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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투어에서 노동법원 창설 추진 의사를 표명하고 "현 정부 임기 내에 관련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법원 창설안은 1989년 한국노총이 국회에 입법청원을 한 이래 지난 30여 년간 제기되어 온 사안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노동법원 설치 권고안을 제출한 바 있다. 2019년에는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가 노동법원 설치 관련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고, 2020년 대법원 사법행정자문위원회는 노동법원과 해사법원 설치를 논의했다. 국회에서는 19대부터 21대까지 노동법원 창설안이 계속 제출되었으나 모두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상태이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노동법원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현재 노동사건 분쟁 해결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준 사법적 '행정심판' 기구인 노동위원회는 1953년 법 시행 이후 2024년 현재까지 중앙(세종)과 전국 13개 지역에서 1800여 명의 노사 및 공익위원들과 370여 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는 정부기구로 발전했다.
노동위원회는 그간 순차적으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1963년), 부당해고 구제신청(1989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와 파견근로 등 비정규 노동에 대한 차별시정 심판(2008년),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 및 공정대표 의무이행(2008년), 직장내 괴롭힘 등 새로운 유형의 노동분쟁해결(2019년) 등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해왔다. 노동위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노동 '심판' 사건을 사법부가 아닌 노동위가 전담하고 있는 것은 국제적으로 유례가 드문 실정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제기한 노동법원 창설 논의는 노동형법 사건과 민사소송 대상인 임금체불 사건이 중첩되는 경우 그 해결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종합적인 특별법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서 나왔다. 그런데 사실 이는 그간 제기된 노동법원 필요성과는 사뭇 다른 맥락의 문제이다.
기실 임금체불의 문제는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업주 처벌 규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또한 근로감독, 과태료와 과징금 등에 의한 개선 여지도 있다. 도산하거나 폐업하는 기업과 자영업자가 늘어 임금체불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간 논의되어 왔던 노동법원 창설의 필요성은 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노동위-법원으로 이원화된 노동분쟁 해결
노동 권리구제 못지않게 사회보장 권리구제 체계 개선도 시급하다. 따라서 노동법원보다는 노동과 사회보장 사건을 종합적으로 다룰 '노동사회법원'을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은 일반 민법에 대해 특별법적 지위에 있다. 성신여대 권오성 교수는 노동 분쟁과 사회보장 분쟁은 다수 국가에서 노사 대표자와 비 법률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혼합적 기관이나 심판소(Tribunal) 등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노동·사회부문의 특성상 일반 법원의 엄격한 사법절차와는 다른 증거법칙, 해석규칙, 논증 방식 및 구제방식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노동분쟁 해결은 사법부와 준 사법적 행정심판 기구인 노동위원회 제도로 이원화되어 있다. 현재 노동위는 집단적 노동분쟁 해결인 조정 및 중재와 부당노동행위 외에 원래 사법적 심사 대상이어야 할 근로자의 부당해고 등 '심판' 사건을 더 중심적으로 담당해 오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위 구제신청 기간 동안 비용이 들지 않으며, 사건 종결까지 총 90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어 구제가 신속히 이루어진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노동위 심판사건은 현재와 같은 행정심판 제도보다는 원칙적으로 법원에 의한 사법적 구제절차를 적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치며 거의 동일한 판정(약 85%)이 반복되고 있으며, 재심 판정에 불복 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행정소송이 이뤄지는데 이때 정작 근로계약의 당사자인 노사는 보조자로서만 참여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부당해고 사건의 경우 온전한 구제를 위해서는 별도로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한계도 있다. 사실상 현행 제도는 노동위원회 - 중앙노동위원회 - 행정법원 - 고등법원 - 대법원 등 5심에 이어, 별도로 제기한 임금보상은 민사소송의 형태로 지방법원 - 고등법원 - 대법원의 3심을 더하게 되면 사실상 8심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소송경제상 비효율적이다.
또한 일반 사건과 '중요' 사건을 가리지 않고 노동위원회에서는 단 1회, 1시간의 심리에 의해 판정이 이뤄지는 점도 사법적 권리구제와 대비되는 점이다. 증인신문, 증거조사 등이 법원과 달리 충분히 이뤄질 수 없는 점 등도 '준 사법적 기구'로서의 노동위원회의 한계이다. 반면 당사자 비용부담을 국가가 대신하고 있는 현행 노동위원회 권리구제 제도상의 장점은 최대한 확대·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 권리구제, 양적·질적 개선 필요
▲ 세종특별자치시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정. ⓒ 연합뉴스
노동사건 못지않게 사회보장 소송 역시 점차 그 사회적 비중이 커지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박우경 박사의 2022년 연구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5대 사회보험과 직역연금법을 포함한 사회보험영역 1621건, 국민기초생활 및 의료급여 등 공공부조 영역 87건, 국가유공자 및 범죄피해자 등 사회보상 영역 286건, 노인·아동·장애인 등 사회복지서비스 영역 357건 등 총 2351건이 사회보장소송 건에 해당한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회보장 소송은 현재 양적, 질적으로 권리구제 체계에 있어 근본적인 개선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기여에 의해 조성되는 재산권적 성격이 높은 사회보험 영역을 비롯해, 국민기초생활보장과 주거급여, 구직자 기초보장제도, 아동수당 및 기초연금 등과 육아휴직, 모성보호 등 다양한 급부행정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돌봄서비스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회보장 부문의 특성을 고려한 전문적인 사법적 권리구제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보장 권리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에 과도하게 위임되어 있으며,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보장 성격상 유연한 적용을 위해 행정기관이나 입법자의 재량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재량의 남용'을 통제할 적절한 사법적 권리구제 방안이 미비한 실정이다.
70년의 역사를 갖게 된 우리나라 노동위원회는 노동분쟁 권리구제 기구로서 행정부에 속하여 독립성은 제한적이지만 신속·무비용 권리구제라는 장점과 그간 축적해온 공정성, 전문성이 상당한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자산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사법적 권리구제가 되어야 할 심판사건에 준 사법적 행정심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 점은 궁극적으로 삼권분립 및 법치주의를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사법개혁의 주요 과제였던 법관의 절대적 증원과도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인 법관 증원 대책 및 법원 내부의 업무분담에 대한 개선방안이 전제되지 않는 노동법원 창설론, 노동사회법원론은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 사회보장 사건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법률구조' 제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 행정소송법에 없는 '의무이행소송'과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등 사회보장 소송절차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한양대 장승혁 교수는 "노동사회법원을 도입하면 사회보장 소송에서는 원고 친화적 소송제도를 확립하고, 소 제기의 형식성을 완화하여 구두나 기타 간단한 양식에 의한 소 제기가 가능토록 하는 등 권리구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결정 내려야 할 때
▲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 유성호
노동사회법원 창설은 우리나라 노동사회 부문의 적절한 권리구제 체제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논의와 판단을 필요로 한다. 노동법원 창설안이 30여 년 째 이어지고 있는 환경에서, 이번에는 사회적 실질 수요를 고려해 더 완결된 형태의 '노동사회법원 창설'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첫째, 30여 년간의 노동법원 창설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한 전문법원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지속적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지금까지 준 사법적 행정심판 기구로서 노동분쟁 해결의 중축을 담당해 온 노동위원회 역할을 재조정하고 '적절한' 기능재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실제로 이를 담당할 사법부 내에서 구체적 창설방안에 대한 공론화와 실질적 준비가 필요하다. 넷째, 사법적 권리구제의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는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구제를 포함하는 '노동·사회보장 소송 절차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장승혁 교수는 오스트리아 '노동사회법원' 사례를 참고로 들고 있다. 장 교수는 오스트리아 노동사회법원은 독립된 특수법원이 아니라, 일반법원에 부속된 형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제도적 수용 여지가 높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노동사건과 사회보장사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소송절차의 마련'을 전제로 각 지방법원에 노동사회 전담재판부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서울시립대 차성안 교수도 한국은 사회법원을 별도로 만들 정도로 사건이 많지 않아 노동법원과 사회법원이 통합된 형태의 '노동사회법원'이 유용할 수 있다고 한다. 차 교수는 장 교수와 유사하게 사회보장 사건과 노동사건을 함께 전담하는 노동·사회보장 전담재판부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며, 현재 서울에 설치된 행정법원과 각 지방법원의 행정재판부 방식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고 한다. 이처럼 다년간 재판실무를 담당해 온 두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음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차 교수가 강조하듯이 법원은 사회보장 입법 영역에서 위헌·위법한 명령·규칙 심사권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이 변화되지 않으면 노동법원 또는 노동사회법원 신설이나 노동·사회보장 전담재판부의 신설만으로 사실 노동·사회보장 권리구제 절차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 이호근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호근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호근은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차별시정심판), 한-EU FTA 및 한-영 FTA 국내자문단(DAG) 노동부문 자문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공익위원, 한국산업노동학회 <산업노동> 편집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회장, 한국사회보장법학회 회장, 고용노동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