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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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식시장 투자수익률이 낮은 근본 원인은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율이 선진국 증시에 비해 턱없이 낮은 데 있다. 이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못한 세습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재벌들은 과거 정경유착을 통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낮아진 지분율을 가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여러 세대에 걸쳐 경영권을 세습하다 보니 지분율이 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들에게 귀속되는 배당금이 적어지기 때문에 배당금보다는 회사 이익의 전부를 재벌 맘대로 쓸 수 있는 내부유보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내부유보금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재투자해야 할 텐데 엉뚱한 데 사용하니 더 문제다. 재벌은 자식의 경영권 승계 밑천을 만들기 위해 자식회사 밀어주기에 유보금을 사용한다. 혹은 외국 유학할 때 먹고 쓰고 입고 보았던 제품 중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한국 판권을 사들여 손쉽게 부를 늘리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경영권을 유지해야 하니 보유지분을 매각할 일이 없는 그들에게 주가 상승은 경영권을 세습할 때 세금만 늘어나는 손해 보는 일이 돼버렸다. 더욱 악질적인 것은 세습 받은 회사의 일부 사업부가 향후 핵심사업으로 성장할 것 같으면 그 성장을 주주들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물적 분할을 통해 오너 자신이 독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재벌의 이러한 부정행위들이 엄격한 법적 제재나 주주들의 견제 없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어 온 결과가 누적된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강력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이 노후를 위해 납부한 막대한 보험료로 국내 주요 상장사의 대주주 지위에 오른 국민연금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연금이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재벌의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선진국의 연기금들처럼 특정 회사에 일정 지분 이상을 투자하게 되면 직접 이사를 선임해서 회사가 적정한 주주환원에 나서도록 압박하고 감시해야 한다.
또한 일반주주들도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일반주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후보에게 자신들의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모든 상장사에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미 우리 상법에 도입이 돼 있지만 그 시행 여부를 기업의 선택에 맡기다 보니 이를 도입한 상장사가 거의 없는 것이 우리 주식시장의 현실이다.
회사의 주인인 국민연금과 일반주주들의 적극적 경영 참여를 통해 세습 오너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해야만 우리 주식시장이 다른 나라 주식시장 수준으로 진정한 밸류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 매물 폭탄 받아낼 여력 없어

▲지난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시민들이 연금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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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과제는 국민연금 발 매물 폭탄 문제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재정추계를 보면 15~20년 후부터는 연금 납부액보다 지급액이 많아지면서 연금 지급을 위한 자산 매각이 시작된다. 이후 그 매각 속도는 매우 가파르게 높아질 예정이며 우리 증시는 이 매물을 받아낼 여력이 없다.
그러한 잠재 매물을 안고 있는 주식시장에 투자할 글로벌 투자자 역시 없을 것이다. 최소 20살이 넘어야 연금 납부를 시작하니 지금부터 아이를 아무리 많이 낳아도 해결할 수 없는 확정된 미래인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한 여러 개혁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파국이 확정적인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재정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연금 전문가들은 보험료를 일정 부분 올리고 운용수익률을 제고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가 적어도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를 국민연금 재정에 투입한다면 기금 고갈 시점을 상당 기간 늦추거나 지금 수준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은 기금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추는 미봉책일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 재정 투입이 필수적이다. GDP 1%는 작년 기준 윤석열 정부가 깎아준 법인세보다 적은 금액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가 그 원인을 알고 모두가 그 해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본의 위력 앞에 그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대한민국 주식 투자자 중 한 사람으로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점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 자본시장이 공정한 경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기원 /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장
김기원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기원은 2000년 하나증권에 입사하여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고 회사 내 다양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자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노조 위원장을 거쳐 2020년부터 상급단체인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증권업종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분야는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을 활용하게 될 자본시장과 증권노동자의 일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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