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전일인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이들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1945년에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불길한 존재로 인식했다. '죽으면 야스쿠니에서 제사를 받는다'는 종교적 열정하에 일본 군인들이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달려드는 모습을 목도한 미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 상징으로 이해했다.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그해 12월에 나온 신도지령(神道指令)이다. 정식 명칭이 '국가신도와 신사신도에 대한 정부의 보증·지원·보전·감독·선전의 금지에 관한 건'인 신도지령의 핵심 내용은 국가와 신도의 연결을 끊고 정교분리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신사에 대한 공적 지원, 신사 연구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국공립학교의 존속, 국가에 의한 신도 관련 서적의 배포, 공문서에서 대동아전쟁 용어 등의 사용, 국공립학교의 집단적 신사 참배, 신사 봉납금의 모집, 공공단체의 신사 참배, 충혼비나 충령탑 건립 등이 법적으로 금지됐다. 이와 더불어 공무원 같은 공인들의 신사 참배도 엄금됐다. 야스쿠니신사 등을 매개로 일본인들이 군국주의 결집을 시도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조치였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총리·장관·국회의원뿐 아니라 자위대 대원들까지도 노골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지난 2023년 5월17일에는 도쿄에서 연수 중이던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 165명 중 상당수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 장면은 그해 7월 신사 화보에까지 실렸다.
이런 식의 참배는 일본 방위성 내부 규정에 의해서도 금지된다. 그래서 한 개인의 자위대 경력에 흠집이 될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퇴역을 앞둔 대원들이 아닌 앞날이 창창한 간부후보생들이 이런 일을 감행했다. 자위대 안에서 군국주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지 않다면, 간부후보생들이 이런 일을 대담하게 벌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1월 9일에는 육군참모차장에 해당하는 고바야시 히로키 육상막료부장(副將)이 운전사가 배정된 관용차를 타고 자위대원 수십 명을 거느린 채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관용차를 타고 야스쿠니를 방문하면, 1945년 이래 금지된 '공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비치기 쉬운데도 굳이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고바야시는 방위성에 출근한 뒤 야스쿠니로 나섰다가, 참배가 끝난 뒤에는 방위성으로 돌아갔다. 공적 참배로 비치도록 신경을 썼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는 훈계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정도 징계를 무서워했다면, 그처럼 과감한 연출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5월 10일에도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 200여 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갔다. 이 일은 3개월 뒤인 이달 14일 <아사히신문>에 보도됐다. 이 보도에서는 이들이 신사 박물관인 유수칸을 견학했다고 전했다.
1882년에 설립된 유수칸은 일본군 전사자들을 위령하고 현창하는 시설이다. 설령 신사 참배가 없었다 할지라도,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이 시설을 집단 견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위대 내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군국주의 기운이 자위대 내에 퍼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인들의 눈에도 위험하게 느껴지는듯 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달 3일 도쿄에서 열린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 속'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자위대와 야스쿠니가 결합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일본 민중이기도 하다. 자위대와 야스쿠니의 결합으로 인해 일본 민중이 또다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나도 안이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