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행정대집행 10주기 집회에 모인 주민들.
박민석
"철탑이 고마 세워졌지만은 우리는 사람을 얻었고, 사람을 남겼다. 이제 죽어도 눈 감고 편히 갈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 느그도 느그 후손을 위해 싸워야 안 되겠나. 싸움은 끝난 게 아니지. 느그가 있으니까. 느그가 이어받을 거니까." (한옥순, <밀양할매>, <<월간 옥이네>> vol.85)
"할머니들이 그 비를 맞고도 감기에 한 명도 안 걸리셨어요. 영순 엄니는 밀양투쟁 이후 생긴 증후군으로 코로나 백신을 못 맞으셔서, 사람 많은 데 안 오시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오셨어요. 조카 결혼식까지 제끼고요. 어르신들에게 땅이라는 개념이 우리 세대와 또 다른 것 같아요. 죽어도 이 땅은 계속 남아있는 거잖아요." (어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혜원은 고등학생 때 밀양에 처음 왔다. 당시 그가 재학 중이던 대안학교에서는 밀양 연대가 수업의 일환이었다. 수업 이후로는 혼자서 찾아왔고, 환경 단체와 인권 단체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한동안 밀양을 떠나있었다. 몇 년 동안 밀양 마주하기를 힘들어했다던 그는 어떻게 이번 집회 기획단에서 총괄팀장을 맡게 되었을까?
"오래도록 마음에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들이 있었는데, '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 아카이브 작업(2021년)을 하면서 많이 정리가 됐어요. 오히려 일로 떼어놓고 보니까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예전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삶의 중심이 밀양이기도 했거든요." (혜원)
2017년,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보고서'가 발간됐다. 한국전력이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며 마을을 얼마나 갈가리 찢어놓았는지 모른다. 대소사를 함께 챙기던 옆집 이웃이 해코지할지 몰라 두려운 존재가 되고, 음식을 나눠 먹는 대신 민원과 쟁송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년 뒤, 대책위 내부에서 비민주적인 운영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혜원이 떠난 건 이 문제가 공론화된 즈음이었다. 혜원의 세계가 흔들렸다. 무섭고 화도 났지만, 20대 초반이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느꼈다.
어진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끼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혜원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꼈다. 경상남도에서 '젊은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실질적인 힘이 있었다. 지원도 비슷하게 느꼈다. "알게 모르게 남자는 가만히 있게 하고 여자애들 설거지 시키는 거, 그런 일이 숨 쉬듯이"(지원) 일어났다.
물론 어진과 지원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건 사후였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서야 돌아보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문제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 여성'이던 혜원과 화경은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다. 혜원은 중장년 남성 연대자들이 쌓아둔 설거지를 하는 데 시간을 다 썼고, 화경은 아직도 "내가 남자였으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었을까? 설거지하고 밥하는 거 말고 다른 것도 할 수 있었을까?"하고 되묻는다.
그러니까 밀양 대책위에서 발생했던 일은 당시 밀양을 오가던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그 누구도 쉽사리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혜원은 대책위 내부에서 일어났던 문제 제기 역시 마을공동체 파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문제들이 쌓이고 얽혔고, 공동체 파괴 여파가 주민들의 삶을 뒤엎은 것처럼 활동가들에게도 당도했다. 공동체 파괴로 인한 폭력은 아주 세밀한 곳까지 스며들었고, 지워지지 않는 물자국처럼 여전히 그들 삶에 흔적으로 남았다.
당시의 일은 어진과 혜원에게 일종의 폭력의 경험이었다. 중장년 활동가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어진과 혜원도 영영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고 서로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랬던 어진과 혜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찰하고, 만나 화해하고, 함께 밀양의 의미를 되짚고, 다시 얼굴을 맞대고 치고받고 싸우며 이번 집회를 조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꼈던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친구들에게 공명을 일으켰다. 지원과 화경은 집회에 다녀온 뒤, 추억에 잠기기보단 앞으로 자신이 뭘 같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내가 가진 힘으로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사가 있을 때 무대를 만든다거나요." (지원)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이 운동에서 내가 쓸모 있을지 모르겠지만, 쓸모를 찾고 싶어요." (화경)
주민들은 송전탑이 들어선 땅, 찢어진 마을 공동체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내는 그 삶이 밀양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동체 파괴로 인해 등 돌렸던 밀양의 청년 활동가들이 다시 모여 새로운 활동을 꾸리고, 친구들이 그 부름에 응답해서 마음을 내고 있다. 이 역시도 밀양의 싸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징표다.
싸움은 끝난 게 아니지, 우리가 있으니까
이들에게 밀양은 어제의 일이 아니다. 여전히 삶 속에 밀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원은 밀양을 통해서 이 모든 문제가 지난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송전탑만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곧 이 일이 핵발전과 관련 있으며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관해 이야기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 역시 수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며 밀양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의 삶 위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화경은 '싸우는 마음'을 배웠다. 사람들은 의경이 미우면서도 그들의 끼니를 걱정했다. 싸우면서 어떤 생명도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설령 싸움의 대상일지라도 그랬다. 또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온몸으로 끝까지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던 마음, 송전탑이 세워진 뒤에도 계속해서 에너지에 관해 말하는 마음이 화경에게 깊이 와닿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다 망했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밀양적·삼평리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 망했다니? 무슨 소리야. 우리 아직 살아있고, 싸울 거 있으면 계속 싸우는 거지.'" (화경)
어진은 가까이에서 함께하던 사람들이 죽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봐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뭘 하고 있었나, 자문할 수밖에 없었단다.
"누군가 괴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 조직이나 공동체는 같이 괴로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게 서로에게 향하게 되니까요." (어진)

▲밀양대책위 집행위원 남어진
김고은
싸움이 이토록 괴롭다는 것을 배웠다는 어진은 '실없이 사는 법'을 익혔다. 조금 덜 진지해지고, 더 많이 웃어넘기는 기술을 익혔다. 그저 내가 덜 힘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덜 힘들어야 주변이 더 잘 보이고, 주변이 더 잘 보여야 비로소 사람들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를 준비하면서도 기획단을 잘 챙기려고 했다. 가장 첫 번째로 신경 쓴 건 잘 먹이는 거였다. 혜원은 잘 먹이기야말로 밀양에서 얻은 값진 배움이었다고 했다.
"어진이랑 제가 밀양에서 보고 자란 게 그런 거예요. 아무리 힘들게 싸웠어도 점심은 먹여 보내는 거. 이만한 일을 잘했다고 얘기해주는 것도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돌봄이고요. 기획단을 마치고 빈손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밀양에서 돌봄을 많이 받았거든요." (혜원)
혜원이 밀양에서 얻은 또 다른 중요한 배움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여성 청년과 경상남도 농촌에서 사는 노년이 만나 서로를 먹이고 돌보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때로는 부딪히기도 했다.
"(밀양에서) 불편하고 안 하고 싶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신뢰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밀양을 통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혜원)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싸운다는 주민들이 있었다. 그런 어르신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여전히 이곳을 떠올리고 찾는 청년들이 있다. 이 땅을 물려줄 후손을 생각하며 옷을 벗은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런 할머니들이 어떻게 땅을 품어냈는지 보고 배워서, 그 방법으로 서로를 돌보려는 청년들이 있다. 이 청년들은 '밀양'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송전탑이 세워지고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밀양'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아프고 돌아가셔도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느그", 아니 우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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