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노란색 선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이며, 아래 파란색 선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다.
세계은행 웹사이트
다음으로 이탈리아는 경제적 의도가 드러난다. 멜로니 총리는 시진핑 주석에게 양국의 투자 및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는 지난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대중 무역에서 적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19년 약 140억 달러이던 무역 적자는 2022년에는 329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참여하면 경제적 이득이 클 것으로 예상했던 이탈리아로서는, 예상치 못한 이 같은 경제 문제를 이번 회담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멜로니 총리는 이번 방중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카드로 활용할 개연성이 크다.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유럽 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37.6% 추가 관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유럽연합과 중국이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멜로니 총리가 나서서 둘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자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급부상한 멜로니 총리는 이번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위원장이 멜로니 대신 녹색당을 선택하면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이에 멜로니 총리는 이번 방중을 향후 유럽연합 정치에서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중국과 이탈리아의 정상회담은 노골적으로 개별국가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이 중국과의 전면적인 교역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주요 회원국인 이탈리아가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외교 형태의 변화와 한국 외교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탈냉전 이후 국제정치는 이념보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중요해졌다. 이에 국가 중심의 양자외교(bilateral diplomacy)에서 다양한 국제 및 지역기구에서 '셋 이상의 국가들이 동시에 서로를 상대하여 특정 의제에 대한 이해조정과 협력방안을 찾아가는' 다자외교(multilateral diplomacy)가 점차 중요해졌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4년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념이 배제된 채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며 '다자간 정상외교'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유럽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소련이 붕괴하고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의 경제공동체에서 내무·사법 분야와 대외정책을 추가하며 질적으로 통합을 심화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럽연합은 과거 공산권이던 동유럽으로 양적인 통합을 확대했다. 1995년 3개국(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이 가입했고, 2004년에는 무려 10개국(폴란드, 헝가리,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몰타)이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7년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2013년엔 크로아티아가 가입을 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연합이 되었다. 과거 공산주의 진영에 속하던 국가들이 자유주의 진영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에 차례로 가입한 것이다. 이는 개별 국가의 외교에서 이념보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으며, 개별 국가의 양자외교보다 셋 이상의 국가들이 동시에 벌이는 다자외교가 국제정치에서 중요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위의 중국-이탈리아 정상회담에서 살펴봤듯이, 이 같은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규범과 제도화된 지역기구에서의 다자외교보다는 양자외교로의 회귀가 바로 그것이다.
냉전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중 하나를 선택하는 외교였고, 탈냉전 이후 약 20~30년은 이념을 떠나 다양한 국제 및 지역기구에 가입해 다자외교의 틀 속에서 국가 이익을 도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 지역기구에 속하면서도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외교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8일 오르반 빅트로 헝가리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부터 앞으로 6개월간 유럽연합 순회의장국(Council of the EU presidency)을 맡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최근 행보 또한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는 의장이 되자마자 지난달 5일 유럽연합과 외교적으로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는 러시아를 전격 방문하더니, 8일에는 중국까지 방문했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공통점은 두 정상 모두 유럽연합이라는 지역기구의 회원국 수장이면서, 동시에 극우적 정치성향을 지닌 지도자라는 점이다. 덧붙여 지난 브렉시트 이후 유럽 내에서 급속하게 극우 정당들이 급부상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이 같은 양자외교의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현재 한국 외교는 어떠한가? 지난 2년간 한국 외교는 철저하게 1970년대의 데탕트도 아닌 1980년대 냉전 시기로 회귀했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입으로 '자유'만을 외치고 있으며, 과거 공산주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외교에 대해선 모조리 담을 쌓고 있다. 단순히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면 외교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3년 연속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결론적으로 단순한 다자외교보다 다양한 국제 및 지역기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개별 국가와 양자외교를 펼쳐야 하는 지금은 냉전 시기의 외교, 나아가 탈냉전 후 20~30년의 외교보다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기다.
다시 말해 내가 속한 다자외교의 규범과 제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다자외교에 속하지 않은 다른 국가와도 양자외교를 펼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의 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력을 보면 이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함께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 만찬 리셉션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김건희 여사, 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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