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있다.
남소연
한편 사법적 판단을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법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어려운 점이 있다. 법적 책임 이외에 행정적(징계 또는 인사상 조치)‧정치적(공적 비난)‧사회적(퇴직 후 일정한 제한) 책임 등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는 정부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 저지르는 '정책 범죄'(이재승)다. 정책은 형식적으로나마 법적 근거가 없지는 않으므로 불법으로 인식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는 그럴싸한 정책 명분을 내세우는데, 그 실체를 드러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동연은 2024년 문체부의 예산 기조 두 가지 'K-컬처의 경쟁력 강화'와 '공정과 상식에 기초한 재정사업 추진'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 번째 기조는 산업 경쟁력이 있는 사업을 대폭 지원하고 문화예술의 종 다양성을 위해 활동하는 예술의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점은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조성해야 하는 문화국가 원리에 반한다.
두 번째 기조는 명시적으로는 예산의 효율성과 중복 예산을 배제하는 원칙으로 보이지만, 암묵적으로는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권력에 비판적인 표현행위가 문제가 된 기관과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문화예술 민간 조직의 지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설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질적 블랙리스트 정책은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정책 재량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 권력은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한편, 명단을 만들지 않고 블랙리스트를 무형화(無形化)한다. 끊임없이 배제나 불이익을 줘야 할 사람들을 골라낼 수 있는 기준에 관한 발언을 함으로써 범죄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이었던 유인촌은 윤석열 정부 때 다시 문체부 장관이 되어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때 만들었던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 문서에 82명의 명단이 있었음에도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가가 문화 권력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공화국 헌법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문화는 사회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정책으로 개입할 일이 아니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해쳐지지 않도록 문화예술인들의 공론에 따라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면 될 일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왜 저를 구속 안 시켰는지 지금도 궁금하다"고 했는데,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 장관으로서 지금의 정책과 행적이 형사 처벌의 사유를 더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예술인의 인격권과 직결된 창작‧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은 물론 입헌 민주주의 헌법체제를 유린한 행위는 법적‧정치적‧사회적‧윤리적‧도덕적 시효가 있을 수 없다.
블랙리스트와 국가의 문제를 푸는 열쇠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공무원의 책임은 형사책임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의 행위는 공무원의 행위들이 집적되어 구축되는 것이므로 민주공화국의 성패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충성해야 하는 공무원의 헌법적 책임을 정립하는 일에 달려 있다.
공무원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불법에 불복종하여 저항할 책무와 불이행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공무원의 노동권‧정치활동권‧표현 자유 등을 보장하며,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공직자로서 전직(前職)을 이용한 관련 산하 기구와 민간기업 등 취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시민에게는 권력에 순응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부정의(不正義)한 권력'에 저항하는 공무원이 절실하다. 부정의에 저항하는 시민의 덕목은 민주공화국 헌법 체제를 떠받치는 원동력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헌법적 국가범죄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답변하는지가 현재 우리의 존재 의식과 자의식을 결정(Karl Jaspers)하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이자 그것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 한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국가가 행하거나 수인한 바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범죄 국가라는 오명은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간다."(Karl Jaspers).
블랙리스트 사건을 잊지 않고 맞서는 사람들에게 정의(正義)가 존재한다. 당사자 또는 관련자의 개인적인 몫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해야 할 헌법적 책무다. 헌법은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고 헌법 조문만 바꾼다고 국가와 사회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시민의 비판과 저항이 지속하면서 형성된다.
국회에 입법을 청원하고 대통령과 행정부를 탄핵하며 사법적 해결을 위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에 제정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박근혜 정권 시기를 확장하여 가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이라는 입법 노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제대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며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법의 문언에 얽매여 있는 체제에서는 헌법 체제 자체를 혁신하는 과정이 불가피하게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구조적 부정의(不正義)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하여 한국 사회의 사찰과 검열 체제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집단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는 국가폭력을 초래한 구조와 사고방식을 혁신하는 두터운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유래하는 과거청산 과제와 최근의 사회적 참사를 해결하는 과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총괄하여 풀어가는 일이 숙제다. 국가의 구조적 폭력은 가시적으로 현상하지 않으므로 그 실체를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서 시작해서 국가 또는 사회의 전 영역에 걸친 길고 먼 지난한 과정을 지나야만 재발 방지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나란히 서서 국가범죄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그리고 헌법 체제를 새로이 구축하는 주권자로서 나서야 한다. 국가가 언젠가는 뭔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이제는 접어야 한다. 정권의 교체나 국가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변화의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블랙리스트와 국가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시민이 직접 국가 자체의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혁명'을 완수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