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경의 전설’ 박미옥 현재 제주살이 8년 차로, 구좌읍의 한 마을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퇴직 후 삶’을 일궈가고 있다. ⓒ 황의봉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 '최초'의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왔던 박미옥 형사. 탈옥수 신창원의 검거에 한몫을 한 것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경북 영덕 출신으로 33년이 넘는 경찰 생활 중 형사로만 30여 년을 일한 그는 2021년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을 끝으로 명예퇴직 했다. 현재 제주살이 8년 차로, 구좌읍의 한 마을에서 후배 여형사와 한 마당에 각자의 집을 짓고 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낸 책 <형사 박미옥>을 출간했다. 1년 만에 8쇄를 찍었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향이 컸다.
'여경의 전설'로 일컬어지기도 했던 형사 박미옥을 이웃들은 '박 반장'으로 부른다. 여성 강력반장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렬하게 각인됐기 때문일 것이다. <형사 박미옥>을 읽으면서 그가 살인범, 탈주범을 검거하는 강력하고 유능한 형사였으나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몸에 밴 휴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박미옥, 형사 그 후
제주에 둥지를 튼 '박 반장'의 '형사 그 후'가 궁금해졌다. 그가 맞닥뜨렸던 강력사건에 얽힌 많은 사연은 오늘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로 되새겨볼 수 있을까. 작가로, 강연자로, 때로는 상담자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경청할 가치가 있을 성싶다.
박 반장이 '두 번째 인생의 놀이터'로 마당 한쪽에 지었다는 서재에 마주 앉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가 책에서 토로한 사건들의 맥락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을 첫 번째 화제로 떠올렸다.
그는 당시 서울청 화재감식팀장이었다. 현장에 긴급출동해 밤새 숭례문이 타는 현장을 지켰다. 양녕대군이 쓴 현판이 불에 탔고, 새벽녘엔 2층이 붕괴했다.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향후 복원 순서를 유념해야겠다는 생각을 꼭 붙들고 있었다"는 박 반장은 대목장을 비롯한 문화재 복원전문가들을 긴급 수배해 '복원 가능한 감식'을 진행했다. 당시 상황을 다룬 글의 제목은 '형사, 감성으로 했습니다'였다. 형사와 감성,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두 단어를 쓴 배경부터 들어보자.
"불이 난 이유도 중요하지만, 불이 난 이후는 더욱 중요합니다. 화재감식이 끝나고 복원전문가들이 왔을 때 훼손된 게 많거나 순서가 뒤엉켜 있거나 잔해들이 개념 없이 쌓여 있으면 복원에 엄청난 지장을 주게 되지요. 그래서 화재감식 과정에 복원을 고려해 순서와 방법을 조절한 것입니다.
그날 밤 현장에 수많은 국민이 와서 눈물 흘리는 것을 봤어요. 국보 1호 문화재가 훼손돼가는 과정을 밤새워 지켜본 분들에게 나중에 복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다른 죄를 짓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재 현장뿐 아니라 어느 현장이든 범인 하나만 잡는 것과 이 범죄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는 건 사실 많은 차이가 있어요.
고전적인 범죄부터 1990년대 2000년대로 시대가 이어져 오면서 발생한 범죄는 그 시대 우리 사회의 정신병리가 바깥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에 대해 단순히 범죄를 진압한 것만으로는 안 되는, 메시지가 있는 활동이 요구되는 상황이 점점 온 것입니다. 화재감식만 해도 단순히 불이 난 원인을 찾고 수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바라는 바까지 고려한 활동이 필요한 것이지요."
화재로 사라진 숭례문은 2013년 4월 마침내 복원됐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던 시민들의 마음을 읽은 박 반장의 감수성이 결과적으로 복원을 원활하게 한 것이 아닐까. 박 반장의 감성이 빛을 발한 사례로 1997년 1월 발생한 탈옥수 신창원 사건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던 탈옥수 신창원을 잡는데 이바지해 경위로 승진하고 특진을 거듭했다. 이 사건은 여형사 박미옥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 화제의 책 <형사 박미옥> 30여 년에 걸친 자신의 형사 생활을 통해 어떻게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했는지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요즘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 황의봉
<형사 박미옥>을 보면 신창원과 만났던 티켓다방 아가씨 10명을 만나, 그들이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탈주범과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야기를 '추궁하지 않고 일단 그저 들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이 탈주범으로부터 '사람대접받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박미옥 형사 등 수사팀은 아가씨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탈주범의 도주 방법, 경찰 검문 피하는 방법, 식성까지도 연구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검문 검색 지침을 만들어 배포한 끝에 결국 신고가 들어와 검거하게 된다. 이 사건에 대한 박 반장의 회고를 들어본다.
"저에게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였지만, 탈주범을 잡기 위한 특별팀이 구성돼 장시간 공조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형사들 세계의 관행이었던 '촉수 우선의 법칙'을 깬 사건이라는 데 의의가 컸던 것 같아요. 범인을 먼저 잡은 사람이 공을 독차지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정보를 제공한 사람도, 공조시스템에 긴 시간 노력해서 기여한 사람도 모두 인정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제가 농담 삼아 경찰청장도 못 만든 공조시스템을 신창원이가 앞당겨줬다고 말하기도 했죠.
당시 8개월이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티켓다방 아가씨들이 왜 탈주범에게 그렇게 우호적으로 대했는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집창촌 문제를 단순히 성매매 단속대상으로만 여겼는데, 이 사건을 통해 집창촌 아가씨들을 구조적으로 옭아매고 있는 상황을 범죄자들이 활용한 것이 드러났죠.
그 후 2001년도에 제가 서울시 3대 집창촌을 집중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창원 사건으로 겪었던 일들이 더욱 리얼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법률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거의 노조 근로조건 수준으로 조서를 받았어요. 아가씨들이 빚을 내고 집창촌에 들어가면 그곳에 영양제 놓는 아줌마, 가구 넣는 사람, 옷 주는 사람, 머리 하러 오는 사람 등 수많은 구조가 이들을 빚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죠. 이후 불법원인급여(불법적인 일을 하게 하는 조건으로 준 선불금)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판례가 나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화제가 새로운 판례에 미치자 박 반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판례라는 게 판사가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범죄를 다루는 경찰, 형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예를 들어 제가 형사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성폭력 범죄를 '정조에 관한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토킹도 범죄라는 최초의 판례가 나오기에 이르렀어요. 이렇게 된 것은 '현장'에서 '시작'이 있었기에 검사의 기소가 가능했고, 판사도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수사 출발점에서부터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의 마음과 사회적 상황을 반영했고 결국 재판정에서 새로운 판례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두절미하니까 판사 혼자서 판례를 만든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이지요."
탈옥수 신창원 이야기를 하면서 박 반장이 범인이나 가해자 혹은 피해자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배려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든다면 이런 말이다.
"탈옥수 신창원이 붙잡힌 게 1999년도의 일인데도 우리 사회는 한 개인에 대한 궁금증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라디오 방송에 나갔는데 신창원이 두 번째 자살을 기도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송 진행하는 분들에게 오늘 신창원 자살 관련 멘트는 빼고 합시다,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잊어줘야 할 때는 잊어줘야 하잖아요, 라고 했어요. 이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메시지는 남아야 하지만 개인에 대해선 그만 잊어줄 때가 됐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범인 가운데는 자기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해서, 무시 받고 살아서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신창원도 그랬지요. 사실은 이건 너무나도 주관적인 자기합리화 혹은 자기 결핍이 고착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선에서의 인정 욕구나 자기 존중감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죠.
범죄 피해자들을 보면 정말 황당하게,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측은지심을 넘어선 인간애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들의 아픔에, 이들의 삶 앞에 멈춰 설 줄 아는 것이 예의요, 인정이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어떤 사건으로 유가족이 된 사람이 몇 년 지나서 웃으면 웃고 산다고 비웃고, 반대로 너무 힘들어 오랫동안 울고 있으면 인제 그만 좀 울라고 하는 걸 보게 됩니다. 타인이 겪은 삶을 자신의 가치관에 동일시할 게 아니라 그 아픔 앞에서 멈춰 줄 수 있는 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아닐까요."
▲ 고교생 특강 지난 7월 경북 포항의 세화고등학교에서 열린 명사 초청 특강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 박미옥
형사와 사냥꾼
박 반장이 자신의 책에서 "형사 박미옥의 철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애정없이 범인을 잡는 일에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형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다"라고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나 사법 시스템은 사냥꾼의 자세를 더 앞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먼지털기식 수사니, 별건 수사니 하는 말들이 무성한 요즘이 아닌가. 박 반장의 솔직한 진단을 듣고 싶다.
"권력 지향성이 강한 사람 혹은 출세나 성공에 가치관을 둔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수사하면서 살아가겠지요.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처리되는 사건 가운데 몇 건이나 보도가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런 비정상적인 공권력 행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은 정도에 벗어나는 시도가 있더라도 그보다는 건강한 에너지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박 반장은 현역 시절부터 인기 강연자로 활동해왔다. 그는 요즘 책 출간 이후 전국 각지에서 강연 요청을 받거나 북 토크 행사에 초청돼 청중과 독자들을 만난다. 사람들은 그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제 책의 첫 문장을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라는 말로 시작했어요. 바로 이 말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많이 수용하고 희생하는 삶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인데, 이 부분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책에 털어놓은 이야기를 마치 자기 자신이 겪은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읽은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특히 학교 선생님들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일)으로 많이 연락해옵니다. 경찰을 꿈꾸는 청소년도 있지만, 사람으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연이 많아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대부분의 고민이 생겨나는 데 비해 우리 사회에선 이 인간관계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번은 제주시의 무근성 마을주민들이 저를 북 토크에 초청해주기도 했어요. 도서관이나 서점 같은 곳에서 저자와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일반적인데, 마을 분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기획해 저를 부른 것이지요. 그 자리에 가보니 남편, 아내,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역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관계'에 대해 굉장히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제주 무근성 '기적의 북 토크' <형사 박미옥> 출간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제주시 무근성 마을주민들이 초청해 열린 북 토크 행사. ⓒ 박미옥
박 반장은 책의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갔다가 한없이 울고 나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었다"라고 토로하고 있다. '한없이 울고,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형사'와 '운다'라는 이미지가 잘 연결되지 않나요? 범인을 잡겠다고 나서는 형사들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정의감 아니겠어요. 피해자의 슬픔을 보고 울분을 터뜨릴 수 있는 마음, 그 비극적 상황 앞에서 울 수 있는 그 마음이 정의감인 것이죠.
예를 들어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살인이라든가 성범죄,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개인의 연약함 같은 사건은 책을 읽는 독자가 느낄 충격의 파장을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수십 년째 성폭행한 남자가 그 아이는 나의 성적 파트너였다라고 묘사하는 태도와 얼굴 모습, 또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자기 상실 상태가 되고, 여성에게 성범죄가 일어나 아이가 태어난다거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시신을 토막 내는 등등의 이야기는 첫 번째 책을 쓸 때 저의 문장력으로는 소화할 수 없었던 겁니다."
도저히 쓸 수 없던 이야기
박 반장은 지난해 펴낸 책에 이어 다시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 도저히 쓸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쓸 수 있게 된 것일까.
"방금 말씀드린 대로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이번에는 다루어보려 합니다. 죽은 자는 커다란 비극을 유족들에게 남긴 것이고, 그걸 안고 살아야 하는 유족에게도 슬픔과 잔인함으로 남아 있겠지요. 범인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고요.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지금의 저에게도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거든요. 이런 문제를 풀지 않고 간다면 30여 년 형사 생활을 해온 저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제는 이야기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개인의 정보만 숨기면 됐지만 새로 쓸 건 인간의 잔인성에 관한 노골적인 내용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문장력으로 녹여내야만 독자들의 가슴을 덜 아프게 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 특히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해볼 수 있게 할까를 고민 중입니다."
박 반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재는 단순히 책을 진열해 놓은 공간이 아니다. 그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고, 새로 시작한 인생 2막의 핵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 서재의 공간 구성은 통상적인 서재와는 다르다. 칸막이를 한 공간에서 혼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졸리면 낮잠을 자기에도 편리한 구조다.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곳곳에 책장이 설치돼 있다.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기에도 좋은 분위기다.
▲ 박미옥의 서재 퇴직 후 삶이 놀이가 되는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집약된 곳으로, 찾아오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상담하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다. ⓒ 황의봉
퇴직 후 삶이 놀이가 되는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집약된 이곳에서 그는 '상담'을 하고 '대화'를 하고 '놀이'를 한다. 박 반장이 말하는 서재 이야기다.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단 나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내 삶의 태도와 시선의 증거들, 범죄 현장에서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30년간 쌓여온 나의 내상도 말끔히 밀어내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장도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책들로 채웠습니다. 3∼4년에 걸쳐 이 서재를 꾸미면서 이것도 만들어보고 저 책도 하나 심어보고 하는 게 재미가 있었어요. 그 과정 자체가 놀이가 된 셈이죠. 그리고 필요한 책들을 채우면서 진짜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써야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착하게 살아가는 데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참 좋을 것 같다는 어린 날의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리고 형사로 일했던 자부심과 보람도 충분히 느꼈고요. 그러나 이제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른 한 단계 승화된 인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형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의문점, 즉 왜 우리 인간은 감정이 터지면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하는지를 탐구하다 보니 매우 어려운 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내실이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 서재에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마음 아픈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제 형사 인생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다들 비슷합니다. 가족문화에서 생기는 갈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민이 대부분입니다. 뭔가 이해받고 용서받고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감정을 관리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태반입니다."
제주살이 꿈꾸는 이들에게
박 반장은 요즘 예술작가의 어시스트 겸 매니저로 그림을 배우는 중이다. 캔버스에 바탕칠하고, 작품 들어갈 액자 리폼 작업도 한다. 전시 기획, 작품 선정의 콘셉트와 리스트, 갤러리와의 연락도 그의 몫이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글쓰기 작업에 요구되는 또 다른 사유의 시간이자 쉼터라고 말한다. 부딪치고 체험해봐야 감각과 감정이 바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림을 그리게 된 건 4년 전 이곳에 찾아와 인연을 맺게 된 화가 덕분입니다. 아는 분 소개로 저를 만나러 왔다가 아예 옆에 집을 짓고 사는 분이지요. 어느 날 이 친구가 100호 짜리 캔버스를 갖다주면서 '반장님은 이미 현장 경험을 통해 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니까 글쓰기 책으로 글을 배우지 말고 또 다른 현장을 만나 보라'면서 캔버스에 글을 써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그 캔버스에다가 붓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물감이 주는 느낌이 연필이나 자판과는 다르더라고요. 캔버스에 한 꼭지씩 글을 써봤는데 글이 막 쌓이니까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물감으로 확 지우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시작된 것이에요.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의 질감에서 제 글쓰기의 문장력이 변화되는 걸 보게 됩니다. 감정의 변화를 다른 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걸 배우는 겁니다.
제가 거주하는 집이 복층인데, 1층은 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그냥 통째로 만들었어요. 음악을 틀어도 전체가 울리고, 빔을 설치해 영화를 보기에도 좋고, 놀기에 좋은 구조입니다. 요즘은 이 공간을 아예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공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글 쓰다 잘 안 된다 싶으면 그림을 그립니다. 글 쓰다 그림 그리다 하는 것이 머리 아픈 일이 아니라 저에게는 일종의 놀이인 셈이고, 글쓰기가 막혔을 때 돌파구가 되기도 합니다."
▲ 캔버스와 글씨와 그림 박미옥은 캔버스에 글씨를 쓰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이 작업은 그에게 놀이가 되고, 글쓰기가 막혔을 때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 황의봉
제주살이 8년 차의 박 반장과 대화를 하면서 그가 '퇴직 후 삶'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놀이로 즐기며,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고, 세상과 소통을 하는 열려 있는 일상! 이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제주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문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와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 제주도입니다. 흔히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느리게 사는 삶을 말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느리게 사는 삶보다는 순간을 깊이 있게 느끼고 사는 게 진정한 삶의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제주에 와야 행복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살려고 왔다가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과 결국 떠나는 사람의 차이는 날씨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날씨이기 때문에 이런 하늘이구나' 하는 사람은 남고, '하늘이 왜 이래' 하면서 날씨 탓을 하는 사람은 떠난다는 것이지요. 궂은 날씨조차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성찰의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즐긴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제주라고 생각합니다."
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은이), 이야기장수(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