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3 12:04최종 업데이트 24.11.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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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2024.8.6.안미선

30여 년간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해온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59)은요즘 병원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 양극화가 진짜 심해졌어요. 병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며 그분의 스토리를 들을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도 나요. 정규직 노동자는 다치면 쉴 수도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다치면 일이 없어져요. 복귀할 직장이 없고,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요. 점점 더 쪼들리고 힘들어져요. 너무 가슴 아픈 거죠. 어떻게든 이 사람이 다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할 치료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죠."


질병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다 아픈 노동자를 치료하는 일은 건강한 노동을 상상하고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선진화됐고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이 안에 큰 격차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평균수명이 다르고, 건강 격차가 많이 생겨요. 경제적 격차, 고용 격차도 심하죠. 청년들은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격차가 심해지는 데 반해, 아픈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고 손을 내밀지 않는 사회가 됐어요. 이런 부분을 같이 치료하면서 보듬어 나가야 합니다. 단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회를 치료해야 하고, 그런 목소리를 내야 해요. 노동자가 아픈 문제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연대해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야 합니다. 사회를 바꿔나가면서 사회를 치유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권리는 이어져 있다

지난 1991년 5월 원진레이온 공장 전경. 당시 국회노동위 원진레이온 직업병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소위원회의 의원들이 미금시 원진레이온 공장을 방문, 작업환경등 실태를 조사했다.연합뉴스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저는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으로도 있었어요.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전문적 예방과 치료, 연구를 하는 곳이죠. 노동자들의 건강 장애 요인을 찾고 분석하며 대책을 만드는 연구사업도 해요.

몇십 년 동안 물질적 유해 환경뿐 아니라 노동의 조건 때문에 아프거나 다치는 이들이 늘어났어요. 근골격계질환이 대표적이죠. 컨베이어 속도가 빨라지고 오래 같은 자세로 일하게 되면 이런 병이 옵니다. 서비스업을 포함한 다양한 직종의 직업 관련 질환으로 확대되었어요.

병에 이름을 붙이고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시해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갔습니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의 경우에 사회의 큰 호응이 있었어요. 정부 기관도 함께 참여했고, 대중의 관심이 컸지요. 실제로 마트에 의자가 놓이는 결과도 생겼어요. 대중적으로 노동자 건강 문제를 해결해가는 게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리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제시한다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 산업구조가 과거의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노동 환경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큰 문제였다. 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여러 이름으로 일하지만 노동자로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자들의 7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인 세상에서, 위험한 작업은 외주화되므로 죽거나 다치는 일도 이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먼저 일어났다.

"노동자가 권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장 큰 힘은 '이게 나의 권리다'라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취약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결하면서 같이 권리를 지켜나가야 해요. 우리의 권리는 이어져 있어요. 해결하는 길은 연대밖에 없어요. 개별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하는 사람들의 공통 문제라 여기고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같이 나누고 연대하는 사회가 답입니다."

환경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권우성

임 원장은 석면피해구제법 제정 활동과 공군사격장 환경피해 해결을 위한 환경영향조사 사전연구에 참여했다. 화학물질 관련 제도 개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보건·환경·의학계 전문가 500명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국민선언'(2016년)을 발표했다. 선언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화학물질법규와 정책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는 화학물질로부터 근본적으로 안전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책임한 기업을 처벌할 수 있어야 하며,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아야 하고, 화학물질에 엄격한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의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시민들이 요구하면 우리가 새롭게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노동자가 일터에서 금속 기계를 갈 때 절삭유를 쓰는데 발암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발암물질을 낮추자고 제안했어요.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전문가들도 근거를 갖추어 논의가 함께 되면 기업에서 협약해 유해물질을 낮추는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발암물질을 줄였다고 기업이 직접 발표도 하고요. 그런 요구를 만들어나가고 노동자나 판매자나 소비자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는 환경보건적 관점으로 환경 속 건강의 문제를 주목하고 사회적 운동에 동참해왔다. 또한 화학물질의 수입과 생산과 소비, 폐기의 전체 과정에서 취약한 지점이 어떤 점인지 파악하고 건강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해 화학물질은 노동자와 소비자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주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 사용을 없애거나 줄여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환경 오염에 취약한 사람은 어린이와 임산부입니다. 이들에게 해로운 환경을 바꿔보자고 시도했어요. 아이들이 쓰는 문구나 용품들이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 같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 안 좋은 화학물질로 범벅이 되어 있어요.

문구가 예쁘고 반짝반짝 빛난다면 대부분 중금속이 들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어린이집에 가보면 아이들을 위해 화려하게 꾸며놓는 경우가 있는데 살펴보면 안 좋은 물질로 만든 게 많거든요. 어린이집 원장님들한테 말씀드리고 바꿔나가는 방법도 소개합니다.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유통시켜 보자고 제안도 하고요.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바꾸지 못하는 건데, 관심을 가지면 다양한 대체재가 많이 나올 수 있어요."

2021년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아동 친화 공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해 어린이의 화학 안전을 점검하고 환경 표지 인증을 받은 내장재로 공간을 바꿨다. PVC 재질인 바닥재와 교구와 가구류를 교체하자 먼지 내 프탈레이트 함량이 71퍼센트 정도 감소하고 영유아 체내에 있던 프탈레이트 물질 함량도 감소했다. (<어린이의 눈으로 안전을 묻다>, 임상혁 외, 철수와 영희 출판사 참고)

2019년에 국제적 규준으로 페인트의 납을 규제하기 위해 페인트 업계, 환경부,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등이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그가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참여한 기업들이 "납 프리 페인트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모두 대답한 것이다. "그동안 왜 안 만들었어요?" 기업에 물었다. "만든 것도 있었지만 잘 안 팔리기도 했고 다르게 요구받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그동안 시장성이나 선호도 등의 이유로 제대로 만들지 않은 셈이었다.

논의를 통해 협약을 체결했고 서울시에서 안전한 페인트를 쓰는 것으로 정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은 안전하지 않은 페인트를 구매하지 않고 기업에서는 안전한 제품을 납품하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 서울시는 '국제기준 준수 납 저감 페인트 사용 다자간 협약'을 체결했다. 5개 페인트 제조기업과 서울시설공단, SH공사, 녹색서울시민위원회, 한국페인트잉크공업협동조합 등이 참여했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할 때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정부 관계자와 노동자와 시민이 같이 한 테이블에서 충분하게 의견을 듣고 논의를 해요. 그런 게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생겨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퇴보해서 아쉽습니다. 같이 논의하면서 생산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앞으로 더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임 원장의 큰 꿈, 전태일의료센터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안미선

그는 지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의 노동에도 주목했다.

"폐지를 수집하는 분들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노동자들로 볼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노동일 수 있죠. 녹색병원이 있는 중랑구에 독거노인이 많이 있어요. 폐지 수집하는 어르신들을 길에서 자주 봐요. 안전하고 안정된 리어카를 만들어보려고 생각중이에요. 무거운 리어카가 길에서 쓰러져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여성 노인들이 불안한 형태의 리어카도 많이 끄니까요. 노동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캠페인을 곧 벌일 예정이에요."

안전한 리어카는 올해 하반기에 완성될 예정으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제작 준비 중이다. 디자인과 제조 과정에 많은 이들이 재능 기부로 참여했다. 폐지를 묶어 내놓을 노끈을 지역에서 판매해 기금을 마련하고 그 기금으로 리어카를 만들어 제공할 계획이다.

"'이어줄' 캠페인으로 이름을 정해봤어요. (https://taeilhospital.org/Orangeribbon)마음을 나누고 모임을 만들면서 변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폐지 수집하는 어르신들이 안전하지 못한 운반 도구를 가지고 불편하게 일하니 그 도구를 우리 사회의 힘으로 만들어서 보급하려는 거죠. 그 줄이 우리를 이어주는 줄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는 큰 꿈이 있다. 아픈 노동자가 건강을 되찾아 다시 일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필수적인 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전태일의료센터를 새로 짓는 일이다.

"전태일 의료센터는 사회적으로 많은 이들의 기부와 참여로 지어지는 병원이에요. 노동자들과 시민, 우리의 힘으로 짓는 병원이죠. 전태일 정신은 낮은 자리에서의 연대와 배려라고 생각해요. 약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전태일 의료센터를 만들면서 전체 사람에게 알리고 동참하게 하려는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전태일 정신을 잇는 병원들이 우리나라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제2의, 제3의 전태일 병원들이 자꾸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의 건강과 삶이 지켜졌으면 합니다."

임상혁 원장은 노동자가 일터 이야기를 할 때 그 노동자의 노동이 '보인다'고 했다. 몇십 년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을 목격한 눈에 깊은 눈물이 숨어 있었다.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노동자 앞에서 그는 노동자의 건강이 다시 회복되기를 꿈꿨다. 건강하고 새로운 삶을 지킬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환경과 노동의 조건을 함께 바꾸어내자고 외쳤다. 그렇게 하나하나 몸과 마음을 되찾는다면 사회는 차츰 치료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렇게 누구도 혼자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2024 이철수 판화전
2024.11.6~2024.11.18 인사아트센터 제6전시장 주관․주최:전태일의료센터건립위원회 https://mokpan-exhibition.com

[필자 소개] 안미선: <다정한 연결>,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저자
덧붙이는 글 전태일 의료센터 후원 https://taeilhospital.org/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사무국(녹색병원)
02-490-2002. greenfund2003@gmail.com
무통장 입금
기업은행 014-065306-01-265 예금주 :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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