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3 09:43최종 업데이트 24.08.23 09:43
  • 본문듣기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기자말]
아들이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배 엄마들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반 학부모 대표를 맡아라(반마다 반 대표가 있던 시절입니다)" , "학교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라".

그런데 '고개 숙인 발달장애아의 엄마'로 살면서 같은 반 엄마들을 만날 때조차 벌벌 떨던 당시의 저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어요. 그런 건 자녀가 학교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당당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아들이 특수학교로 전학 가자 선배 엄마들이 또 말했어요. "학부모회 회장을 해라", "운영위원장을 맡아라". 이때도 넘겨 들었어요. 그런 건 학교에 아는 엄마들이 많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던 제가 올해 학부모회 회장과 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을 동시에 맡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들의 학교생활에 어려움도 많고 아는 엄마도 많지 않았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왜 그동안 선배 엄마들이 그토록 학교 일에 참여하라고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중입니다.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 무슨 일을 하나요?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일수록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unsplash

일단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 차이를 먼저 알아야 할 듯합니다. 학부모회는 재학생의 학부모 전체가 구성원입니다.

"나는 학부모회 신청한 적 없는데?" 학부모회 임원직을 신청하지 않았을 뿐 자녀 입학과 동시에 학부모회 회원으로 가입된 상태입니다. 임원은 회장과 부회장, 감사로 구성되고요. 회장 지명에 의해 간사를 두기도 합니다.

학부모회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 학교운영에 대한 의견제시 및 학교교육 모니터링 ▲ 학교교육 활동 참여/지원 ▲ 학부모교육 ▲ 지역사회 연계 비영리 교육사업 ▲ 그 외 학부모회 규정으로 정한 학교 사업.

이 중에서 주목할 것은 '학교운영에 대한 의견제시 및 학교교육 모니터링'입니다. 자녀의 교육 활동을 모니터링해서 학교 운영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3주체가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합니다. 저는 여태까지 학교라는 공적 공간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인 줄로만 알았어요. 학부모도 학교교육의 주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거죠.

사실 학부모 입장에선 담임과의 상담 외엔 학교교육에 관여할 기회도, 여지도 없잖아요. 그런데 학부모회 역할 중 하나인 '교육 모니터링 및 운영에 대한 의견 제시'를 통해 학부모도 당당한 학교의 3주체 중 하나가 될 수 있더라고요.

학교 운영위원회는 학부모회와 성격이 다릅니다. 학부모회는 주로 학부모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역할인데 반해 운영위원회는 말 그대로 학교의 크고 작은 대소사를 논의하는 일을 합니다. 공적 권위가 있는 셈이죠. 한마디로 힘이 더 셉니다.

저는 아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 운영은 교장 선생님 혼자 독단으로 막 결정하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학교'라는 사회에 대해 몰랐던 겁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학교 운영에 관한 사안은 운영위원회가 모여 결정합니다. 운영위원회는 상정된 안건을 심의하는 기구인 거예요.

학부모회 구성이 학부모만으로 이뤄져 있다면 운영위원회에는 교사위원, 외부위원, 학부모위원이 다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학교의 예산, 인사, 사업, 소위원회 활동, 급식, 교육과정, 학칙 제·개정 등에 관해 논의하고 심의합니다.

그렇지만 운영위원회는 의결 기구가 아닌 심의기구인 만큼, 학교장이 운영위원회 의결에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관리자인 교장의 의지와 방향성에 따라 각 학교 운영은 저마다 차이가 나곤 합니다.

내 자녀가 수련회를 못 가게 된다? 그건 막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 입장에선 학부모회 활동을 하는 게 좋을까요. 운영위원회 활동을 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통합교육을 먼저 살펴볼게요.

통합교육에선 학부모회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학부모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장애 학생의 부모들과 관심사 자체가 다르거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학부모회는 '교육 모니터링을 통한 의견'을 공식으로 제안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큰 힘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이왕 활동을 할 거면 학부모회가 아닌 운영위원회를 권합니다.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급식지원 인력이 더 필요하다" "장애이해교육 자료로 이런 콘텐츠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방학중 교육활동이나 수련활동에서 특수학급 학생들에 대한 고려와 지원이 추가되어야 한다" 등의 안건을 내고 이를 심의할 수 있는 게 운영위원회입니다.

보통 이런 학교 구조를 모르고 있는 경우엔 수련 활동에 지원 인력이 없어 내 자녀가 수련회를 못 가게 될 경우, 애먼 특수교사만 붙잡고 감정싸움을 벌이게 되는데요. 수련회 일정이 다가오기 전 운영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 학교에서 미리미리 예산과 지원 인력을 확보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운영위원회입니다.

그래서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일수록 통합학교 운영위원회에 반드시 1명 이상씩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장애 학생의 부모들이나 일반 교사들은 아무도 우리네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특수학교는 또 다릅니다. 학부모회 활동을 해도 좋고 운영위원회를 해도 좋아요. 그런데 이왕이면 학부모회 회장은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으로 동시에 들어가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러면 학부모회 회장은 그동안 누적해 받은 학부모들의 민원과 의견을 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제안할 수 있거든요. '교육 모니터링을 통한 의견 제시'가 실질적 형태로 발현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물론 운영위원회에 의견을 낸다고 모든 의견이 안건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 관리자와 행정 책임자, 교사와 학부모와 외부인사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방법을 논의하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특수학교에서 필요한 '활동보고'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연합뉴스

특수학교에선 한 가지 더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바로 '소위원회 활동보고'인데요. 학부모회에서 정기총회나 월례회의 등을 열 때 소위원회 활동보고 시간을 꼭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교라는 조직엔 수많은 소위원회가 존재합니다. 급식소위원회, 예결산소위원회는 당연한 위원회고요. 학교 안팎 공사, 전자칠판 설치 및 CCTV 제거, 공간 재구성 등 각종 사업에 있어서도 비용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무조건 위원회가 구성돼야 해요.

학칙 재개정 및 스쿨버스 이용 등에 대해서도 소위원회가 구성됩니다. 만들고 싶은 소위원회가 있으면 운영위원회 때 안건으로 접수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특수학교에선 수련회나 캠핑 활동이 없는데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싶으면요. 일단 학부모들의 의견을 취합한 다음 운영위원회에 '수련회 소위원회' 구성을 안건으로 제안하면 됩니다.

그러면 행정위원, 교사위원, 학부모위원으로 구성된 소위원회가 열려 수련회 장소와 일정, 예상되는 어려움과 이를 위한 실질적 방안 등을 협의하고 방법을 찾을 거예요. 수련회 소위원회에서 최종 합의된 내용을 운영위원회에 올려 땅땅땅 위원들의 찬성을 받으면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구조입니다.

소위원회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요. 이곳에서 사실상 자녀 학교생활에 밀접한 온갖 사안이 다 다뤄지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소위원회 활동 내용이 공유되지 않다 보니, 특정 소위원회의 학부모위원으로 신청한 특정 부모의 '개인 성향'에 따라 학교 사안이 좌우돼 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학칙개정위원회가 열렸다고 가정해 봅니다. 마침 이 위원회 학부모위원들의 평소 생각이 "다른 학생의 공부를 방해하는 학생은 가정학습을 하는 게 낫다"라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학칙이 그러한 방향으로 개정될 겁니다.

그래서 학부모회 정기총회나 월례회의 때 각 소위원회 학부모위원들은 그동안의 소위원회 활동 내용을 보고하고, 보고 내용을 들은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면서 학부모 전체 의견을 취합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소위원회 활동을 하는 학부모위원의 '개인성'이 '대표성'을 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소위원회 학부모위원도 자신의 생각만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전체 학부모 의견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회의에 임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학생과 교사의 개인정보가 보호되어야 하는 학폭위원회 등은 활동보고에서 예외로 둬야 합니다.

체념이 삶의 태도가 되지 않도록

자녀가 특수교육대상자인 삶은 만만치 않습니다. 자녀 때문이 아니라 자녀를 둘러싼 현실로 인해 무력함을 느낄 때가 많지요. 바로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적극적으로 학교 일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봐도 안 되니까, 말해도 안 들어주니까, 그냥 나만 포기하면 되지 뭐…'라며 내려놓고 내려놓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아이와 내 삶까지도 다시 주워 담기 힘들어질 수 있어요.

'체념'이라는 건 한순간의 감정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의 부모는 그럴 가능성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힘을 냈으면 합니다. 힘을 내서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사들과 능동적으로 소통하고 관리자와 당당하게 논의하는 모두가 되길 바라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