 전 공장을 풀가동하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시의적절하게 출시된 하이트맥주는 오비맥주를 향해 비수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조선맥주에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이트맥주가 시장점유율 43%를 차지하며 1위가 된 것이다. 오비맥주는 41%였다.
만년 2등의 설움을 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조선맥주는 50년간 품었던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바꾼다. 하이트맥주를 개발한 박문덕 사장에게 조선맥주의 아픈 기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꿈이 영원하길 바라는 염원일 수도.
역사는 반복된다
1995년 동양맥주는 오비맥주로 사명을 변경하며 도약을 노리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암초에 좌초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초국적 맥주 기업 에이브이 인베브에 인수된 후 진로쿠어스의 카스맥주를 품으며 하이트맥주를 턱 끝까지 추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급변하고 있었다. 하이트맥주는 간신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변화에 둔감했다. 오비맥주는 카스맥주로 젊은 층 공략에 공을 들였다. 그 중심에는 서자 카스맥주가 있었다. 강력한 영업 마케팅을 전개하며 카프리, 카스 라이트, 카스 레드, 오비 필스너 같은 신제품도 연달아 출시했다.
반면 하이트맥주는 현실에 안주했다. 하이트 브랜드에 이름만 바꾸는 전략을 펼치며 새로운 맥주 개발에 게을렀다. 트렌드에도 민감하지 않았다. IMF 이후 소맥 문화가 유행하자 오비는 카스와 소주 처음처럼을 이용한 '카스처럼'을 내세우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1년 하이트맥주가 진로소주를 인수하며 영업력이 분산된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종합 주류회사가 된 하이트진로는 상이한 두 조직을 결합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2012년 하이트를 역전한 카스는 격차를 점점 더 벌렸다. 2014년 롯데칠성의 진입과 수입 맥주의 급격한 성장,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의 등장으로 맥주 시장은 더욱 긴박해졌다.
위기감을 느낀 하이트진로는 30% 대로 떨어진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2019년 테라를 출시했다. 하이트맥주와 카스맥주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생경한 이름을 가진 '테라'는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전달했다. 업계 불문율이던 초록색 병도 과감하게 채택했다.
자외선에 취약한 초록색 병은 이취를 유발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오리 형태의 병 문양은 재사용 회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이트맥주는 이미지 반전을 위해 초록색 병을 테라에 적용했다. 2011년 합병한 진로의 소주 참이슬을 이용해 테슬라라는 소맥 마케팅도 잊지 않았다.
하이트와 카스라는 단순한 구도에 지루했던 소비자는 테라에 반응했다. 카스보다 본인들의 수입 맥주 판매에 신경을 쓰던 오비맥주는 화들짝 놀랐다. 경영진을 교체한 뒤, 투명 병 카스와 초록색 병 한맥을 출시하며 테라에 대응했다. 그 결과, 카스를 넘으려 했던 테라의 반란은 오비맥주의 신속한 반격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추고 말았다.
한국 맥주의 대들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