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2 12:04최종 업데이트 24.08.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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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정훈님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서울대 부모스티커 논란을 알게 됐습니다. 자녀가 명문대학인 서울대에 입학했으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굳이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더라도 서울대에 합격했다면 주변 지인과 가족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을 겁니다. (관련 기사: 김민기가 '서울대 부모 스티커' 봤다면 뭐라 했을까 https://omn.kr/29tgj)

과거 시골 마을에선 명문대학에 가거나 사법고시 패스를 하면 플래카드도 달았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와 절에 가면 학업성취에 대한 욕망이 성스러운 기도로 울려 퍼집니다. 사실 학교 입학에서 그치는 욕망은 아닙니다. 좋은 직장과 고급아파트까지 성공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입니다. 이것은 사실 좋은 공동체에서 추방되거나 배제되고 싶지 않은 불안과 한 쌍을 이룹니다.

그들도 ·이주노동자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 ⓒ EPA/연합뉴스


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파리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고, 메달을 따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K-POP 가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거나 우리나라 음식을 좋아하는 외국인을 보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골이라도 넣으면 마치 내가 골을 넣은 것처럼 기쁩니다. 손흥민과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공동체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박지성의 응원가로 개고기송을 불렀습니다. '넌 고국에서 개를 먹지, 하지만 더 심한 일도 있지, 임대주택에서 쥐를 잡아먹는 스카우스(Scouse, 리버풀 사람을 일컫는 말)가 될 수도 있지'라는 가사입니다.

우리가 우주 대스타로 여기는 손흥민과 황희찬도 이 개고기송을 들었습니다. 동양인의 눈을 조롱하기 위해 눈을 찢는 행동을 하며 인종차별을 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인종차별 사건이 벌어지죠. 유럽 축구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비니시우스 등 다른 축구선수들도 인종차별을 당합니다.

생각해 보면 박지성 손흥민 황희찬은 영국의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입니다. 이들은 영국 축구 산업을 빛내는 프리미어리거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동양인으로 차별받습니다. 이 때문에 한 축구 유튜브 채널에서 차범근에게도 인종차별을 당한 적 없냐고 물었는데 차범근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골 많이 넣어주니깐 좋아하던데?"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한가 봅니다. 능력만 좋으면 독일 분데스리가라는 세계 최고 리그의 구성원이자 독일인의 동료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기준과 기대를 저버리면 차별과 배제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니깐요.

메이드 인 코리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족들이 지난 7월 25일 오전 11시 50분께 사고 현장인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 박수림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의 문제는 중요한 의제입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면서 심각한 인종차별을 당합니다. 올해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한국으로 수입해 오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월급은 적고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구할 수 없어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물건이 아닙니다. 일을 하기 위해 막상 한국에 왔는데 생각했던 노동조건과 다를 수도 있고, 악덕사업주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에겐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습니다. 물론 사장이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폐업을 하거나, 사업주가 불법을 저질러 고용허가가 취소된 경우 등에 한해서 단 세 번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나마도 지역 제한을 걸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사업주의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이 됩니다. 고용허가제와 별도로 법무부가 주관하는 취업비자도 있습니다. 외국인 강사, 계절근로자 등인데 역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습니다. 요즘 같은 폭염에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나, 한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사망하는 이주노동자의 소식을 듣는 이유도 이런 강제노동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위험한 일자리이기 때문에 산재 발생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한국경제>의 '외국인 산재, 사상 첫 1만 건'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 근로자 산재 신청 건수가 4950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산재로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는 69명에 달합니다.

이주노동자가 필요해 이주노동자를 늘리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는 제대로 하지 않는 겁니다.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는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아리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배터리 폭발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비상구는 어디인지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끔찍한 화마에 사망했습니다.

배터리 폭발로 그동안 가려졌던 공장의 내부가 드러났습니다. 아리셀의 모회사는 에스코넥입니다. 아리셀 사내이사의 아버지가 에스코넥 대표 박순관입니다. 에스코넥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대기업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1차 협력업체입니다. 에스코넥은 휴대폰의 배터리와 부품을 삼성전자에,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부품은 삼성 SDI에 납품하는 삼성의 협력업체입니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원하청 다단계 구조와 이주노동의 복잡한 구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공장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감시 감독해야 할 국가와 제도가 고장 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와 올해 2년간 아리셀을 '고위험 사업장'으로 선정하고도, 단 한 차례의 감독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아리셀을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해 산재보험 감면혜택을 줬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환경과 위험을 감수하고 만든 상품에는 메이드인 코리아가 자랑스럽게 새겨집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상품을 만들다가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면 코리아라는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국적과 인종을 자랑스럽게 새깁니다.

하늘색 리본의 정체성

일터에서 죽음과 차별을 멈추기 위한 '아리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추모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탑승 인원 체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저에게도 서울대 부모 스티커처럼 달고 다니는 게 있습니다. 노동조합 조끼에 파란색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아리셀에서 희생 당한 23명의 노동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하늘'에 가서 잘 지내라, 행복하라는 뜻으로 '하늘' 색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런 표식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는 국회 앞에서 아리셀 참사가 아닌 다른 안건에 대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국회에서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제가 든 피켓과 제 조끼에 걸린 하늘색 리본을 쭈욱 훑어보시더니 가방에 급히 손을 넣어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꺼내셨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다가와 고생한다고 오렌지 주스를 건네고 가셨습니다. 국회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했던 아리셀 유가족이었습니다.

오렌지 주스를 받은 저는 마침 그날 화성시청 앞에서 열리는 저녁 추모 문화제에 참석하였습니다. 하늘색 리본이 국회와 화성을 연결하고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생명과 안전을 중히 여기고 다시는 중대재해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공동체는 어떠한 배제와 차별도 없습니다. 지난 17일 2500여 명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아리셀 참사 현장과 화성시청에 자발적으로 모인 이유일 것입니다.

정훈님, 저는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곳인지 누구나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서울대 부모의 스티커보다 주목해야 할 상징과 스티커들이 많을 겁니다.

오늘도 더 이상의 리본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해화학물질을 경고하는 스티커를 부착하는 사람들, 구로역 철도노동자의 사망에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람들, 기후정의를 바라는 포스터를 부착하는 사람들,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는 피켓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스티커에 주목한다면 서울대 부모 스티커를 굳이 떼지 않더라도 우리의 공동체가 자랑스러운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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