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와 꼬리 부분에 낚싯줄이 감겨있는 어린 돌고래 종달이
이정준 [무단 사용 및 재판매 DB 금지]
8개월 넘게 종달이 구조에 매달린 돌고래긴급구조단 13인
낚싯줄 하나는 단 몇 초 안에 버려지지만, 야생돌고래의 몸에 걸린 낚싯줄 하나를 끊는 것에는 기나긴 노동집약적 과정과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MARC는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해외 각국에서 오랜 세월 해양동물 구조 활동을 주도해온 전문가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조언을 받았다. 종달이의 경우처럼 특정 개체를 지정해 구체적 조치를 취하는 '능동 구조'방식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해외에서 조언해준 이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사람과 돌고래 모두의 안전'이었어요. 구조자와 돌고래 중 누구 하나만 다쳐도 모두가 다 위험해질 수 있어요. 지금 부리와 꼬리가 낚싯줄로 서로 얽혀있고, 그 위치가 혈관과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종달이가 몸부림치는 상황을 최소화해야 해요. 어미가 새끼를 염려해 공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구조는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끝내야만 합니다." (MARC 장수진 박사)
구조단은 종달이의 상태를 매일 모니터링하면서, 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분히 수렴해 정교한 매뉴얼을 구축했다. 상황에 맞는 구조 장비를 제작하고, 각자의 포지션과 동작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연습하며 몸에 익혔다.
1월 말, 종달이 꼬리에 걸린 2.5m 낚싯줄 절단에 간신히 성공했다. 덕분에 종달이가 어미를 따라 헤엄치는 것이 수월해졌고, 둘이 함께 있는 시간과 젖을 먹는 횟수도 늘어났다. 살이 붙고 몸집도 조금 커졌다. 하지만 부리에서 꼬리로 이어진 낚싯줄 때문에, 구부정한 자세로 헤엄치고 깊이 잠수하기도 어려웠다.
종달이의 몸에 엉킨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온전히 제거하려면 '포획'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기에, 구조단은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며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 어렵게 시도한 포획은 종달이와 어미의 강한 회피 행동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종달이 구조에만 매달린 지 8개월이 넘어가던 무렵, 8월 15일 종달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부리에서 꼬리로 연결된 낚싯줄이 더 당겨지면서 제대로 유영하지 못한 채 수면에 힘없이 떠 있다시피 했다. 그 상태론 그 무렵 다가오던 태풍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관련 기관과 신속히 소통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구조에 돌입했다. 현장에서 종달이 상태를 지켜보던 구조단과 구조치료기관은 고민 끝에 포획보다는 '낚싯줄 절단'을 목표로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구조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구조단의 흥분된 목소리들이 담겨있었다.
"종달이 자세가 펴졌어요!"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고, 거의 날아다녀요!"
낚싯줄이 끊어지자마자 종달이는 엄마 곁에서 빠르게 헤엄치며 무리에 합류했다.

▲올해 1월 1일에 결성한 돌고래긴급구조단의 깃발. 바래고 해진 깃발에서 구조단이 쏟아부은 시간과 활동의 강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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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죽어가는 상괭이들, 그것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종달이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편해졌지만 부리와 꼬리쪽에 낚싯바늘과 낚싯줄이 남아있기에, 이정준 감독은 8월 15일 이후에도 틈 날 때마다 종달이를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마음이 복잡하죠. 제가 종달이 구조에 집중하는 동안 상괭이한테 늘 미안해요. 돌고래 한 마리를 구조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상괭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죽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더 안 좋아졌어요. 어디서 얼마나 죽고 있는지 정확한 데이터조차 파악되지 않아요."
사람들에겐 아직 생소한 토종 돌고래 상괭이. 입꼬리가 올라가 보인다는 이유로 '웃는 돌고래'로 불리기도 한다. 귀여운 별명이 무색하게도 '혼획'(목표한 어종 외에 다른 해양동물까지 섞여 그물에 잡히는 것)으로 질식사하는 상괭이 개체수는 연간 수백 내지 수천 마리에 달한다(해양수산부 공식 통계상으로는 안강망에서 질식사한 상괭이 개체수가 2012-2022 연간 평균치 약 760마리로 집계되나, 이는 해경에서 발급하는 '고래류 처리확인서' 정보 기준이며, 혼획 시 해경 신고율이 극히 낮다는 실정을 감안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에 상괭이를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는 상괭이를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

▲한국의 토종 돌고래 상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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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가 질식사하는 곳은 '안강망(거대한 자루 형태의 그물)'이라 불리는 그물이다. 거센 조류 속에 투망했던 그물을 배 위로 끌어 올리면 온갖 종류의 어류가 펄떡이며 쏟아져나온다. 거기엔 상괭이 몇 마리도 여지없이 섞여 있다. 물론 이미 죽은 상태다. 어선에서 상괭이가 혼획되면 해경에게 조사를 받고 신고까지 해야 한다. 사실상 무의미한 절차에 가깝다. 이득 없고 번거롭기만 한 절차를 따르느니 바다에 버리는 게 간단하다. 혼획된 상괭이 대다수는 바다로 버려진다.
이정준 감독은 2018~2022년 상괭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직접 어선에 올라타 상괭이가 안강망에 혼획되어 바다로 버려지는 모습, 육지로 떠밀려간 사체들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집요하게 추적해 생생하게 담았다. 안강망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궁금했던 이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강도의 조류는 상상을 초월했다. 안강망 주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상괭이는 거센 조류에 의해 그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갇힌 채 질식사하는 것이다.
상괭이의 죽음을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해양포유류 탈출망 부착 연구가 진행되었다. 상괭이 같은 해양포유류가 별도의 탈출구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의 안강망이 개발되었고, 2021-2022에 이정준 감독은 해양수산부 요청으로 안강망 탈출 장치 유효성을 입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때 그는 총 4700시간에 달하는 촬영기록을 남겼고, 수중청음기로 상괭이 탈출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까지 확보했다. 탈출 장치 검증실험 결과, 혼획으로 죽은 상괭이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전 진짜 그것만 하면 (상괭이 혼획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밝혀져도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혼획으로 죽은 상괭이의 사체들이 쌓여 있는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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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장치 유효성 입증 실험 결과 상괭이 혼획사 0건, 어획 손실률 5% 미만임이 검증되었음에도 현재 안강망 탈출장치 부착은 '권고'사항에만 그치고 있다. 법제화되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순간에도 안강망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괭이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상괭이 문제는 정말 어려워요."
그가 종달이 구조를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종달'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거였다. 하지만 상괭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개체 식별이 어려운 종이기 때문이다. 돌고래처럼 등지느러미나 눈에 띄는 상처도 없다. 특정 개체를 연속성있게 관찰하기 어려운 조건 때문에 연구도 많이 진척되지 못했다.
"2018년에 상괭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주위에서 아주 난리였어요, '방송할 수 있는 그림 확보하기도 어렵고 캐릭터가 안 선다'면서 걱정들이 많았죠. 어쨌든 겨우겨우 시작했어요. 상괭이가 겪고 있는 사건·사고를 따라가면서 그들이 어마어마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결국 대중과 교감할만한 캐릭터 부여가 어려운 동물이라는 점 때문에, 아직은 설득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바다, 즐거움과 죽음의 비명이 교차하는 현장
8월 말, 돌고래를 해상에서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한 번 더 제주를 찾았다. 하지만 하늘이 쾌청하다고 해서 바다의 파도 역시 태평할 거라 착각하는 건 육지 사람 특유의 무지한 편견이었다. 태풍으로 파도가 높았던 날 이정준 감독을 다시 만나, 그가 노을해안로에서 돌고래 모니터링하는 것을 따라갔다.
"저기 보이는 게 종달이예요, 엄마랑 같이 지나가네요. 유영하는 것 자체가 독특해서 눈에 확 띄죠. 망원경에 익숙해지면 나중엔 등지느러미도 보일 거예요. 그러면 언젠가 제돌이, 춘삼이도 눈에 띌 수 있어요. 아마 깜짝깜짝 놀랄 거예요."
이렇게 넓은 바다에 내가 '아는' 돌고래가 지나가고 있다니. 이상하고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종달이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동물농장'류의 TV프로그램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엔딩이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열린 결말이다. 돌고래 관광선박과 낚시체험 어선은 쉴 새 없이 바다를 누비고, 유영하는 돌고래들 위로 낚싯줄이 휭휭 던져지기도 한다. 즐거움의 비명과 죽어가는 비명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바다를 떠나선 살 수 없는 생명들이 매일매일 삶과 죽음 사이를 위태롭게 넘나든다. '삶'이라 부르기엔 때론 죽음에 더 가까이 닿아있어 차마 삶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아직 종달이의 부리와 꼬리 부분에는 낚싯줄과 낚싯바늘이 남아있다. 종달이와 어미는 오늘도 관광 선박과 드론과 낚시 쓰레기를 최선을 다해 피해 다니고 있을 것이다.
▲제주 바다를 헤엄치는 종달이와 어미. 종달이 부리 쪽에 걸려있는 낚싯바늘과 낚싯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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