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5 17:23최종 업데이트 24.09.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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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조사했던 특별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당시 "블랙리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국정 운영 차원에서 문화예술인에 대한 검열과 차별을 제도화하고 '좌파 이념 퇴출과 우파 이념 진흥'을 실현하는 블랙리스트를 작동시키고 있다. 표현의 자유 및 블랙리스트 대응 민간 기구 '블랙리스트 이후'는 기획연재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들의 전모를 밝히고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연대와 관심을 넓히고자 한다.[기자말]
2023년 12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부정과 왜곡을 규탄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말할 게 있냐고, 왜 그러냐고, 도대체 언제까지 블랙리스트 사태를 말해야 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직간접적으로 듣곤 한다. 헌법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답하자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의한 피해자의 배‧보상과 명예 회복 그리고 사회적 기억 등의 조치, 가해자에 대한 형사‧징계‧민사 책임 추궁, 블랙리스트 사태를 초래한 국가의 문화예술 지원체계 개혁을 통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다.

블랙리스트는 국가를 비롯한 권력 주체가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작성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비판 등 행위를 한 점에서 권력의 눈 밖에 난다.

인권의 투쟁사는 종교‧사상‧양심의 자유와 그에 따른 종교적‧정치적‧경제적‧예술적 표현과 활동의 자유 이름으로 그 비판 행위를 헌법으로 보장하기에 이른다. 이제까지 블랙리스트가 없었던 시대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권력은 비판적인 사람들이 말하고 쓰고 듣고 읽는 것을 금지하거나 방해하려 한다. 국가는 각종 명목을 빌미로 불가피한 통치 방식인 것처럼 선전한다.

자유와 권리,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공화국의 헌법 체제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이러한 권력의 행태는 반(反)체제적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헌법의 역사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이었고, 자유와 권리의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통치를 제한하다 보니 통치 방식에 대한 통제는 권력의 분립이라는 소극적 방식을 취한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투표할 수 있다는 보통 선거 제도로 축소했다.

헌법재판소조차 탄핵할 수밖에 없던 박근혜 체제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실제 명단을 작성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당연히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양한 형태로 때로는 형태 없는 방식으로 변용할 것은 불문가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서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집권 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을 통해 법‧제도‧정책‧프로그램‧행정 등의 공적(公的) 수단 또는 강요‧회유 등의 비공식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등 위헌적이고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여, 문화예술인의 표현 자유와 권리 그리고 시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가범죄"로 정의한다.

문제는 형법이 국가‧사회‧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을 처벌할 뿐 공권력을 이용한 공무원 범죄에 대해 충분히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적 권한을 행사한 공직자의 행위와 시민으로서 행위는 그 불법성에서 전혀 다름에도 양자를 구별하는 법제가 마련되지 않아 국가범죄를 단죄하기 쉽지 않다. 한국 현대사에서 저질러진 국가범죄를 생각하면, 최근의 사회적 참사 원인 중 작지 않은 요인이 국가와 그 집행자인 공무원의 책임 방기에 있지 않은지 강한 의심이 든다.

대법원은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공범

우리는 국가가 단일한 주체인 것처럼 서술하지만, 국가의 행위는 개별 공무원의 행위, 여러 공무원으로 이뤄진 국가기관의 행위, 실질적으로 국가기관의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 또는 사적 단체까지 그 범위가 넓다. 개인을 중심에 놓은 법제는 명확한 공무원 개인의 불법이 아닌 이상 국가라는 - 그 내부 구조가 감춰진 - 블랙박스가 각종 국가의 행위를 해소한다.

공무원 개인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 사이에 연쇄 고리가 사라짐으로써 공무원들은 책임 없는 공백 상태로 숨을 수 있다. 국가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정치적‧행정적‧사회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조차 묻기 어려운 까닭이다. 공무원들이 국가범죄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남의 일인 것처럼 소극적인 까닭이다. 일종의 보험 효과에 따른 카르텔의 진원지다.

그 결과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입헌 민주주의 침해', '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정', '정책을 가장한 국가범죄' 등 어마어마한 범죄라고 인정하지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라는 개인의 불법으로 그 책임추궁이 쪼그라들었다.

기소 사실은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무수석비서관실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 등 수석비서관실과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예술진흥기금 등 정부의 지원을 신청한 개인·단체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수행한 각종 사업에서 이른바 좌파 등에 대한 지원배제를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헌법을 외면했다(대법원 2020. 1. 30. 2018도2236).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 외에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어야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이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서 직무 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 경우는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예술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할 헌법상 의무는 무시되고 삭제되었다. 헌법 제103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해야 할 대법관들은 헌법을 배제하고 법률의 문언에 따라서만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가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므로 문화예술인들의 표현 자유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그리고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헌재 2020. 12. 23. 2017헌마416)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공범이 된 것이다.

'블랙리스트' 단어만 안 쓰면 블랙리스트 없다는 궤변

2023년 10월 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있다.남소연

한편 사법적 판단을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법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어려운 점이 있다. 법적 책임 이외에 행정적(징계 또는 인사상 조치)‧정치적(공적 비난)‧사회적(퇴직 후 일정한 제한) 책임 등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는 정부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 저지르는 '정책 범죄'(이재승)다. 정책은 형식적으로나마 법적 근거가 없지는 않으므로 불법으로 인식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는 그럴싸한 정책 명분을 내세우는데, 그 실체를 드러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동연은 2024년 문체부의 예산 기조 두 가지 'K-컬처의 경쟁력 강화'와 '공정과 상식에 기초한 재정사업 추진'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 번째 기조는 산업 경쟁력이 있는 사업을 대폭 지원하고 문화예술의 종 다양성을 위해 활동하는 예술의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점은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조성해야 하는 문화국가 원리에 반한다.

두 번째 기조는 명시적으로는 예산의 효율성과 중복 예산을 배제하는 원칙으로 보이지만, 암묵적으로는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권력에 비판적인 표현행위가 문제가 된 기관과 이른바 진보적 성향의 문화예술 민간 조직의 지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 설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질적 블랙리스트 정책은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정책 재량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 권력은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한편, 명단을 만들지 않고 블랙리스트를 무형화(無形化)한다. 끊임없이 배제나 불이익을 줘야 할 사람들을 골라낼 수 있는 기준에 관한 발언을 함으로써 범죄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문체부 장관이었던 유인촌은 윤석열 정부 때 다시 문체부 장관이 되어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때 만들었던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 문서에 82명의 명단이 있었음에도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가가 문화 권력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공화국 헌법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문화는 사회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정책으로 개입할 일이 아니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해쳐지지 않도록 문화예술인들의 공론에 따라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면 될 일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왜 저를 구속 안 시켰는지 지금도 궁금하다"고 했는데,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 장관으로서 지금의 정책과 행적이 형사 처벌의 사유를 더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예술인의 인격권과 직결된 창작‧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은 물론 입헌 민주주의 헌법체제를 유린한 행위는 법적‧정치적‧사회적‧윤리적‧도덕적 시효가 있을 수 없다.

블랙리스트와 국가의 문제를 푸는 열쇠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공무원의 책임은 형사책임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의 행위는 공무원의 행위들이 집적되어 구축되는 것이므로 민주공화국의 성패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충성해야 하는 공무원의 헌법적 책임을 정립하는 일에 달려 있다.

공무원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불법에 불복종하여 저항할 책무와 불이행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공무원의 노동권‧정치활동권‧표현 자유 등을 보장하며,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공직자로서 전직(前職)을 이용한 관련 산하 기구와 민간기업 등 취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시민에게는 권력에 순응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부정의(不正義)한 권력'에 저항하는 공무원이 절실하다. 부정의에 저항하는 시민의 덕목은 민주공화국 헌법 체제를 떠받치는 원동력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헌법적 국가범죄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답변하는지가 현재 우리의 존재 의식과 자의식을 결정(Karl Jaspers)하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이자 그것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 한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국가가 행하거나 수인한 바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범죄 국가라는 오명은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간다."(Karl Jaspers).

블랙리스트 사건을 잊지 않고 맞서는 사람들에게 정의(正義)가 존재한다. 당사자 또는 관련자의 개인적인 몫이 아니라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해야 할 헌법적 책무다. 헌법은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고 헌법 조문만 바꾼다고 국가와 사회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시민의 비판과 저항이 지속하면서 형성된다.

국회에 입법을 청원하고 대통령과 행정부를 탄핵하며 사법적 해결을 위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에 제정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박근혜 정권 시기를 확장하여 가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이라는 입법 노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제대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며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법의 문언에 얽매여 있는 체제에서는 헌법 체제 자체를 혁신하는 과정이 불가피하게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구조적 부정의(不正義)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하여 한국 사회의 사찰과 검열 체제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집단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는 국가폭력을 초래한 구조와 사고방식을 혁신하는 두터운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유래하는 과거청산 과제와 최근의 사회적 참사를 해결하는 과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총괄하여 풀어가는 일이 숙제다. 국가의 구조적 폭력은 가시적으로 현상하지 않으므로 그 실체를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서 시작해서 국가 또는 사회의 전 영역에 걸친 길고 먼 지난한 과정을 지나야만 재발 방지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나란히 서서 국가범죄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그리고 헌법 체제를 새로이 구축하는 주권자로서 나서야 한다. 국가가 언젠가는 뭔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이제는 접어야 한다. 정권의 교체나 국가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변화의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블랙리스트와 국가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시민이 직접 국가 자체의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혁명'을 완수하는 데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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