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김보성
현 집권 세력은 실체도 불분명한 '탈원전'(80여 년간 추진될 정책 대상)을 정치적 적대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대척점에 원전(의 회복)을 두고 있다. '오로지 원전을 위한 원전'에만 베팅하는 모양새는 탈원전에 대한 깊은 적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원전으로 회귀'에는 퇴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탈원전을 이념적이라고 비판했던 친원전주의자들의 원전에 대한 믿음은 더 맹목적 이념에 물들어 있는 듯하다. '원전의 복원과 정상화'를 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대통령의 반역사적 인식은 이를 명증이 보여주고 있다. 원전 맹목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대안(예, 재생e)은 철저히 배척될 수밖에 없다.
원전 회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대안에 대한 배척'이란 역작용이다. 용산 대통령실 내에서 'RE100을 공공연하게 떠들지 못한다'는 얘기는 이 역작용의 실체를 풍문으로 전해준다. 원전 정책을 돕는 한 전문가가 'RE100은 탈원전의 다른 얼굴'이라고 오독을 범하는 데서 그 역작용의 심각성을 엿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원전 비중은 대략 30%로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하지만, 재생e(태양광, 풍력)는 세계 평균(13%)의 반(약 6%)에도 못 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탄소 중립이 실현될 2050년에 이르면 전체 에너지 중 재생e가 88%, 원전이 8%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전은 중요한 무탄소 에너지원이지만, 그것으로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없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서도 원전은 태양광과 풍력에 비해 온실 순 배출량 감소에 대한 잠재적 기여도는 더 적고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전 세계가 재생e 중심의 에너지 전환에 집중하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2023년 전 세계에 새로 지어진 원전은 5.5GW, 재생e는 537GW로 100배 차이가 난다. 투자 규모로 보면 원자력은 800억 달러, 재생e는 1조 8920달러(효율, 그리드, 저장 포함)로 10배 차이가 난다. 에너지 투자의 대부분이 재생e 부문에 집중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은 가격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주류 에너지로 급부상하는 것이다.
원전은 누적 용량이 증가할수록 발전단가가 커지지만, 재생e는 그 반대다. '세계 원전 산업 현황보고서(WINSR)'에 의하면, 2023년 원전의 발전단가는 $180/MWh로, 풍력 및 태양광의 $50-60/MWh보다 3배 비싸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책연구원 등의 연구에 의하면 2030년 전후로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가 실현되어 재생e 값이 전통에너지 값보다 더 내려갈 것이라 한다.
이런 추세에 역행하여, 원전에 대한 의존을 인위적으로 높일수록, 국민 경제는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싼 에너지에 더 의존하게 되어, 국가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누구나 에너지 미래를 이렇게 보고 있지만 현 집권 세력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원전에 올인(all-in)하기 위해 현 정부는 원전 지원 관련 예산을 15배 가까이 늘리지만, 재생e 부문은 반토막으로 줄였다. 그로 인해 매년 새로 설치되는 재생e 시설용량도 2020년 4.7 GW에서 2023년 2.7GW로 반토막 났다. 윤 정부가 수립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36년 '재생e 45.8%(발전용량 기준, 발전량 기준은 30.6%)' 목표 달성을 위해선 매년 최소 6GW(태양광+풍력)가 설치되어야 하지만 결코 실현하지 못할 것 같다.
RE100 수요 등을 감안하면 2030년 재생e의 비중을 50%(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1.6%)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하려면 연간 발전시설 용량을 현재보다 5배 이상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해도 유럽, 중국 등 에너지 선진국을 못 따라간다. 늘려도 시원찮은 재생e 투자(용량 기준)가 오히려 쪼그라들면서 생성 중인 '재생e 산업 생태계'는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투자하면 재생 에너지는 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