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9 07:06최종 업데이트 24.09.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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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편집자말]
빈 시내의 낙원이라는 한국슈퍼.한소정

​내가 사는 오스트리아 빈에는 한국마트가 여러 군데다. 고추장이며 된장, 통조림 반찬, 만두, 봉지라면, 컵라면 등이 브랜드별, 종류별로 있다. 얼마 전에는 덴마크에서 매워도 너무 매운 불닭볶음면을 공짜로 홍보를 해주는 바람에, 그 뒤로 나는 그 라면을 슈퍼마켓에서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빈 거리를 걷다가 이런저런 숍에서도 보고, 독일 작은 도시의 슈퍼마켓에서도 불닭볶음면을 봤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매체들도 이 라면 이야기를 다뤘다. "몇 달째 틱톡을 달구고 있는 그 라면 시리즈" 혹은 "그 매운, 금지된 라면을 우리가 먹어봤다" "바이킹의 후손들 덴마크인들은 뭐든 견뎌낼 것 같지만, 엄청 매운 라면은 제외다" 같은 우스갯소리를 했다.

빈에는 한국 식당도 어느새 수십 군데로 불어났는데, 숫자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차려내는 먹거리의 종류도 풍성해졌다. 예전 유럽의 한국 식당들이 전통적인 분위기의 분위기에 비빔밥, 불고기와 같은 대표적인 음식 몇 종류를 파는 식이었다면, 최근의 한국 식당들은 한국의 다양한 종류의 식당을 옮겨 온 느낌으로 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거리의 아카키코라는 한국음식 레스토랑한소정

떡볶이 같은 분식을 먹으러 갈 수 있는 곳도 있고, 소주 한잔과 어울리는 포차나 고깃집도 있다. 치맥도 가능하다. 그냥 밥집도 짬뽕에 짜장면, 여름이면 냉면에 콩국수까지 선택지가 차고 넘친다. K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식당과 음식을 직접 보고 먹어보는 것이 이곳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아침을 바꾼 케이푸드

최근에는 한국식 토스트까지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8월 1일자 <데어슈탄드> 기사 '새로운 음식 트렌드 빈을 정복하다: 한국의 달걀 토스트 (Ein neuer Foodie-Trend erobert Wien: Koreanische Egg-Drop-Sandwiches)'는 달걀을 묻혀 구운 토스트 빵 사이에 베이컨, 체다치즈 등을 끼워 넣은 한국식 토스트가 아침식사로 각광받고 있다고 조명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 중에는 '건강한 음식'이라는 코드에 반한 사람들도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건강한 삶을 위해 먹거리와 생활 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음식은 다채로운 야채를 삶거나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고, 발효 식품의 종류도 많다는 특징이 있다.

김치는 단연 인기 최고 종목인데, 직접 슬로푸드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치를 만들어 보는 것이 유행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유럽에 유학 혹은 이민을 온 한국인들이 김치를 담그면 이웃이 와서 냄새가 난다고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김치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빈 시내의 한국슈퍼에 진열된 김치 및 한국 음식들.한소정

<데어슈탄다드> 1월 26일자는 새로 오픈하는 한국 식당 '신라'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발효에 대해서라면 한국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 한국인들은 뭐든 마늘, 고추, 젓갈과 함께 뭐든 항아리에 넣고 발효시킨다. 힙스터라서가 아니라 수천년 그렇게 해왔다. 좋은 게 뭔 지를 이미 오래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며 한국 음식을 설명했다.

김치와 비빔밥

2월 15일자 '지구 저편의 크라우트(독일과 오스트리아식 양배추 절임): 직접 만드는 김치 성공시키는 법'이라는 기사는 비엔나에서 김치를 만들어 파는 시몬 바우어(Simon Baur)의 이야기를 통해 김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김치는 300여 가지며 뭐든 발효해 김치라고 하는데 남북을 통틀어 표준 김치는 배추김치이며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르니 딱히 따라야 하는 방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소개했다. 요오드 없는 굵은 소금으로 배추를 절일 것, 적어도 한시간은 절여야 하고 두시간쯤 절이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등 성공적인 김치담그기를 위한 노하우도 적었다.

이쯤되어 나는 간단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김치의 유행과 함께 우리 집 김치 레시피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내게는 K푸드 유행의 부작용 정도 된다. 모든 한국인이 김치를 만들어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 순진한 사람들에게 나도 김치는 사 먹는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김치는 안 담그더라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때는 가끔 음식을 해서 대접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가장 손쉽게 낼 수 있는 것은 비빔밥인데, 다행히 비빔밥은 인기도 좋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넣을 건지 주방장 마음이니까, 그때그때 볶은 야채나 어린 상추 등 손이 가는 대로 알록달록하게 밥 위에 얹어 낸다.

오스트리아에서 손님 초대할 때, 비빔밥은 단연 인기가 좋다.한소정

마음 동하는 날에는 달걀도 흰자, 노른자 나눠 지단까지 준비한다. 그러면 색색이 예뻐 보기가 참 좋다고들 하고, 간장과 참기름, 고추장이 섞인 조합이 아주 맛나다고 한다. 야채를 많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매운 걸 못 먹으면 고추장을 빼고, 고기를 못 먹으면 고기를 빼고, 다양한 손님의 요구를 반영하기도 쉬워 나로서는 아주 편한 요리다.

맛있게 매운 맛

사실,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매운 음식에 익숙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내 경험에 비추면 이것도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경우 전통적으로는 고추나 마늘을 먹지 않아 매운 맛이나 마늘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내가 함께 일한 동료들 중에는 매운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경향이 뚜렷했는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갔다거나 집에서 만들어봤다는 경험담을 자주 듣는다. 생각해 보면 불닭볶음면의 열기도 주로 어린 세대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편이다.

빈 시내 한국슈퍼에 진열된 한국음식들한소정

그러고 보면 이전에 6년쯤 살았던 스페인에서는 그런 경향을 딱히 느낀 적이 없다. 다정한 내 스페인 동료들 몇 명은 나에게 고추가 하나 들어있는 '매운' 올리브유를 건네줄 때 '조심해 이거 매우니까' 말하곤 했다. 먹어보면 고추 향이나 날까 말까 한 정도였지만, 그들에게는 꽤 매웠던 모양이다. 내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도 아닌데도 말이다.

어떤 동료는 한국 음식점에 가서 비빔밥을 먹은 후기를 전하며, 그 맵기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입이 너무 아파서 전혀 즐길 수가 없었단다. 때문에 스페인에서 동료들을 초대하거나 실험실 야유회 등을 가 한국 음식을 하는 경우에는 매운맛을 늘 조심해야 했다. 물론,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의 경험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나쉬마크 거리 상점에서 한국라면을 파는 모습. 한소정

이것이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 고추가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식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은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많이 써 맵기로 유명하지만, 역사를 따져보면 조선으로 고추가 전파되어 우리가 고추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 무렵이 아닌가. 그전에는 매운맛을 내는 다른 향신료가 있었다고 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진출해 식민지를 삼고 교역한 것이 오래고, 오죽하면 지금도 대부분의 중남미의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쓰는 정도이니 그들이 흔히 쓰는 고추가 스페인에서도 흔히 쓰일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었다.

역사는 알쏭달쏭해서 '맛있게 매운맛'은 케이푸드의 유행을 타고 세계로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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