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6.19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이런 투자와 정책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그 효과성을 발휘할 것인가이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총력적인 비상대응 체제를 가동하기로" 하였음을 선언하였다. 우선 인구전략대응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을 신설하고, 이를 위해 특별회계 및 예산 사전심의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 일· 가정 양립, 2) 양육, 3) 주거 등 3대 핵심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였다.
위의 정책들에서 출생률을 높이겠다는 조급증은 드러나는데,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미래 불안을 완화하려는 진정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저출생의 구조적 원인인 좋은 일자리 부족, 성별 임금 격차, 공교육 부실, 지역 격차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장기적 대안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집중하려는 핵심 정책은 결혼과 출산을 하였거나 그럴 계획이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결혼과 출산 계획이 있다는 미혼 남녀가 50% 안팎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게다가 고용보험 조건을 충족할 수 없는 파견직, 계약직이나 자영업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은 사실상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에 덧붙여 여성계가 우려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구 위기 대응 정책에서 성평등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이다. 2023년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3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는 늘어났지만, 경력 단절은 여전히 심각하다. 또한 남녀 모두에게 고용 불안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국제적인 비교연구에 따르자면, 성차별이 심하거나 성별 분업 관행이 강했던 국가에서 성평등이 실현되면, 초기에는 출생률이 낮아지지만, 성숙 단계로 가면 그 비율이 높아졌다. 선진국들의 인구 위기 대응에서 성평등이 강조되었던 이유는 그만큼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의 수정보완판에서 '삶의 질 제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였다. 여기에서는 합계출산율보다 오히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나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의 실현을 그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저출생 문제를 좀 더 복합적으로 접근한 고민의 결과였다.
윤석열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였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의 출처도 밝히지 못하고 있고, 여성가족부의 예산 책정에서 드러나는 대로 인구 위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응도 느껴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말잔치보다는 한국 사회 젠더 질서의 변화, 나아가 글로벌 사회의 동향에 대한 보다 '질 높은 학습'이 필요한 듯하다.
여성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소란스레 홍보하고 있는 인구 위기 대응 문제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가족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하니, 여성가족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2월에 퇴임한 이후, 장관직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정부 부처 중에서 여성가족부만큼 다른 부처와의 협력과 공동사업이 요구되는 곳은 없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과의 밀접한 공동 작업 없이는 성평등도 저출생 위기 극복도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6개월 동안 여성가족부는 장관이 없는 부처로 일하고 있다. 스웨덴 같은 국가에서는 성평등 담당 장관과 노동 담당 장관을 한 부처에 두고 두 사람이 공동 장관을 맡아 긴밀히 연결된 두 업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고용노동부는 일터에서의 성희롱과 성차별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을 삭감했다. 이런 지경이니 지금 대통령이 말하는 젠더 폭력 근절 지시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과 부처 간, 각 부처 간 그리고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의 거버넌스 체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협치의 작동 없이는 인구 위기는 더 심각해지고, 디지털 성폭력이나 노동 현장에서의 성차별로 고통받는 여성의 삶은 더 나빠질 것이다. 우울한 양성평등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