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한국노총, 민주노총, 전국여성노조,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실질임금 하락으로 저임금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 받음에 따라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전 사회적 운동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 지원이 시급하다"며 "현대판 신분제도 업종별 차별 적용 저지 및 최저임금 사각지대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해 최저임금 운동본부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출범선언을 발표했다.
이정민
재판을 통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점이 확인된 입시학원 강사를 예를 들어 보자. 아마도 입시학원 강사가 자신이 맡은 강의를 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본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강의를 준비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학원 내에서 강의를 준비하였다면 그나마 근로시간으로 평가할 여지가 많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물론 이와 같은 분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경우에도 그 근무형태가 특별한 경우에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되는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경우에는 이 문제는 아주 일반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와 같은 도급제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된다고 하여도 빼앗겼던 노동법상 권리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이라고 하는 벽을 넘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에서는 근로자로 하면 소정근로시간이 존재하며, 근로시간은 객관적으로 계산·산정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정근로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도급제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대법원판결을 보면 그렇지 않다. 최근 대법원은 '아이돌봄 지원법'에 따라 서비스제공기관으로 지정된 법인의 인력풀에 등록되어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가정에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돌보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진 사건에서 아이돌보미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그리고 서비스제공기관을 아이돌보미의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3. 8. 18. 선고 2019다252004 판결).
이 사건에서 항소심 판결은 계약서상 소정근로시간이 없다는 점을 주요 논거로 하여 근로자성을 부정하였다.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아이돌보미의 "근로시간"은 근로계약 체결 시부터 확정적으로 정해지지 않고 특정 가정과 연계된 경우에 확정"된다고 하면서도 이는 "돌봄사업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일 뿐 근로자성 부인의 근거는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돌봄서비스 노동 그 자체의 종속성에 초점을 둔 판결로서 매우 타당한 판단이다.
하지만 소정근로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판단함에 따라서 아이돌보미에 대해서 근로기준법 제18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근로기준법 제18조는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한 조항으로서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은 그 사업장의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비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4주 동안(4주 미만으로 근로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을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 제55조의 휴일과 제60조의 연차유급휴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소정근로시간이 합의되지 않은 아이돌모미에게 이 조항은 적용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소정근로시간의 벽뿐만 아니다. "소정근로일"이라는 벽도 존재한다. 통상적인 근로자라면 1주간에 근로하여야 하는 날과 근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의 구분이 명확하다. 근로하기로 사용자와 합의한 날을 "소정근로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정하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그런데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와 같은 도급제노동자에서는 노무를 제공하여야 날에 관해서 계약을 체결할 때 합의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위에서 본 아이볼모미 사건에서 파기 환송심을 맡은 광주고등법원은 아이볼모미와 서비스제공기관 간에 소정근로일수를 정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하여 소정근로일에 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문제는 소정근로일이 존재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의 주휴일과 제60조의 연차유급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아이돌보미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적 지위를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쟁취했지만, 주휴일과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권리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에서 정한 주휴일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일을 개근"한 사람에게만 부여되고(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0조), 제60조의 연차유급휴가는 소정근로일을 일정 비율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만 부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정근로일에 관한 합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1주간 6일을 연속하여 아이볼돔 서비스를 제공하여도 근로기준법 제55조 제1항의 유급주휴일이 부여되지 않아도 법 위반이 되지 않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미 정수기의 설치·점검·수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수기 기사의 판결에서도 똑같이 제기되었다(대법원 2021. 8. 12. 선고 2021다222914 판결).
이 판결에서도 역시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였지만 '소정근로일을 정하여 근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연차유급휴가 수당에 관한 청구는 기각하였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제정 정신으로 돌아가야
우리 노동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급제 노동자를 알고 있었다.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조항도 존재한다. 근로기준법 제47조가 그것이다. 이 조항은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존재하였는데, "사용자는 도급이나 그밖에 이에 준하는 제도로 사용하는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에 따라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 조항도 역시 사문화된 조항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초부터 이 조항이 있었다는 것은 필시 도급제 노동자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임금 결정 방법으로서 도급제는 일제강점기에 청부(請負)급제라는 명칭으로 방직공장과 고무공장 등을 중심으로 활용되었고 하는데(신원철, 2016), 1970년대까지도 기계화가 도입되지 않은 경공업의 제조 공정에서 흔히 사용되었다고 한다(신원철, 2003).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1947년 제정된 일본 노동기준법 제27조도 역시 우리 근로기준법 제47조와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일본 노동기준법에서는 청부제(請負制)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청부는 도급의 일본식 한자어이다).
1953년 노동법 제정자들은 도급제 노동이 산업계에서 흔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이들 노동자의 임금 보호를 위하여 근로기준법 제47조를 마련해 둔 것이다. 다만, 도급제 노동이 활발히 이용되던 시기에는 근로기준법이 유명무실하였기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점차 산업현장에서는 자취를 감추었기에 노동법에서 도급제 노동은 별다른 의의를 가지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는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증가는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의 도급제 노동에 관한 법조항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이는 최저임금의 보장이나 근로기준법 제47조에 따른 적정 임금의 보장과 같이 임금에 관한 권리를 넘어서, 근로기준법 제55조의 휴일, 제60조의 연차유급휴가와 같은 휴식권도 도급제 노동자가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근로자성의 법적 경계가 불명확하고, 오분류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임에도 도급제 노동자에 관한 임금과 근로시간·휴식과 관한 규정은 여전히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초에 머물러 있다.
현대적 의미의 노동은 이제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된 지 오래지만, 우리 노동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법에 의한 보호의 지체는 본말을 전도하는 상황까지도 낳고 있다. 노동보호법상의 지체된 내용을 잣대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인지를 판단하려고 경향도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성장하여 키가 크면 보다 긴 침대를 마련하여 편안히 발 뻗고 잘 궁리하여야지 억지로 작은 침대에 맞추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고 했던가.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에서, 1986년 제정 최저임금법에서 도급제 노동자의 임금을 보호하고자 했던 바로 그 정신을 다시 오늘에 살려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임금과 휴식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야 할 때이다.
* 필자 소개: 정영훈은 헌법재판소와 국회미래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노동법을 연구했고 현재는 국립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있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개별 노동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서 특별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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