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7 15:06최종 업데이트 24.08.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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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정회되자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인사청문회장에서까지 숨김없이 드러냈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그는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4·3폭동은 명백하게 남로당에 의한 폭동", "4·3폭동은 공산폭동" 등등의 발언을 했다.

국회의 동의가 불필요한 장관직 임명을 앞두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4·3에 대한 그의 입장 표명은 매우 단호하고 강렬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의 질의 시간이 다 끝난 뒤에도, 위원장으로부터 특별히 발언 시간을 얻어내 동일한 말을 반복했을 정도다.

그는 2018년 8월 12일 인천 사랑침례교회에서 '대한민국의 위기와 기독교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할 때도 4·3을 폭동으로 지칭했다.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제헌 국회의원 선거 실시를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좌익을 중심으로 한 폭동이 제주 4·3폭동"이라고 규정한 그는 두 번이나 강조해서 제주와 북한을 연결했다.

"북한과 제주도는"이라며 이 두 곳 때문에 5·10 선거의 전국적 실시가 무산됐다고 말한 그는 잠시 뒤 "북한과 제주도를 빼고는 선거를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4·3을 북한과 무리하게 연계시켰던 것이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추가 시간을 얻어내 4·3 특강을 하는 김문수의 모습은 극우 뉴라이트세력이 4·3 폄하에 그렇게까지 목을 매는 이유를 생각나게 만든다. 광주 5·18보다 제주 4·3이 뉴라이트의 자기 정당화 및 내부 결속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4.3과 그리스 내전 엮은 미국

한덕수 국무총리와 참석자들이 지난 2023년 4월 3일 오전 제주시 명림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4·3을 폄하하는 주장들 속에는 뉴라이트 이념을 받쳐주는 요소들이 다수 깔려 있다. 5·18이 국민주권이나 민주주의 이념과 주로 관련되는 데 비해, 4·3은 그런 요소들에 더해 뉴라이트의 존립과 관련된 요소들과도 많이 이어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냉전체제가 확립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3개의 상징적 사건이 있다. 하나는 1947년 3월 12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냉전체제의 이념인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한 일이고, 나머지 둘은 미국이 제주 4·3과 그리스 내전(1946~1949)을 자유세계 대 공산세계의 대립으로 몰며 냉전체제 구축에 활용한 일들이다.

당시 미국 UP통신(훗날의 UPI)의 제임스 로퍼 서울특파원이 본사에 송고한 기사가 1948년 5·10 총선 당일에 <동아일보>에 실렸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제주 4·3을 그리스 내전(희랍사태)과 엮어 냉전구도 속에 억지로 꾸겨넣는 미국인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로퍼는 "조선은 희랍사태의 완전한 재연"이라면서 "희랍반도는 공산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발칸에 연결되어 있으며, 조선은 역시 역사적으로 소련의 온상지이며 현재 공산당이 세력을 펴고 있는 만주에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분단상태하의 제주가 소련 및 만주와 연결돼 있는 듯이 서술했던 것이다.

위 기사는 "서방 연합국은 정치적 이유로 동지(同地)에 민주주의 거점을 두려고 하여 금전·선전 및 무기 기증으로 투쟁하였다"라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연합국은 조선과 희랍에서 자유선거를 지지하였다"라고 말한다. 미국이 제주와 그리스에 거점을 두려 한다는 기사다. 제주도민들의 민족주의투쟁을 공산주의투쟁으로 왜곡시켜 냉전체제 합리화에 이용하는 당시 미국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냉전체제를 수호해야 할 입장에서는 4·3이 그처럼 자유세계 대 공산세계의 대결로 남아 있어야 한다. 통일정부 수립 및 친일청산을 통한 진정한 해방을 목적으로 제주도민들이 궐기했다는 점이 부각돼서는 안 된다. 이런 본질이 드러나면 4·3을 공산폭동으로 몰아 냉전을 합리화한 세력의 부조리가 폭로된다. 김문수를 비롯한 뉴라이트들이 4·3을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냉전수구진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3은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자행된 경찰의 발포에 대한 민중의 저항으로 시작됐다. 그랬던 것이 김문수가 강조한 것처럼 5·10 선거에 대한 거부 투쟁와 결합되면서 크게 확대됐다.

5·10 선거는 조선팔도를 대상으로 한 선거가 아니었다. 38선 이남에 국한된 선거였다. 4·3의 목소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런 분단선거는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런 4·3이 폭동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면, 분단체제에 기생해 대중을 기만해 온 세력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투항한 뉴라이트의 존립 기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자는 '폭동'이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했다. 발언을 제지당하는 중간중간에도 폭동을 운운했다. 4·3이 폭동이 아닌 것이 되면 제주도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미군정은 물론이고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도 땅바닥에 떨어진다. 뉴라이트가 의지하는 미국, 뉴라이트가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는 이승만을 한꺼번에 잃게 되는 것이다.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학살 만행을 직접 자행한 그룹 속에는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있었다. 지금의 극우세력은 이 극우세력과 이념적으로 맞닿아 있다. 그래서 4·3이 폭동이 아닌 것이 되면, 한국 극우세력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극우로 전향해 새 보금자리를 찾은 뉴라이트의 입장에서는 악몽 같은 일이다.

4.3은 왜곡하고, 건국절은 띄우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이용우, 박해철, 김주영, 박정, 박홍배, 김태선 의원과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뉴라이트는 1919년 3월 1일이 아닌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이념적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그런 의도에서 1948년 8·15를 건국절로 만들려 한다.

4·3은 조만간 세워질 정부가 분단정부가 아닌 통일정부이기를 소망하는 대중적 열망을 반영했다. 그것은 3·1운동 때 외쳤던 하나의 나라, 하나의 정부에 대한 열망이었다. 4·3은 8·15가 아닌 3·1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래서 4·3의 이념 하에서는 반쪽 정부 수립의 날인 1948년 광복절이 건국절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4·3이 추앙을 받으면, 8·15를 건국절로 만들어 3·1절을 약화시키려는 뉴라이트의 기획이 자연스레 무산된다.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4·3폭동"이라는 김문수의 외침은 4·3을 억누르지 못하면 건국절을 관철시키기 힘들다는 뉴라이트의 인식을 반영한다.

지난달 31일 발행된 <탐라문화> 제76호에 실린 유지아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의 논문 '제주 4·3과 동북아시아 냉전'은 1948년 상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역사적 퇴행이나 역행의 의미로 '역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방파제로 삼기 위해 대일 점령정책의 전환을 단행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역코스라 한다."

미국이 공산주의를 막는다며 단행한 역코스 정책은 일본을 전범국이 아닌 동맹국으로 둔갑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 전범에 대한 처벌도 크게 완화되고, 그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국의 친일청산도 결국 무산됐다.

그런 역코스의 명분으로 활용된 것은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내전과 더불어 제주 4·3 등이었다. 미국은 이런 현상들을 한데 묶어 공산세력의 준동으로 매도했고, 이는 한일 극우세력이 과거 청산을 저지하는 데에 뒷받침이 됐다.

4·3에 대한 왜곡과 억압은 일본 전범세력과 한국 친일세력이 면죄부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4·3이 역사적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면, 전범 및 친일세력이 면죄부를 얻은 것의 부조리가 한층 선명하게 폭로될 수밖에 없다.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뉴라이트들이 4·3을 악착같이 폄하하는 데는 그런 요인도 작용한다. 친일세력은 4·3을 공산폭동으로 매도하는 가운데 반공을 명분으로 단결해 국회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4·3이 공산폭동이 아닌 것이 되면 친일세력의 부활과 결집도 명분을 잃게 된다. 공산주의를 막자면 친일청산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뉴라이트의 논리도 기반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제주 4·3의 코드는 냉전·분단·미군정·이승만은 물론이고 건국절·친일청산 등과도 연결된다. 뉴라이트의 이념적 기반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제지를 당하면서도 "4·3은 공산폭동"이라고 거듭 되뇐 것은 4·3을 밟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뉴라이트의 처지를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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