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 혐의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많은 국민의 관심사가 쏠려 있었던 중대 사안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법리 판단이 군사보좌관과 법무장교가 나눈 사견에 근거했다는 점은 말이 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국방부 장관은 수사나 법률 판단과 관련하여서는 법무관리관, 국방부조사본부장의 조언을 듣고, 언론 대응과 관련하여서는 대변인의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법정에서 해병대사령관에게 최초 이첩 보류를 지시할 때까지 이첩 보류나 언론브리핑 취소 지시가 적법하다는 판단의 근거는 박 전 군사보좌관이 권모 중령에게 물어본 내용이 전부였다고 진술했다. 법무관리관이나 대변인 역시 증인으로 출석해 장관이 지시를 발령한 이후에야 상황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일단 권모 중령은 해병대수사단의 구체적 수사 내용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수사기관이 어떤 근거로 8명을 민간경찰로 이첩해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단지 법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사 결과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장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 문제다.
법정에서도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이 이러한 문제제기를 한 바 있는데, 박 전 보좌관은 권 중령이 국방부조사본부로부터 이런저런 자료를 받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는 허위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
체계상 해병대수사단이 수사와 관련해 국방부에 보고할 사안은 국방부조사본부로 보고되고, 조사본부는 이를 장·차관 등 지휘부에 보고한다. 수사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아무나 열어 볼 수 있게 보고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해병대수사단이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최초 보고한 것은 7월 30일의 일이고, 국방부조사본부에 보고한 시점도 유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박 전 군사보좌관 스스로도 법정에서 '7월 30일 이전까지 국방부 장관 등은 해병대수사단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진술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정책실 법무장교에 불과한 권 중령이 장관도 모르는 수사 관련 보고 자료를 받아보고 수사 결과의 부당성을 판단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일 개연성이 높다.
오히려 통화기록상 박 전 보좌관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해병대사령관에게 전달된 뒤인 오후 12시 18분과 20분 두 차례에 걸쳐 권 중령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있다. 때문에 박 대령 변호인단은 이 전 장관 측이 대통령실 전화를 받고 화급하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뒤에 권 중령 등에게 사후 검토를 맡긴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참고로 박 전 군사보좌관은 2023년 9월에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기기는 초기화한 뒤 통신사를 통해 중고 판매했다고 진술했다. 권 중령 역시 전화번호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2024년 2월 기존에 사용하던 기기를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판 것으로 보인다.
엉성한 알리바이, 더욱 분명해진 정황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 전 장관이 차를 타고 오찬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군사보좌관 말만 듣고 급하게 이첩 보류를 결심하고, 그렇다고 곧바로 해병대사령관에게 이를 지시한 것도 아니고, 오찬장에 도착한 뒤에야 밥을 먹으려다 말고 해병대사령관에게 세 차례나 전화를 걸어 이첩을 보류시키고 브리핑을 취소시켰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당일 언론브리핑은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설령 오전 11시 45분에 군사보좌관 말을 듣고 이첩 보류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말이 사실이라 쳐도, 주무 참모인 법무관리관이나 대변인과 기본적인 토의도 해보지 않고 15분 만에 종전의 결정을 뒤집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시간상 참모들의 의견을 구하고, 오찬을 마친 뒤에 지시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상 행동에 관한 실마리는 군 판사의 질문에 대한 이 전 장관의 진술로부터 나왔다. 이 전 장관은 시종일관 11시 54분경 '02-800-7070' 번호로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진술했다. 군사법원에서 증인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는 증언이 본인이나 친족이 형사소추, 공소제기, 유죄판결을 당할 수 있는 경우 아니면 증언할 내용이 업무상 위탁을 받아 알게 된 사실 중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경우뿐이다. 이 전 장관은 진술 거부의 사유를 전자로 꼽았다.
그러자 군 판사는 전화를 받은 장소가 어디인지 질문했다. 당시 이 전 장관이 오찬 중이었던 육군회관 행사장에서 전화를 받았는지, 아니면 전화가 걸려 와서 별도의 장소로 이석했는지 물었다. 이 전 장관은 별도의 방으로 이석해서 전화를 받았고, 수행 중이던 군사보좌관은 따라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장관이 오찬 행사 중에 대통령실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기 위해 별도의 구분된 방으로 자리까지 옮겨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발신자가 누구인지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이 11시 54분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하기에 앞서 11시 53분, 이종섭 전 장관의 전속부관 김모 소령에게도 전화를 건 사실 역시 드러났다.
결국 이 전 장관이 주무 참모들의 의견도 구해보지 못하고 긴박하게 해병대사령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이첩 보류, 사단장 정상근무 등의 지시를 하달한 것은 군사보좌관의 건의 때문이 아니라 오찬장에 도착한 뒤 걸려 온 대통령실 전화 때문이란 추론이 정황상 더욱 분명해진 셈이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보면 박 전 군사보좌관의 진술은 이첩 보류 지시가 '대통령 격노'가 아닌 '국방부 장관의 자체 판단'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이 전 장관의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엉성한 알리바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 거듭될수록 증인들의 진술 엇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