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
연합뉴스
이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느냐의 문제였다. 많은 국민들이 '강제'라는단어가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수 있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논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 인식과 국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처음부터 부당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그리고 항일 독립투쟁이 정당한 저항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국가유공자로서 예우받는 기반이 된다.
더 나아가, 강제성을 일본이 인정하는 것은 1945년의 해방이 단순한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부당한 지배로부터의 정당한 독립이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이며, 현재와 미래의 억압과 차별에도 저항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제헌헌법도 대한민국의 기원과 정체성을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명시하며,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역사적 연속선상에서 건립된 민주독립국가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는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근현대사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그리고 미래 지향적 가치관 형성과 깊이 연관된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한일 양국의 발전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끈질기게 일본을 압박하고, 지속적인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배신하는 것이며, 반헌법적인 행위다.
일제와 서구의 식민지배는 왜 다른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세계사적 관점을 강조한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120여 개국 이상의 경험과 우리의 식민 경험이 별반 다르지 않으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식민지 근대화론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관점은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그 본질과 양상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가 주로 비서구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면, 일본은 같은 한자문명권 내에서 오랜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이웃 국가를 식민지화했다. 그 문명권에서 일본은 근대 이전 변방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식민 통치의 성격과 강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고 실험으로, 20세기 초중반에 영국이 프랑스를 식민지화했다고 상상해 보자. 영국은 프랑스에 강력한 동화정책을 펼쳐,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하고 영어를 강요했으며,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억압했다. 경제와 정치를 장악하고, 종교까지 통제하며, 프랑스인들에게 강제 노동을 강요했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와 유사하다.
만약 영국이 식민 지배가 프랑스 발전의 원인이라 주장한다면, 프랑스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는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처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차 대전 후 프랑스는 수만 명의 부역자를 처벌했고, 특히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 대해 엄중히 대응했다. 이는 프랑스의 도덕적 정화와 국가 정체성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저항 운동 참여자들이 새 지도층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해방 후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프랑스처럼 철저한 친일부역자 청산이 가능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최대 비극은 바로 이 분단이다. 만약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이 독일처럼 분단되었다면, 동아시아 냉전의 축이 바뀌고 우리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즉, 분단과 냉전 구도가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핵심 요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우리는 현재의 한일 관계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 정체성과 미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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